내가 RADIOHEAD의 음악을 '제대로' 듣게 된 것은 사실 amnesiac이 발매되기 한두 달쯤 전이었다. 나 역시 자칭 '음악 매니아'라는 뉴타입 들의 선입견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리라.
'뭐냐. creep하나로 울궈먹는 스쿨밴드-_-놈들'
,라고 지껄이는 내 말에 지금은 군 복무중인 기타를 치던 친구가 얼굴이 시뻘개지며 반론을 하던 기억이 얼핏 나지만 녀석과 음악적 취향이 상당히 비슷했던 나임에도 나의 선입견-앨범 한 장 들어보지 않은 이 알량한 선입견-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나 보다.
아무튼 작년에 발매된 KID A라는 괴상한 앨범을 녀석탓에 억지로 듣게 되었고 그 때의 나의 반응은 아마도,
'자식들. creep가지고 안되니 이젠 쇼를 하는군'
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_-
뭐 그렇게 1년이 지나 휴가를 나온 친구의 집에 오랜 만에 들른 자리에서 녀석은 부대에 복귀할 때 가지고 갈 것이라며 공테이프를 잔뜩 사다가 집에 있는 시디를 뜨는 도중이었고 그 와중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pablo honey, my iron lung EP, the bends, ok computer, kid a를 보게 되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집에 싸 들고 온 것이 아마 화근이 아니었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남는 공엠디에 pablo honey와 my iron lung EP를 떠서 엠디 플레이어로 듣는 동안 나는 역시 creep만 주로 듣게 되었고 나머지 트랙들은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시간때우기 용으로 듣는 도중이었지만 반복 암시작용에 의한 것인지 확실이 귀를 자극하는 트랙들은 생겨나고 있었다.
my iron lung와 the trickster, 그리고 lewis.(개인적으로 이 세 트랙을 3연참-_-이라 부르고 있다)이 세 트랙은 나에게 'RADIOHEAD'의 재 평가라는 건방진 화두를 던져 주었고 마지막 결정타는 역시 OK COMPUTER였다. 개인적으로 KID A와 더불어 제국군의 쌍벽-_-이 아닌 그들 앨범의 쌍벽이라 평가하는 명반 OK COMPUTER. 이 앨범에 대한 찬사는 역시 지리한 '역사의 고증'이 될 터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사실을 말하자면 나에게 OK COMPUTER보다 더 귀에 익게 된 앨범은 KID A였다. 완성도나 앨범의 컨셉면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앨범임과 동시에 KID A에 먼저 익숙해 지고 그들의 예전 앨범을 들었던 나로서는 기존 radioheader들이 얼마나 이 KID A라는 앨범에 쇼크를 먹었을 지는 미루어 짐작되는 바 였지만 나는 벌써부터 KID A의 연장선상의 앨범이라는 amnesiac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성급한 radioheaders와 수집욕에 불타는 이들을 위해 국내 라이센스 반 보다 먼저 발매된 유럽판 special edition을 손에 넣고 cd 트레이에 조심스레 cd를 넣고 곧 울려퍼지는 사운드.
'RADIOHEAD구만'
반복되는 멜로디 루프에서 부터 '이건 RADIOHEAD의 음악이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듯한 느낌은 나만이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킥 오프 곡으로서 무난한 사운드와 구성을 선 보여주는 PACKT LIKE SARDINES IN A CRUSHD TIN BOX가 끝나고 이 앨범의 첫 싱글인 PYRAMID SONG이 흘러나오자 난 이렇게 뇌까렸다.
'이번엔 또 뭐에 빠졌길래...-_-'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RADIOHEAD의 인터뷰에는 요사이 톰이 그노시스 학파의 학설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와 이 앨범에 흐르는 줄기가 그것이라는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윤회와 전생을 겪는 인간의 생에 있어,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세상 밖으로 인간이 태어날 때, 현세의 삶에 적응을 하기 위해 전세의 기억을 모두 잊게 만드는 강렬한 기억의 상실이 강요된다. amnesiac.
KID A. 1년 반이 지나버린 그 앨범에서 아련히 떠오르는 것이 morning bell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이 톰의 의도에 의한 것일까 머리를 굴리는 동안 어느새 그들은 나의 입에 칼을 넣으라 종용하고 있었고(KNIVES OUT), 그들이 나의 귓가를 연구실 삼아 사운드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 동안 그들은 결국 그 무한한 상상력의 쉼터로 재즈를 들려주고 있었다(LIFE IN A GLASSHOUSE).
그들의 사운드의 골격은 항상 변화하고 나 역시 그것을 즐기는 radioheader이지만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mind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세상에 냉소적인 톰이지만 나름대로 그의 투정은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고 그 통렬한 비꼼과 때로는 자학적인 성찰에 우리가 휘말려드는 것은 아직 그들의 음악은 쓸만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다.
KID A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탓인지, amnesiac이 조금 못 미더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겨우 쓰다 남긴 곡(그들은 부정하지만 난 안 믿으련다)을 가지고 이정도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밴드로 성장했다는 것은 우리같은 음악 팬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메뉴가 아닐 듯 싶다. KID A의 한정판과 더불어 이번 amnesiac의 요란한 한정판까지. 아직도 EMI는 그들의 변화가 불안해 상술을 펼치는 모양이지만 이런 겉 포장이 판매량의 증가를 가져온다면 이미 그들은 끝장났다고 보는게 좋지 않을까?
뭐 어떤 이들은 RADIOHEAD에게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라고 소리치며 OK COMPUTER로의 회귀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도 기억의 상실이 필요할 것 같다. RADIOHEAD는 항상 예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creep이기 때문이다.
걍 아는 지인의 카페에 올리려 쓴 글입니다...굉장히 내용이 없군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