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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럼틀

Meditation2004-03-12 11:25조회 368추천 23

  유치원 오브 락에는 미끄럼틀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좋아해서, 놀이 시간에는 줄곧 미끄럼틀을 탔지요.

  연석이, 연수 형제도 미끄럼틀을 좋아했습니다.

  유치원의 아이들은 미끄럼틀의 미끄러지는 부분을 잡고 기어올라가서,

  다시 그쪽으로 타고 내려오며 놀았습니다.

  한 아이가 올라갔다 오면, 그 다음 아이가 올라갔습니다.

  유치원의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봤습니다.

  하루는 연석이가 낑낑대며 기어올라가서는,

  깡충 뛰며 말했습니다.

  '내가 대단한 걸 발견했어!'

  아이들은 연석이가 무얼 보고 그러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연석이는 미끄럼틀 위에서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한 거야?'

  연석이는 우쭐대며 아이들을 데리고 미끄럼틀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은 미끄럼틀처럼 매끈하게 뻗어 있지 않고

  여러 개의 발받침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며 다가와서,

  연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연석이가 좋은 걸 찾아냈구나?'

  그리고 선생님은

  계단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 칭찬받은 일은 연석이를 더욱 기분좋게 했습니다.

  곧 모든 아이들이 계단으로 올라가 미끄럼틀로 내려오게 되었고

  계단 오르기가 서툰 아이들은 연석이를 따라 배웠습니다.

  연수는 그런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저기로 올라오는 거지? 계단은 다리가 아프고, 미끄럼틀보다 위험하잖아.'

  연수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싫어서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내려오며 놀기를 계속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온 아이들은 반대쪽에서 올라와 방해하는 연수를 미워했습니다.

  연석이는 동생이 자꾸만 나쁜 짓을 하는 게 싫어서,

  연수에게 화를 냈습니다.

  '넌 왜 다른 애들을 방해하니?'

  '난 이게 재밌단 말야.'

  '하지만 미끄럼틀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거야.'

  '아냐. 원래는 안그랬어.'

  '선생님이 그러셨어. 계단으로 올라가야 돼.'

  '아냐.'

  연석이는 연수를 쥐어박았습니다.

  그래도 연수는 계단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한편,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힘들었던 아이들은

  연수가 계단을 올라가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연수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계단으로 올라온 아이들은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아이들이 너무도 답답하고 싫어서

  올라오는 아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려가곤 했습니다.

  다치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어떤 때는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석이는 여느 때처럼 계단으로 올라갔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연수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연석이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게 된 것이 모두 연수 때문인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연수는 털썩, 모래밭에 뒹굴었겠지요.

  연석이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넘어진 연수 위에 올라타고 연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너 때문이야. 모두 다 너 때문이야.'

  연수는 너무 아팠지만, 형의 힘이 셌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달려왔습니다. 연수는 그대로 누워 있었고,

  연석이는 씩씩대며 울고 있었습니다.

  연수가 숨을 고르고 일어나서 연석이에게 다가왔습니다.

  '형. 내가 한 일은 나쁜 짓이 아니야.

   우리는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재밌어서 그렇게 하는 거야.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착한 일도 아니야.

   형은 그냥 형이 하고 싶은 대로

   아이들이 따라 주기를 바라는 거지?'

  '아니야.

   너처럼 하는 것은 나빠.

   계단으로 올라가야 되는거야.

   선생님, 그렇지요?'

  선생님은 연수의 말을 듣고

  섣불리 연석이를 칭찬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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