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3때 친구를 1년 만에 만났다.
그 아이가 재수를 했기 때문에, 나는 무지무지 바쁠 것이라 예상했고, 그래서 연락을 미뤄왔다.
수능이 끝나고, 대충 논술도 끝났다고 판단 되었을 쯤 나는 날렵하게 문자를 보냈고,
나의 똘똘하고 기특한 예상이 맞았는지, 얼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애는 코미디 하우스에서 내가 무지 매우 많이 추종하는 아름다운 김미연의
파마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부셨다. 그리고 흐뭇했다.
같이 노원역 일대를 걸었다. 고등학교 때 애들하고, 머리핀이나, 잡다한 반짝이는 물건들 ...
불 빛 아래는 괜찮아 보였는데, 집 조명으로 보면 엉망인 ...그래서 엄마에게 어린애 장난감 사왔냐고, 니 나이가 몇이냐고 ... 구박들었던 그런 잡다하고 쓸때 없는 것들을 사느라
그 길바닥을 강아지 처럼 돌아다녔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반짝이는 물건에 관심이 없어졌고, 머리는 고무줄로 묶는게 제일 좋다는 삶의 진리를 깨달아
물건을 잘 안사게 되었으니, 일 년 새에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졸업하고 한참 안 갔던 그곳은 여전히 ............. 지저분했고, 인정이 야박했다.
여전히 식당 서비스는 엉망이고,
길을 걸으며 유리창 밖에서 가게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주인 아줌마, 아저씨의 표정은 역시나 변함없이
손님이 올거면 오고, 안 올거면 저리 꺼지셈 ~ 하는 식의
나른하고 게으른 표정들이었다.
그대로라서 다행이었다. 가게에 들어갔는데, 깍듯이 인사한다면, 그것은 노원역스럽지 않은 일이다.
나 같이 게으르고 될대로 되라 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재수 없는 서비스지만, 그에 합당한 욕을 해도 될 하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아름다운 광경이라 볼 수 있다.
그 아이와 어느 간판을 기억할 수 없는 밥 집에 들어갔고, 밥을 시켜 먹었다.
웬일인지 가게가 무척 깨끗했고, 서비스 하는 여자도 예쁘고, 상냥해서 ...
먹으면서도 큭큭 웃으면서 이것은 노원역스럽지가 않아 ~ 라고 생각했다.
오늘 갔다 왔는데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슬픈 일이다.
기적적으로 간판을 기억해내거나,
외계인이 나의 방향감각을 개선시킨 후 노원역에 버려두고 지들만 떠났을 때
본능적으로 위치가 기억나는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면
다시 찾아가고 싶을 만큼 괜찮았다.
나는 상대에 따라서 말 수가 고무줄 처럼 달라지는데,
그 친구는 정말로 진정 나보다 더 수다스러운 존재라서, 나는 거의 말을 안 하고, 밥 만 먹었던 것 같다.
얘기 듣는게 더 편한다 .. 힘도 안 빠지고 ...
개그도 몇 가지 건질 수 있어서 즐거운 일이다.
재수할 때의 학원 이야기를 들었는데 , 학원 친구들과 놀러다니고 술 마셨던 즐거운 이야기들이었다.
즐거운 이야기를 들어 나도 즐거웠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
공부하느라고 바쁠까봐 , 그 친구 핸드폰만 번호 띄워놓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 하고 멍하게 보기만 했던 내가 떠올라서다.
내가 참 오바스럽게 남을 걱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 소심한 내 잘 못이니까 .. 하고 그냥 웃어 넘겼다.
한 명은 계속 수다스럽게 떠들고, 한 명은 혼자 비실비실 웃으면서 밥을 먹으니,
어떤 남이 우리를 주시했다면,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우리는 밖에 춥기 때문에 다음 갈 곳을 일단 정하고 일어서자면서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창밖을 계속 두리번 거렸다.
그렇게 다음 갈 곳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연히, 혹은 필연일까 ... 노래방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예전에 수능 끝나고 걔하고 같이 노래방 가려다가 가지 못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내가 기억해 낸 것이 아니고, 걔가 기억해 낸 것이다.
내가 기억했다면 결코 말을 꺼내지 않을 것 같다. 그 때 우리가 노래방에 가지 못 한것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그 일부가 잘 못 되었는데, 안 간 것이었다.
전적으로 내가 가기 싫어서였고 (그 때 왜 가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 특별히 기억이 안 난다)
이리저리 둘러대면서 요리조리 피해서, 아무튼 안 가는데 성공했었다.
그 때 이야기가 시작되니,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노래방 가는 것을 매우매우 좋아하지만, 나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과 가면
무지 스트레스 받기 때문에 , 정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한달 전에 중학교 때 친구와 노래방에 갔을 때, 굉장한 낭패였고,
그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이 친구와 정말 노래방 가고 싶지 않았다.
함께 가도, 따로 놀기 때문이었다. 각자 자기 곡 부르고, 같이 부를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게 없었다 .
그 낭패의 기억 때문에 , 나는 말했다
' 너 나랑 한번 노래방 가면 , 내가 나중에 노래방 또 가자고 그러면 즐 ~ 할거다 '
- '아냐, 안 그래 '
오. 예의 바른 아이 .. 그래서 나는 다시 설득했다.
' 너 나랑 가면 나는 정말로 이상한 노래들을 부를거야. 이미 많은 다른 아이들이 거부감과 후유증을 보여왔어 '
- '아냐, 정말 괜찮어 '
두 번을 경고했는데, 두 번 다 거절했으므로, 나는 최소한의 의무를 했고, 그 애는 기회를 두 번 다 뿌리친 셈이다.
결국 노래방에 갔고, 예상대로 .............. 따로 놀았다.
한 방에서 같은 기계로 한 화면을 보면서 노래 부르는 것 외에는 공유할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걔가 뭘 부르는지 알수 없었고, 걔는 ... 나에게 한국노래는 안 부른다면서 웃으며 말했을 뿐이다. 매우 어색한 표정으로 .....
일부러 안 부르는게 아니고, 몰라서 못 부르는 것이고, 일부러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편식해서 듣다보니, 미처 그곳 까지 범위를 넓히지 못 했노라고 매우 논리정연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못 하고,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노래방에 가면 외계인 취급을 받아서 슬플 때가 많고
우울하게 따로 노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필연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리고 왠지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더 많다 .. 아마도 내가 소수에 속하기 때문인가보다.
그렇게 우울했던 노래방에서의 시간은 지났고,
노래방을 나오면서
' 거봐 , 내가 이래서 가지 말자고 그랬잖아 ... '
라고 말했을 때, 친구는 아까처럼 .. -아냐- 가 들어간 적극적인 부정 대신 ..
슬쩍 웃어 넘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실 그게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노래방에서 놀고 나니 어둑어둑해졌고, 또 다시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기 시작했다.
노원에서 학원을 다녀서 이 쪽 지리를 잘 안다고 하는 친구의 안내를 받아
정말 맛있는 핫바를 파는 곳에 갔고 ,
파는 아줌마는 굉장히 친절했고, 만드는 아저씨는 , 핫바가 워낙 맛있어서인지,
그 기술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해보였다. 나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겉 모습만으로
속에 깻잎이 들었는지, 햄이 들었는지 구분해 내는 ,, 기름에 튀기면서, 잘도 그것들을 분류해내서
주인아줌마에게 건네주는 알바생도 훌륭해보였다.
아줌마는 매우 친절했고, 그 친절에는 약간의 경쟁의식이 느껴졌다.
건너 바로 앞에 , 같은 업종의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까 전에 간 노래방은 정말 성질 드럽고 당당한 아줌마, 아저씨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얼마나 내 기분이 불쾌했었느냐면 , 나올 때, 문을 발로 뻥 차서 나왔을 정도였다.
그 주변에 노래방은 그곳 하나였다. 그 성질 드러움과 당당함이란, 역시 독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왠지 비인간적으로 생겨먹기는 했어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에게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정말 행복하고 따뜻했던 핫바 먹는 시간이 지나고 ,, (즉 핫바를 다 먹고)
또 다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너무 한참만에 봐서 빨리 헤어지기 싫어서, 아무튼 되도록 긴 시간을 같이 있어보려는 수작이었지만
그래도 밖은 너무 추웠다.
던킨 도너츠에 들어가서, 너무 배가 불렀지만, 무언가를 시켜 놓고,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나눌 때가 제일 좋다. (먹을 때도 좋지만 )
밥 먹을 때와 비슷하게 ... 그 친구가 더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주로 들었다. 배가 불러서 너무 피곤했지만, 그래도 나는
응 ~ 정말 ? 우와 ~ 라는 말은 는 많이 했다.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게 생긴 친구인데도 , 고등학교 때의 추억 외에는 그닥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함께 얘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겨우 1년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공통된 생각을 하는것이 많이 멀어져 있었다.
어쩌면 그때도 그랬는데, 그 때는 학교 이야기만 하느라고,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음악 얘기지만, 아까 노래방에서 증면된 바로 , 이야기 나누기가 힘들 듯 하여,
학교 이야기 ... 내가 제일 행복해 하는 선생님 욕하기 ... 를 하고 싶었는데
예상외로, 그 내가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두 가지로 추측해보자면, 그 친구는 학교에 불만이 없는 매우 긍정적인 아이 .. 이거나
추억은 생각하고 싶지않거나 , 이다.
친구는 현재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했고, 나는 현재에 그닥 할 만한 이야기가 없고 심심하게 보내던 차였기 때문에 주로 듣게 된 것이었다.
친구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계속 했고, 사진을 보여주며 꽤나 닭살스러운 이야기들이 전개되어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는데, 결론은 둘이 헤어진다는 비극적 스토리로 끝나서
막판에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던킨에서 그렇게 수다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면서 나는 노원역에서 가까운 또 다른 친구네 집에가서 라면을
얻어먹기로 결정했다.
그 친구 집이 역과 하도 가깝다 보니, 아파트가 보였고, 충동적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문자도 보내서, 허락도 받았고 , 양심상 벨 누르기 전에 , 전화까지 했다. (안 받았지만 ... )
밖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날이면
유난히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작년 여름까지 정말 많이 그랬는데,
밖에 돌아다니는 나그네 생활을 여름 이후로 다 청산한줄 알았더니, 안 그랬나보다.
' 야 , 나 라면 끊여줘 ' 하고, 들어가서 나는 쇼파에 그냥 앉았는데,
'미친, 니가 끓여 먹어 ' 라는 응답이 돌아오고, 나는 부엌에 들어가서 라면을 찾아낸 다음에 내가 끓여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고분고분 라면을 끓여서 내놓는 것이다.
티격태격 싸우는 맛이 재밌어서 걔 괴롭히는데, 반응이 없어서 조금 심심했지만
그래도 '미친', 같은 욕 안 얻어먹은 건전한 귀의 상태로 라면을 먹을 수 있어서 기뻤다.
맨날 혼자 끓여먹다가 갑자기 두 개를 끓이게 되어 시간 조절과 물조절에 실패했다는,
맹탕에다가 불은 라면이었지만
그래도 고분고분 얻어먹을 수 있는게 다행이란 생각을 하였다.
친구는 나에게 치즈를 하나 줬는데, 먹으라고 했다.
만졌느데, 감촉이 이상했다.
전에 그애 집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빵과 우유를 먹은 적이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꼭 다 먹고 난 다음에 떠오르는 것이라서
이번에는 그 아픈 과거를 떠올리며, 먹기 전에 유통기한에 대해 물었다.
1월 초 쯤에 산 치즈라고 그랬다. 대체 그 집에는 최근에 산 음식은 없는 듯 하다.
삼인 가족 구성이라서 그런가보다. 우리집에는 보름이 지난 치즈란 절대 있을 수 없다.
이틀도 못 간다. 치즈 유통기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달 정도 괜찮다고 해서, 그냥 먹었다.
먹으면서 정말 한달이 유통기한일까를 생각했다.
저번에 빵과 우유를 먹고 안 죽었으니, 치즈도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된다.
다만 자신은 안 먹고 나만 준게 의심스러울 뿐 ...
그렇게 치즈먹으면서 컴퓨터 좀 하고 있다가, 애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무서워서 나왔고,
횡단보도에서 잘 가라고 하고 헤어졌다.
2시부터 8시쯤? 까지 일기이다. 행위의 나열같다.
쓰면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해 내고 있어서 놀랬다. 원래 이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오늘은 유난히 말을 아껴서 그랬던 것 같다.
노래방은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1년만에 무지 이쁘고 사랑스러운 친구 만나서 눈요기 하면서 행복했고
무작정 갔는데, 욕 안 먹고, 라면 얻어먹어서 좋았다.
내 일기는 늘 이리 단정적으로 끝을 정리한다.. 멋대가리없이 ... ㅋㅋㅋ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라서, 왠지 무플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