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 KID A
한국 음악팬들에게는 유난히 바쁜 가을이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서태지가 터뜨린 이른바 핌프록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그들에게, 국내 팬층이 두터운 영국 밴드 RADIOHEAD마져 충격의 신보를 들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말이 충격이지 실은 일대 사변(事變)이라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한마디로 이번 앨범에는 (CREEP)의 그림자도 없다. 아니 거의 모든 면에서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라디오헤드다.
따지고 보면 라디오헤드는 내놓은 앨범마다 줄기차게 성장과 변화를 보여온 정력적인 밴드였다.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2집『The Bends』를 통해 음악성을 인정받았으며, 또 21세기 록의 이정표라 평가받는『OK Computer』를 통해 데카당스한 세기말의 표정과 임박한 미래를 예술적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라디오헤드는 로큰롤 밴드로서 자기 완결적인 성과를 거뒀다. 여기서 더 어떠한 변화가 가능할지, 얼마나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지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 더욱이 소문만 무성하던 브릿팝 스타들이 줄줄이 몰락하는 영국 팝/록씬의 침체 속에서 신보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통산 4집『Kid A』에서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낸 변화의 정도가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다지 순탄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Kid A』수록곡 리스팅 문제로 거의 해체 직전까지 가는 갈등을 겪기도 했으며, 톰 요크는 한동안 곡을 쓰기 위해 기타를 잡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고 회상하고 있다.『OK Computer』앨범을 고비로 라디오헤드는 분명 어떤 막다른 정점에 도달했던 인상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주저앉거나 창조력의 빈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밴드가 되고자 했던 욕망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트래비스(Travis),뮤즈(Muse)등 라디오헤드 노선을 영리하게 답습한 밴드들이 영국 차트를 주름잡고 있을 때 이들은 사운드와의 치열한 싸움에 몰두했고, 그 드라마틱한 결과물은『Kid A』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Kid A』의 무차별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이 정도 사운드라면 도저히 브릿팝 레코드라고는 부를 근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록이라 불리는 밴드들, 토터즈(Tortoise),트랜잼(Trans Am),스테레오랩(Stereolap)과도 노선이 크게 다르다. 또 일렉트로닉 뮤직의 명시적 영향이 감지된다고 해도 동시대 테크노 뮤지션들과 직접 비교 대상은 아니다.『Kid A』에는 전반적으로 이태리 프로그레이시브 록의 느낌이 살아 있으며, 톰 요크가 데뷔 이전부터 즐겼다는 Warp 레이블 계열의 전위적 테크노 뮤지션들의 영향도 들린다. 굳이 명칭을 부여하자면 내용적으로 본작은 엠비언트(스타일이 가미된) 록 앨범이다. 전자적인 소리를 차용함으로써 기타록 사운드를 코디해 내던 전작의 수준을 한참 뛰어 넘어선 것이다. 관습적인 기승전결의 곡 구성은 자취를 감췄고 미니멀하면서 풍부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텍스처가, 또 다양한 아이디어가 특징적이다. 그런지 기타 리프는 비옥한 아날로그 신디음으로 대체되었다. 통속적 비감이 자취를 감춘 그 자리에 잔잔한 빛이 충만하다.
이러한 변화를 앞에 두고 역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어떤 코어(Core)라고 부를 만한 라디오헤드 본연의 색채가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느냐는 점일 것이다. 물론 본작『Kid A』에서 소울풀할 로큰롤 성향이 뚜렷하게 감퇴되어 버린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멜로디보다는 리듬감이 중심에 있는 만큼 이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병적이고 고독한 느낌을 섬세하게 캐치해내던 복고적이면서 미래적인 감성은 여전하다. 전자음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 서정미, 우수어린 아름다움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단 정서적으로 훨씬 더 내면에 침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작이 SF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면,『Kid A』는 마치 판토마임을 보는 듯하다.
첫 곡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에서부터 일렉트릭 기타는 종적을 감추고 키보드 룹이 사운드를 주도해 간다. 신비감을 자아내는 이 심오한 소리들은 멀리 독일 아티스트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기묘한 불협 화음으로 시작되는 타이틀 곡 (KID A)는 본작의 한 극단에 있는 넘버 중 하나이다. 마치 드럼 머신처럼 들리는 필의 독특한 드러밍과, 단속적으로 떠도는 톰의 변조된 보컬이 특이하다.
세 번째 트랙 (THE National Anthem)에서 비로서 그루브감 넘치는 베이스가 곡을 주도해 간다. 그러나 트럼본과 색소폰이 불안한 화음을 연출하는 프리 재즈 스타일의 후반부는 역시 매우 낯설다.
네 번째 트랙 (HOW To Disappear Completely)는 전통적인 라디오헤드 사운드에 가장 근접하여 안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편 프로듀싱의 묘(妙)를 느낄 수 있는 곡이기도 한데, 라이브 당시 연주되던 것과는 느낌이 무척 다르다.
(TREEFINGERS)는 엠비언트 성분이 강한 인스트루먼틀이며, 이어지는 (OPTIMISTIC)은 의도적으로 뽑아낸 로파이한 기타 사운드가 마치 펄잼(Pearl Jam)의 뭉툭한 기타톤을 연상시킨다.
톰 요크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는 (IDIOTEQUE)는 실험성이 가장 돋보이는 트랙인데, 댄스 비트가 먼저 눈길을 끌지만 오히려 다양한 음원을 솜씨좋게 골라내는 테크노적인 감수성이야말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보다 오테커(Autechre)에 근사한 듯하다.
올갠과 하프사운드가 흥미로운 (MOTION Picture SoundTrack)의 복고적 분위기와 함께 앨범이 마무리된다.
이번 신보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헤드 정규 앨범 라인에 편입되기에는『Kid A』가 너무나 아방가르드하고 전복적이다. 이것은 의당 EP로 나오는 것이 더 적절했다. 단 한 곡의 싱글 커트나 뮤직비디오도 없다는 소식도 이들이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길에 접어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처럼 어떤 아티스트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대중적 감성과 실험성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바로 그 접점에서이다. 어느 한 축에 무게가 쏠리면 그때 그 아티스트는 타락하거나 컬트화된다. 이번 앨범이 전통적인 라디오헤드 팬들에게 얼마나 코드를 울려줄 수 있을지는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연이어 발매될 예정이라는 5번째 라디오헤드 앨범이 좀더 『OK Computer』감성에 닿아 있다는 소식에서 얼마간 위로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왜 굳이 이번에 모험을 자행했는가, 왜 라디오헤드다운 친숙한 사운드를 들고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푸념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음반을 내놓아도 최소한도의 판매는 보장된, 소위 성공한 뮤지션이 계속 장사될 만한 물건만 찍어내는 것은 죄악이다. 적어도 변화하는 모습,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나는 이번 가을이 유독 한국 음악팬들에게 고된 것이 되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그 고됨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리라, 무릇 음식에 있어서 편식이 건강을 해치듯, 음악적 편식도 당신을 정서적으로 고갈시킨다. 음악에 대한 다양한 미각을 자극한다는 것, 바로 이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인생에서『Kid A』는 만날 만한 앨범이다.
이철웅[모던록 감상공간] elektro@hitel.net
내 영혼을 빼았아버린 명반 KID A (2000 앨범리뷰)
박지휘2004-02-28 02:19조회 658추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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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psyche2004-02-28 02:37
테그 통할텐데요.. 이상하다.
H.B.K2004-02-28 02:55
이거 라이센스반에 있는 그거 아닌가요?
Rock'N'Roll Star~2004-02-28 03:04
라센반에 있는 속지다~
암울한생물2004-02-28 04:15
읽을 수 있게 썼으면 좋겠 ;;
Radiohead2004-02-28 06:36
옹, 요거 얼마전에 친구시디에 들어있는걸 읽어봤는데 생전 첨 보던거더라구요. 그래서 이상해서 집에서 내 시디를 확인했더니 내껀 시커먼 수입반. 전혀 몰랐어요. 언제 수입반으로 구입했는지;
Radiohead2004-02-28 06:37
엠네지악도 빨간책이라죠. 히히.
Meditation2004-02-28 07:07
라센 사자마자 차근차근 정독한 속지
power채소2004-02-28 10:03
이거 앨범 사믄 써있는 거시기 뭐시기 아닌가?-_-?
세상 참 많이 좋아졌으요 ㅡ.ㅡㅋ
세상 참 많이 좋아졌으요 ㅡ.ㅡㅋ
KarmaHiro2004-02-29 02:47
명반중에 명반^^
(리뷰제목은 제가 정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