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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캐서린2004-07-03 13:07조회 360추천 11

홍역 같은 몸살을 앓고 일주일이 지났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그런지 땀구멍이 좀 느슨해진 느낌이다.
대신 눈물샘은 그만큼 작아졌다, 고 믿고 싶다.
새까맣게 말려버릴 각오로 눈에 흰자 위를 부채질 해본다. 시원하다.

"남자는 평생 딱 세 번만 우는거야."

아버지의 입에서,
티비드라마의 누구에게서,
선배에게서, 이런말을 들은 것 같다.
그럼 난 항상 마음 속으로 질문했다. 왜?

왜?

왜 울면 안되지?
어릴 때 한꺼번에 세번 울면
나중에 아버지 죽어도, 나라 잃어도 못 우는거야?
입밖으로 내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대답을 해주었을까.

눈이 아파서 부채질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여러번 눈을 깜박였다.
깜박이고 난 후의 세상은 전보다 많이 달라보인다.
형태가 모호하고 이리저리 일그러진 것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주위의 공기는 뿌옇게 되어서 손을 휘저으면 흰색 가루가 잡힐 것 같다.

달라진 세상처럼,
이젠 무슨 말을 들어도 예전의 내가 아니다.
분해된 상태로 험준한 산길을 올르면서 파워업된 합체로봇처럼,
몸살과 불면증과 이름 모를 눈병을 앓고 난 나의 몸은 더이상 낡은 것이 아니다.

괜찮아, 하고 손을 부드럽게 흔들며 미소지을 수 있기를.
그저 담담하게, 손으로 휘갈긴 낙서처럼
그저 부질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눈을 감으면서 포근하게 꼭 껴안아줄 수 있기를.

모든게 희망사항처럼 사그라들지 않기를,

비내리는 창문 틈새로 입김을 넣어 작게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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