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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

담요2004-02-17 21:16조회 407추천 14
내 행위에 있어서 지대한 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을), 바로 "귀찮음"이다.
요즘의 일상은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이 점 또한 귀찮음의 힘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하루 왠종일 컴퓨터 앞에 머물러 있다.)

잠시 후 나는 학교에 가서 휴학을 신청해야 한다.
사실 이 일은 진작에 끝냈어야 했고,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위에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싶다.
내일은 반드시 학교에 가야한다.
하지만, 내일이라고 귀찮음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나는 자기 최면을 걸어볼까 한다.
이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귀찮음의 힘은 크다!)
일단 내 머리 속에 주입은 해놓고 봐야겠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 놈'을 상대할순 없으니까.

나는 잠시 후 잠이 든다.
8시가 되자 나의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내가 "그냥 안갈래"라며 헛소리를 해댄다.
엄마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나를 때린다. ('사실적인' 설정으로 최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나는 마지 못해 일어나 인상을 잔뜩 구긴다.
엄마가 뭘 잘했다고 인상을 쓰냐며 나를 더욱 세게 때린다.
나는 꼬리를 내리고 화장실로 줄행랑 친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밥을 먹는다. 이빨을 닦는다.
신발을 구겨 신고 집을 나온다.
담배를 피운다.
버스를 탄다.
자리에 앉자 마자 잠이 든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잠에서 깬다.
다급히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리얼리즘이다.)
역의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전철에 올라탄다.
자리가 없어 좌석 옆 기둥에 기대어 있다가 잠이 든다.
무언가 꺼림직한 기분에 잠에서 깨고, 황급히 침을 닦는다. (리얼리즘!)
강남에서 내린다.
스쿨 버스에 올라탄다. 잔다. 깬다. 내린다.
과사로 향하는 길의 막강한 경사를 오랜만에 느끼며 숨을 몰아쉰다.
오랜만에 맛보는 학교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들고 계단을 오른다.
학과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다.
조교형에게 "이게 누구야? 나의 사랑하는 철중이 아냐!"라는 거북함과 동시에 반가운 고정 멘트를 듣는다.
이내, 왜 그동안 연락 한번 없었냐며 구박을 당한다.

여기까지.
어째 쓰다보니 자기 최면이 아니라 예언이 된 것 같다.
혹시라도,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진작에 잘 것이지 이 시간까지 뭐했냐고 묻는다면.
"생활 패턴이 원래 이렇다. 갑작스레 바꿀수 있는게 아니다. 알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싶다.

역시 새벽은 횡설수설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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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끙끙2004-02-17 21:51
글이 좋아요
2004-02-18 04:41
이름나왔다.+_+
모르는사람2004-02-18 12:52
나도 귀찮음.. ㅎㅎ 귀찮음 근데 좀 심심해요.
담요2004-02-18 15:35
심심해도 귀찮은걸 어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