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밤에 졸려서 퍼져있었는데 동생이 문 밖에서 그랬다.
"누나 엄마가 사슴벌레 잡아왔어."
"어엉."
졸리면 눈에 아무것도 안 뵈이기에 나는 대충 대답하고 (정말 저 소리 들으면 번쩍 깨어날 것 같은데 그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뭐냐?)
퍼져 잤다.
다음 날 일어나서 거실에 덜 깬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세수하고 역시 덜 깬 눈으로 다시 앉았는데
"흐어어어어억!!!"
눈 앞에 투명하고 넙죽한 유리병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들어와 있지 않은가?
엄마가 화단에서 고양이가 뭘 들여다보고 있길래 보니까 이 사슴벌레가 있었다고 했다.
(집 근처에 나무도 많고 바로 뒤는 산이 있어서 사슴벌레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양이도 사슴벌레를 먹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사슴벌레는 힘겹게 바둥거리고 있었다. 나가고 싶다고.
젠장 화가 나서 밥 먹으면서 엄마한테 막 따졌다.
엄마같으면 누가 엄마를 저렇게 잡아서 유리병 안에 넣어 놨으면 좋겠냐고
차라리 뭔가를 기르고 싶으면 하나 사든가 왜 이렇게 비인간적이냐고
막 화를 냈다. 엄마는 모기를 저렇게 잡아 가두면 풀어줄꺼냐고 했고 나는 나중에 죽이는 한이 있어도 풀어 주는 게 낫다고 아침부터 빽빽거렸다.
그런데 엄마의 상태로 보아 저걸 풀어줄려고 들고 나가면 막으실 것 같아서 나는 눈치를 살살 보았다.
타이밍을 맞추느라
머리를 감고 100m 밖에서도 눈에 띌만한 시퍼런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마침
동생이 딸기잼을 꺼낸답시고 딸기잼위에 얹혀 있던 마늘종지를 냉장고 안에 엎질렀다.
나이스, 나는 병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밖으로 막 달려나가 계단을 내려가서 나무가 많이 있는 곳에 (그리고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사슴벌레를 풀어주었다. 사슴벌레는 약간 허우적거리더니 조금씩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나는 엄마가 쫓아 올 까봐 멀리 비잉 돌아서 집으로 왔다.
(사람들 지나가는데 그 시퍼런 수건과 말리다가 말아서 이상하게 변한 머리 다 쳐다보았다. 젠장)
아파트 계단을 들어서는데 순간 엄마의 보복에 두려워졌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그 때 느꼈던 공포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엄마는 동생이 엎지른 마늘 종지가 최대 관심사셨고 그냥 욕 몇마디 얻어먹은 걸로 끝났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잘 한 일인 것 같다.
난 뭔가가 갇혀 있는 꼴은 절대로 참을 수가 없으니까.
사슴벌레
생강빵과자2004-06-16 08:02조회 370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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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visualpurple2004-06-16 08:15
고양이 키우시는가보군요..반갑~~+_+ 여하튼. 사슴벌레 풀어주신 건 잘한 일인 듯...근데 대부분 어머님들은 사슴'벌레'는 별로 안 좋아하시지 않나요?? ㅡ,.ㅡ
생강빵과자2004-06-16 08:52
아..아니요 저희 집 밖에는 고양이들이 우글우글한테 전부 다 도둑고양이 ; 그 고양이 밖에서 사슴벌레를 보고 있었죠. 저희 어머님께서는 상당히 과학적이시라 관찰을 좋아하십니다 -ㅁ- 매미도 막 잡고 그러셔요.
visualpurple2004-06-16 09:20
헉 놀랍구랴...+_+ 동물들이 좋아하는 집?
고기공2004-06-16 09:23
너 너 넓적다리 사슴벌레
장수벌레 악당들을 조심해
..이런 노래가 생각났;
장수벌레 악당들을 조심해
..이런 노래가 생각났;
R2004-06-16 12:59
굿 잡!!
고양이가 몰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게 사슴벌레라니,..넘 귀여워요^^
고양이가 몰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게 사슴벌레라니,..넘 귀여워요^^
D2004-06-16 15:10
남자의 로망-_- 한국어 버젼; (.........)
밀키스2004-06-16 16:08
패니실린?-_-ㅋ
나무2004-06-16 16:26
사사사 사슴벌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