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여러 가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세히 적는다면 대학 노트 한 권의 분량쯤은 될 것이다. 잃어버렸을 때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었는데 나중에 가서야 몹시 아쉬웠던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특히 나는 온갖 사물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계속 잃어 온 것 같다. 나의 존재를 상징하는 코트 주머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숙명적인 구멍이 뚫여 있어서, 어떠한 바늘과 실로도 그것을 꿰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누군가가 내 방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안으로 불쑥 들이밀고는 "너의 인생은 제로야!" 라고 내게 소리쳤다 하더라도, 내게는 그것을 부정할 만한 근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고 해도, 역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생을 더듬어대며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것이-그 계속 잃어버리는 인생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나 자신이 되는 것말고 또 다른 길이란 없다.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버리고, 내가 아무리 사람들을 버리고, 온갖 아름다운 감정과 뛰어난 자질과 꿈이 소멸되고 제한되어 간다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 이외의 그 무엇도 될 수는 없다.
내가 좀더 젊었을 때는, 마치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카사블랑카에 바를 열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지인이 되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좀더 현실적으로-그것이 실제로 현실적인지 아닌지는 접어 두고-나의 자아에 어울리는 더 유익한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나를 변혁하기 위한 훈련까지도 했다. <녹색혁명>도 읽었고, 심지어 <이지 라이더> 같은 것은 세 번씩이나 보았다. 그러나 나는 매번 마치 키가 구부러진 보트처럼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또다시 나였다. 나는 아무데로도 가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거기에 머물면서, 내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절망이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절망인지도 몰라. 투르게네프라면 환멸이라 부를지도 모르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지옥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서머셋 몸이라면 현실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가운데 하나죠,,
부조리한 현실속에서 모든것이 허무해질때,,
정말 목구멍 끝에 있던,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인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