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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그 후.

담요2004-02-09 07:45조회 497추천 30
세상에는 별의 별 잡것들이 가득하다.
장례식을 치루면서 이 절대적인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고모부에게는 하나뿐인 여동생이 있다.
이 아줌마, 6년 동안 얼굴 한번 안비추다가 이번 설날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이 아줌마, 장례식 첫째 날, 그 추악한 얼굴에 분을 잔뜩 쳐바르고, 입술을 벌겋게 칠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날 병원에 찾아와 고모한테 돈 좀 빌려달라고 했단다.
이게 말이나 되냔 말이다!
병원비로 카드값이 잔뜩 밀린 고모에게, 아파서 누워있는 지 오빠 앞에서 그딴 말이 나온단 말이냐.
그리고 화장터에서 이 아줌마, 엄청나게 오바하더라.
아주 목이 터져라 통곡을 하더라.
이 무정한 인간아. 이렇게 어린 새-끼들 남겨놓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더니 뚝 그치더라.
삼우제 전날, 자기 집에 내려가서 약 좀 먹고 온다고 가더니
저녁에 전화해서 자기 좀 데리러 오라고 그러더라.
상주인 고모한테, 피곤해서 자고 있는 고모한테, 차로 자기를 모시러 오라고 말하더라.
주무시고 계셔서 안된다고 하니까 몇번 버스를 타야 되냐며 묻더라.
자기 하나뿐인 오빠네 집을 몰라서 물어보더라.
그리고 삼우제가 끝나고 고모한테 그랬단다.
자기한테 고모의 미니밴을 달라고 그랬단다.
그거 팔아서 병원비 내려고 했는데 그걸 달라고 그러더라.
그렇게 추하게 울어대던 여편네가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가 있는거냐.
생전 연락 끊고 살다가, 간암으로 쓰러진 지 오빠를 나 몰라라 하던 여편네가 어떻게.
장례식을 치루던 중, 고모부의 옷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모두 태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오자, 그 여편네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그 옷들 내가 가져갈께"라고 말했다.
고모 말로는 그 여편네가 원래 싸가-지가 없었단다.
그러다 요근래 잘하는 것 같길래 못 본 사이에 철 좀 들었나 싶었단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고모는 이 철부지 여편네가 너무 괘씸해 고모부의 75만원 상당의 코트를 보란듯이 나의 아빠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여자, 그걸 보더니 삐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웃기는 노릇이다.

조문객들 또한 웃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간암으로 죽은 사람 장례식에서 어찌 그리도 술을 퍼마실수 있단 말인가.
그들 중 대다수는 미친듯이 술을 들이붓고, 술에 취하면 잤다.
잠에서 깨면 다시 술을 들이부었다.
이 짓을 밤낮으로 반복했다.
그렇게 술에 취해 웃어재끼는 사람들 앞에서 어찌 울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눈물이 났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 사람들 앞에서 울기는 싫었다.
모두들 웃고 있는 와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되었다.
그들에게 소금 한포대를 끼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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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moviehead2004-02-09 08:05
맞아요, 이상하게 꼬여버리죠 눈 앞의 상황들이나 머리 속이나 감정들이나.

눈물을 참는 것도 힘들지만 흘리는 것도 힘들더라구요
김세영2004-02-09 08:54
..크흐흐 모순적인 이세상
암울한생물2004-02-09 09:37
저도 장례식날 화가 많이 났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 이해해요.
D2004-02-09 14:47
하아; 그렇군요..

정말. 참..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할 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