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좀 길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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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워싱턴 고지 (Gorge, Washington) 공연 후기
- 고지 공연장까지..
제 일행은 저까지 포함해서 모두 4명이었습니다.
공연 시작은 오후 7시 30분이었지만 일찍가서 좋은 자리를
맡고 싶은 생각에 오후 12시에 만나서 차로 3시간 거리인
고지 원형극장(Gorge Amphitheatre)으로 출발 하기로 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네 놈이 신나서 라디오헤드 1집부터 새로 나온 Amnesiac까지
크게 틀어놓고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길을 몰라서 좀 헤매기도 하고 중간에 햄버거도 사먹고 그러면서
약 오후 4시쯤에 공연장에 도착을 하고와서 보니 나름대로 일찍 왔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었습니다.
좀 기다리니까 저 멀리서 처음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 중 맨 앞에 한 명의 정말 죽자 사자 달려가는 모습에 웃으면서
여유를 가져보려 했지만서도 탐 얼굴도 보기 힘든 곳에 앉는 게 아닌가
조바심도 들었습니다.
- 공연장 입장
막상 들어가보니 신기하게 먼저 입장했으면서도
무대와 가까운 곳이 아니라 뒤쪽의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공연 시작 후에서야 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자리를 맡고 같이 온 친구들이랑 라디오헤드 티셔츠를 사러 갔는데
전 한 20달러 정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모두 30달러 이상이었습니다.
고약한 상술(따져 올라가보면 라디오헤드와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닐테지만
공연장에서의 티셔츠 판매는 중간 상인들이 하는 것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충동 구매와 분위기에 휩쓸려 화산이 폭발하는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 한장을
사고 말았습니다. -_-;
*여기서 라디오헤드 티 셔츠 구입 하시려는 분들을 위한 정보 하나..
이 티셔츠들 치수가 좀 비정상입니다. Medium을 사서 입어보니 완전히
Small이고 Large로 바꾸고 나서 입어봐도 보통 Medium보다 조금 작은 듯 했습니다.
같이 간 한명은 키가 좀 큰 편이었는데 X-Large를 입어도 쫄티가 되더라구요. --+
원래 좀 몸에 붙도록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입장하고 티셔츠 사서 다시 자리에 앉으니 5시가 좀 넘었습니다.
할 일 없이 앉아서 기다리는데 우호님이 갔었던 휴스턴 공연에서 베타밴드 대신에
나왔다고 했던 여자 DJ인 듯한 사람이 (아직 같은 사람인지 확인은 못해봤습니다)
턴테이블을 가지고 나와서 음악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랩과 힙합 음악에 쉭쉭 거리는
스크래칭까지 라디오헤드와는 좀 안어울리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흥겨운 음악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고지 원형극장은 도심과는 뚝떨어진 어떻게 보면 규모가
작은 그랜드캐년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고 무대 뒤로는 절벽 사이로 한가히 흐르는 강줄기도
보여서 경치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 무대 구석에 잠깐 올라와서 관중들을 쳐다보고 내려가던 탐을 목격한 후에는
이제 정말로 라디오헤드를 본다는 것이 실감되면서 가슴이 뛰기까지 했습니다. --+
드디어 7시 30분쯤에 여자 DJ가 들어가고 오프팅 밴드인 베타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섰습니다.
베타밴드가 등장하니까 사람들이 죄다 일어서서 좀 더 앞쪽으로 밀집해서 섰습니다.
마치 공군 조종사 같은 복장에 노래 부르는 사람은 중국 전통 옷같은 것까지 차려입고
영국 악센트로 인사를 하던 베타밴드는 뭔가 희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악도 라디오헤드와는 달리 주로 경쾌하고 시끌벅적 요란했습니다.
8시 15분쯤에 베타밴드가 들어가고 나서도 9시가 가까이 됐는데도 라디오헤드는
등장 할 줄을 몰랐습니다.
-라디오헤드 입장 & 공연 시작
라디오헤드는 제가 한눈 파는 동안 갑작스럽게 들어왔습니다. 웃으면서 손 흔들며
등장하는 멤버들과 꾸벅 인사를 하는 탐을 보고 박수를 치고 있는데 안그래도
베타밴드 등장후에 밀집해서 서있던 관중들이 더 앞으로 쏠리면서 이제는 옆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서있어야 했습니다. 첫 곡인 National Anthem의 베이스가 둥둥거리며
시작을 하자 왜 일찍와서도 높은 뒷자리에 앉던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으면 제가 있던 앞자리처럼 공연 내내 서있을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전 라디오헤드 공연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모슁(Moshing)을 해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한번도 락 공연 경험이 없던 저로선 순간적으로 겁이 확 들 정도로
서로의 몸을 밀어대기 시작했고 사람들 손에 들려서 관중석 앞 안전요원들한테 던져지는
사람들도 속출했고 이게 라디오헤드 공연인지 림프비즈킨 공연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마구 사람들한테 치이는 당황한 상황에서 그렇게 National Anthem은 잘 들어 볼 기회도
없이 끝났습니다. 좀 정신이 들고 긴장도 풀려서 제대로 소리도 지르고 따라부르기도 했던 건
세번째 곡이었던 Lucky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My Iron Lung의 기타와 Karma Police의
후렴을 들은 관중들은 더 흥분해서 날뛰어댔습니다. 저한테만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탐은 Exit Music의 기타 인트로를 길게 끌면서 관중들을 쳐다보는 눈이 이제 그만 하라는
것 같이 느껴졌고 후렴부분에서 갑자기 노래를 멈췄을때는 탐이 열 받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뭐 그러더니 물을 한모금 마시고 돌아와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후렴을 불렀고
그 후로 가끔씩 사람들한테 치이기는 했지만 관중들도 비교적 얌전해진 것 같았습니다.
전 운이 좋았던게 그렇게 밀리고 치이다 보니까 원래 서있던 자리보다 상당히 앞자리로 이동해서
과장 조금 보태서 조니가 눈을 껌벅이는 것 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 중반
공연 중반에 가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지르는 어색함도 완전히 없어지고
자리도 앞으로 옮겨졌겠다 신나게 박수치고 손 흔들고 몸도 흔들면서 따라불렀습니다.
Airbag이 끝나고 처음 들어보는 곡을 불렀는데 기타 소리가 무겁게 들리는게
이렇게 표현하면 맞는지 모르겠지만 I Might Be Wrong의 기타 음색을 몇배로 확장 시킨 것
같았습니다. 곡 끝부분에서 에드가 기타 다운스트로크를 크게 하고 나서 탐을 보면서
씨익 웃던 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음날 누가 MP3로 인터넷에 올린 것(뉴스란에 링크 시켜놨음)
을 들어봤는데 정말 음질이 공연장에서 듣던 것과 비교해서 형편없이 나쁘더군요. 기타 3대가
꼭 한대로 축소된 듯한 소리... 멤버들에 관한 전체적인 인상은 공연 비디오나
동영상에서 보던 것과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탐은 곡을 부르는 동안은 심취한듯
동작도 커지고 관중들한테 몇번 반응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곡이 끝나고 나서는 웃으면서
Thank You라는 말 외에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 가끔 콘트라베이스인지 비올라인지
하여튼 저는 모르는 첼로 비슷하지만 더 크게 보이던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던
콜린과 열심히 기타를 치던 에드한테서는 웃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조니는 영 별 표정이 없었습니다. 필은 언제나 그렇듯이 뒤에 숨어서 드럼만 치고 있었고..-_-
Paranoid Android를 시작하기 전에 이 곡은 뒤쪽 높은 언덕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탐의 말이 끝나자 앞에 있던 저한테는 존재감이 전혀 없던 저 뒤쪽 사람들로부터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이 들렸고 탐은 정말 처절하게 공연을 관람하던 우리 앞쪽
사람들한테 무안했는지 슬그머니 웃기만 했습니다. 다음 Idioteque에서 그 유명한 탐의
막춤이 터져나왔고 인트로가 낯설어 또 신곡을 부르나 했었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를
부르고는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는 멤버 모두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후반 & 앵콜
물론 공연 시작후 겨우 한 시간 좀 넘어서 공연이 앵콜 한번 없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박수를 좀 치고 있으니 멤버들이 다시 나왔고 탐은 또 한번
인사를 꾸벅하면서 Thank You라고 하더니 Talk Show Host를 시작했습니다.
탐이 앵앵 거리는 목소리로 You and Whose Army를 부르기 시작했을때는 조금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관객들이 조용해졌는데 탐도 좀 썰렁하다 싶었는지 피아노를 치다가
손을 들어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고 다시 노래 가사가 나올때는 이제 그만 하라는 손짓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래도 이번 공연에서는 탐이 좀 활동적(?)이라고 느꼈는데
중고등학교 수련회가면 레크레이션 강사들이 앉아있는 학생들 반으로 나눠서 누가
박수랑 소리 크게 내나 경쟁시켰던 식으로 이 쪽 저 쪽 오가면서 반응을 유도시키고
무대 앞 쪽으로 나와 손짓을 해대기도 했습니다. Climbing Up The Walls 끝부분에서
기타를 입쪽으로 가져가 아니 탐도 지미 헨드릭스 흉내를 내려는가 웃기는 상상도 해봤는데
알고보니 기타에 달려있던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How To Disappear를 마치고
손 흔들면서 들어갔는데 또 열심히 박수치고 있으니까 다시 나와서 Street Spirit과
The Bends를 불렀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베타밴드와 아까 그 여자 DJ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걸로봐서 이제 정말로 끝났나보다 했는데 탐과 콜린이 다시 나와서 (다른 멤버들도
나왔는지는 유심히 보지 않았습니다) Motion Picture Soundtrack을 불렀습니다.
Kid A 앨범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과 I'll see you in the next life라며 끝을 맺는 것이
인정하기 실었지만 이게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
공연이 모두 끝나서야 3시간 동안 혹사 당했던 발도 아파오고 정신없이 흔들어대던
목도 뻐근해오는 걸 느끼면서 천천히 공연장을 빠져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Let's go to Vancouver라고 소리 지르는 걸 듣고 혼자서 이 녀셕이 술 취했나 이 밤 중에
캐나다에는 왜 가쟤했는데 알고보니까 다음날 멀리 떨어지지 않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또 한번의 공연이 있었던 내막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갈 수만 있다면 또 한번 가서 보고
싶던 공연이었습니다. 그렇게 공연은 11시에 끝났고 우리 일행은 멍청하게 차를 어디에
댔는지 몰라서 30분동안 헤맸고 집에는 3시가 다 되서야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 특별 부록: 라디오헤드 팬 분석 ** (으하하하-_-;;)
저보다 먼저 라디오헤드 공연을 관람하셨던 우호님은 가보니 음울하게 생긴
백인 녀석들이 많다고 했는데 지역이 틀려서 그런지 제가 갔던 공연은 좀 틀렸습니다.
물론 백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동양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 바로 앞에는 동양인 3명이 있었고 흑인들도 몇명 있었습니다.
공연 한 때에는 레게 파마를 한 흑인 여자 뒤에 서있다가 찰랑 거리는 그 여자의 머리에
몇번 얻어맏기도 했습니다. --+ 나이는 주로 10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었고 30대초의 회사원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가끔 아저씨 아줌마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옷 차림을 살피고 나서 라디오헤드 팬들에 관한 일종의 고정관념이 깨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마릴린 맨슨 팬을 연상케 하는 것을 시작으로 약간 히피풍의 젊은이들,
양복차림을 한 사람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분홍색 폴로 셔츠에 긴 생머리를 한 남자 친구랑
여름 나들이 온 듯한 여자분까지 정말 복잡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좀 튀는 사람들을 빼고 보면 대체로 다 평범한 차림에 평범한 모습을 가진 평번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하긴 라디오헤드 멤버들도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