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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떨궈놔야 하는가?

oxicine2004-06-03 14:04조회 384
"아저씨. 내려주세요."
"..."
"아저씨! 내려주세요."
"..."
"아저씨!!"
"..."

"허 참. 내려달라니까요 아저씨!"
술렁술렁. "저 아저씨 말 씹는다"같이 귓속말인지 뭔지 구별 못할 말들도 들려온다.

그제서야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저씨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알았어요. 내려 놓을테니까. 다음 정류장에."


버스 안에서의 실랑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고 한다. 버스 안 승객들과 기사 아저씨의 말을 미루어 본바로 추측.).
참 단순하다. 버스 정류장에 다달아서 버스가 멈춰섰을 때 하차 벨을 눌렀다는 것이다.
(본인은 버스 안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기에 벨이 정확히 언제 눌러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도로 위에서의 실랑이는 계속된다.


"아저씨 나만 내리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요!"
(사실 몇명이 같이 기다리고 있긴 하다.)
"..."
"아저씨! 내려달라니까요!"

"다음 정류장에 내린다니까요! 이 버스 안에 당신 혼자 탄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릴꺼면 왜 다들 정류장 오기 전에 벨을 안 눌렀어요?"
"허.."

"..."

"아저씨 내려 달라니까요!"


보다 못한 주위의 승객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냥 내려주지."
"정지 신혼데 내리게 해주세요."


그리고 잠시 후에 아저씨가 씩씩거리면서 혼잣말을 하며 문을 연다.
"정말.. 아가씨가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몰라. 여기 승객들이 얼마나 많은데.."



(뭐 대충 내용은 이렇다.)



...



'거리도 얼마 안되는데 한정거장 그냥 걸어가지.'라던가. '그냥 중간에 내려주면 될 것을.'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별로 단순한 문제 같진 않다.


도로위의 날아다니는 고철덩어리 교통수단인 버스 안 하차 벨이 만들어질 당시에 이 벨은 버스 정류장 다다러서 멈춰섰을 때도 유효하다고 알고있다.(초기 규칙.)
그런데 성질급한 우리나라 사람들로 인해 오랫동안 걸쳐 내려온 정류장 정지 전 벨 누르기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적 규칙도.(정지 후에(그 순간 포함.) 벨을 누를 시엔 다음 정거장 하차를 의미하게 된다는. 오랫동안 걸쳐 내려온 일종의 암묵적 규칙.)
(초기 규칙은 거의 내 추측이다;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중요한건 이게 아니니깐)

때론 x=a가 되기도하고. x≠a가 되기도하고. (이 것보단 포함관계가 더 적절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이 두가지 규칙이 서로 충돌해서 혼란을 빗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답답할 수 밖에.


그래. 도대체 어느 장단에 스텝을 밟으라는 겁니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앞에서(난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소리없이 스팀만 뿜고 있는 아저씨의 한마디.
"정류장에 정차하기 전에 벨을 눌러주세요!"
그리고 뒷 자리에서 홀로 누군가 조용히 대답한다.
"네.."

드디어 다음 버스 정류장에 도달.
정차.
그리고 바로 이어서 들려오는 신경질나게도 정겨운 '삐' 소리.






여담인데.
종종(은 아니군; 거의 매일같이) 지각할 때면 담임이 손수 찾아와 나를 꾸짖고 간다.(요즘은 그 것도 잘 안 한다. 매일 지각하다보니 지쳤나보다.)
"일단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건 시간 약속이야. 어? 그리고 너 신문 좀 가져오지마. 자꾸 교실에 엉망으로 널부러져 있잖아. 어?"

평소에 따지기 좋아하는 나는 그냥 건강을 핑계삼아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로 큰 마찰 없이 살려고 하진 않았지만 언젠가 그녀(라곤 하지만 할머니다;)를 붙잡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왜 선생님은 (수업)종치면 바로 안 들어오시고 어슬렁 어슬렁거리면서 5분 10분 까먹다 들어오세요?"







-

데자분가 데자완가. 그거 참 곤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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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김세영2004-06-03 14:08
큭. 흠... 재밌는 세상이 에요 ...
커피군2004-06-03 17:01
데자와 맛있어.
닉이라는이름은없다2004-06-04 02:58
글 맛있어요^^
D2004-06-04 07:37
멋지다-_-;

난 버스애용자가 아니라.. 그냥 기다리는데.
천천히 느긋하게. 뭐 5분 빨리 간다고해서, 내가 애를 더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이상한 걸로 비유하나-_-
Meditation2004-06-04 09:28
왜 선생님은 (마침)종치면 바로 안마치고 바락바락거리면서 5분 10분 까먹고 나가세요?!!
moviehead2004-06-04 09:29
떨군다는 말의 어감은 언제나 -_-b
Rock'N'Roll Star~2004-06-04 14:43
벨좀 미리미리 누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