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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게탕

캐서린2004-06-03 23:18조회 376

어제 삼게탕 먹으러 강남에 갔었다.

삼게탕 얘긴 차치하고서라도 먼저,
강남이라고 하는, 번화가에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네온사인, 건물들의 위풍당당함의 맛에 놀랐는데,
그건 내가 서울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소에 한번도 와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냥 갈꺼야?"
친구가 삼게탕을 다 씹고나서 나에게 물었다.
"1시간이나 걸려서 왔는데, 너무 아쉽잖아. 뭐라도 하고 가야겠어."

그래서 우린 강남거리를 걷기로 했다.
밤이라 어둑어둑하면서도 군데군데 반짝거렸다.
마치 사방이, 검은칠을 한 스케치북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미술을 바라보는것만 같았다.
우린 여러번 오르락 내리락 하고, 왼쪽 오른쪽 굽이굽이 걸었다.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노래들에 부합해,
나와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리드미컬하다.

"너, 뭐할꺼야?"
"글쎄. 나 갑자기 삼게탕이 먹고 싶어졌어."
"그럼 그거 사줘."
학교휴게실에 넋놓고 앉아있기가 뭐해서, 얼떨결에 이런 말을 했었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거기까지 가긴 뭐해서,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내가 한 말을 후회했다. 하마터면 울뻔했다.
게다가 친구란 사람은, 말이 '친구'지 사실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다.
그 때문인지, 알게모르게 거리감이랄지, 알수없는 벽이 생긴다.
"야"하고 부르는게 잘 안되서 "....야" 하고 앞에 공간을 남긴뒤에 소리낸다거나,
맨날 애같이 굴다가 가끔 어른스러운 모습이 보이면 내가 화들짝 움츠러든다거나 하는게 그것이다.

"기다려도 되요?"
"나도 잘 모르겠어."

휴게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이런 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난 왜 이런 사소한 대화에서 희망을 얻으려고 하는걸까.
몇번씩이나 포기를 외쳤었던 나인데, 왠지 비굴해보인다.

"야, 너, 뭐할꺼야?"

친구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이를 딱딱 부딪혀본다.
생각해보니, 친구의 생일과 그녀의 생일은 똑같다.
별것도 아닌 우연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태어났을지도 몰라.
이렇게 머릿속에 되뇌였더니, 친구가 그녀처럼 보인다.

항상, 매일 그녀를 회피하면서도 잊지못하는 내가 밉다.
친구를, 그녀를 잊기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나도 밉다.
입천장을 헐게 한 삼게탕이 밉고,
강남을 활보하는 사람들, 네온사인, 음악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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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Radiohead2004-06-04 01:02
삼계탕!
KarmaHiro2004-06-04 02:52
반계탕이도 먹고프다 ㅠ ~ ㅋㅋ
2004-06-04 05:03
난 오늘도 강남으로...ㅋ
D2004-06-04 07:32
삼계鷄탕-_-;이죠.

전 삼계탕 타박살만 먹죠. (고기 못 먹는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하던;;
D2004-06-04 07:32
..초복이 언제더라(달력을 향해 뛰어간다)
moviehead2004-06-04 09:16
나도 같은 반인 동기랑 삼계탕 먹었는데.

작업과 밤샘으로 지친 체력을 보강해야한다는 의미로...

근데 집에 왔더니 동거인이 이박 삼일 밤새고 들어온 날 보고 대뜸 하는 말이

'닭먹고 싶다' -

그래서 '넌 내가 닭으로 보이니?' 라고 말해주고

냉큼 시켜먹어서

어제는 닭에게 미안했던 날.

(ㅡ_-)
★★★★☆2004-06-04 09:49
고의적으로 삼게탕이라 한것 같은데;
lullaby2004-06-04 10:13
아아 삼계탕..ㅡㅜ
암울한생물2004-06-04 15:33
게 세 마리 잡아드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