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의 기억상실증에 대한 어떤이의 생각
bluehead
2001-06-21 20:38조회 172추천 1516
이글은 튜브뮤직에 올려져있었습니다. 다른이의 글인데 기냥 올려봅니다.
OK Computer’ 앨범에서의 Radiohead는 정말 대단했었다. 물론 그 이전의 ‘THE BEND’ 앨범도 괜찮았지만, 어쨌든 Radiohead라는 밴드를 ‘Creep’이라는 양날의 칼로부터 확실하게 건져올려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OK Computer’ 앨범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다음 앨범이 ‘Kid A’였다. 몇몇 사람들은 말을 잃었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자음향처럼 황량하고 광대하게 확장된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어렴풋이 돌이켜 보면, 그 앨범에 대한 어떤 말도 옳지 않았고, 어떤 말도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음악적 완성도나 취향의 문제를 떠나 ‘OK Computer’와 ‘Kid A’ 사이에는 그만큼이나 넓은 음악의 화학적 간극이 있었고, 그것은 ‘The Verve’ 같은 탁월한 밴드가 단 세 장의 앨범을 남기고 해체한 것만큼이나 놀랍고도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가 바뀐 지금, 달라진 Radiohead로부터 또 한 장의 앨범이 날아들었다. 본인들도 이 앨범을 ‘Kid B’라고 부르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Kid A’ 앨범 수록곡들과 함께 녹음된 곡들이다. 음악적으로 ‘Kid B’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한 이 앨범은, 또한 여지없는 Radiohead의 앨범 그것이었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를 향해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황량한 전자 음향들과 왜곡된 사운드, 그리고 그 소리의 기나긴 잔향으로 채워진 사운드와 어딘가 불길한 코드의 변주는 ‘Kid A’와 그다지 멀지 않다. 다만 좀 더 이전의 Radiohead다운 멜로디와 노래가 강조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에서 ‘Kid A’ 이전의 Radiohead를 찾아 보려는 순진한 시도는 애초에 포기하는 것이 좋다. ‘Amnesiac(기억상실증)’이라는 앨범 타이틀에서 말하는 ‘상실한 기억’이 ‘Kid A’라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한 순진한 사람은 없겠지. 명백히 ‘Amnesiac’은 두번째 아이(‘Kid B’)의 이름이나 별명일 뿐이다.(정말 그런-기억상실증에 걸린- 애를 낳으면 가슴이 아프겠지만) 당연히 ‘Kid A’ 때의 충격과 당혹감은 사라졌지만, 이 앨범은 여전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는 어려운(또는 이해한다 해도 이토록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 세계를 음울한 사운드, 또는 노이즈로 펼쳐 내 보이고 있다.
이전, 기타팝 시절의 Radiohead의 음악은 크게 처연한 멜로디를 가진 느린 템포의 곡들과 강렬하게 질주하는 곡들로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그것은 세계에 대한 지독한 좌절과 고통을 토로하는 방법론의 차이였을 뿐이다. ‘Kid A’로부터 이들은 기존의 기타팝과는 전혀 다른 음악의 표현방식과 사운드를 채택하기는 했지만, 그 안에 담겨진 Radiohead 고유의 mind, attitude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멜로디와 친숙한 사운드를 통한 보편적인 공감대의 형성을 일정 부분 희생하는 대신 그들은 전자음을 사용한 방대한 소리의 스펙트럼을 얻었고, 그 소리들을 끊임없이 중복시키며 음악 안에 황폐하고도 적막한 공간을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차이는 취향에 따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이기도 하다.
명백히 ‘Kid A’와 동일한 시간, 공간,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Amnesiac’을 가장 뚜렷하게 ‘Kid A’로부터 구분시켜 주는 것은 노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의 많은 곡들에서 Radiohead는 정말 ‘노래’를 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orchestration이 멋지게 가미된 두 곡(‘Pyramid song’과 ‘Dollars & Cents’)과 거의 비트와 노이즈로만 이루어진 ‘Pull/Pulk revolving doors’, Jazzy한 Horn Session이 조화를 이룬 ‘Life in a glasshouse’는 참으로 인상적인 곡들이다. 그리고 반복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이 밴드는 참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조합하는데 특출한 재능을 지니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앨범의 예술적 완성도야 어떻든 내가 기대했던 Radiohead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었음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 밴드의 재능과 음악의 깊이는 나 같은 사람이 쉽게 단정짓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에 있다는 걸 적어도 본능적으로는 깨닫게 된다.(불행 중 다행)
‘Amnesiac’은 어쩐지 ‘배니싱 트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엄마 뱃속에서 함께 자라던 쌍둥이 중 한 명이 사라지는 것. 그야말로 그 존재조차 잊혀진 채 ‘Kid A’라는 쌍둥이의 한쪽만을 남기고 사라질 뻔 했던 트랙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이렇게 예쁜 앨범으로 나왔다는 건 죽었던 아이가 살아난 것만큼이나 Radiohead 팬들에게는 틀림없이 반가운 일일 테다. 새 앨범을 들으면서도 이전 앨범을 추억하고, 이 정처없는 소리의 쓸쓸한 향연이 때로 지겹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 음악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들의 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http://my.dreamwiz.com/breath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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