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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캐서린2004-08-02 22:05조회 366추천 6

골목길에서 한 사내가 서성였다.
모든게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 이른 새벽부터,
사내는 골목의 저쪽 끝을 왕복해오거나
왼쪽과 오른쪽 담을 왔다갔다하는 소모적인 행동을 벌이고있었다.
누가봐도 '저 사람 초조해' 라고 말할만큼
얼굴의 식은땀과 시종일관 입으로 가져가는 엄지손톱,
그리고 심하게 요동치는 손목, 이미 물증이 확보된 상태였다.
아마도 누굴 기다리나봐, 새벽운동을 나가던 노부부가 그를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마침 사내가 그들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죠? 저기, 여쭤볼게 있어요.
저기, 그러니까말예요.. 여기가, 여기가 어딘가요?"

할아버지가 목에 두른 수건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지역이름을 말하는거요? 여긴 서울 영등포구인데, 정확히는 대림동이고... 길을 묻는거라면 어서 말해보시오. 난 이곳 토박이니까, 이 주변에 가는거라면 충분히 알려줄 수 있소."

"아니 그게 아니고....."

사내가 얼굴에 붙은 식은땀방울을 손등으로 떨궈냈다.
그러고 나서 집게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말이에요. 바로 이곳. 제가 서 있는 이곳. 도대체 어딘가요?"

그러자 이번엔,
평소에 넌센스퀴즈와 수수께끼에 일가견이 있는 할머니가 대답했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은 타르바닥 위에요."

이번에도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사내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말도 하지않고 손을 휘저어 가도좋다는 표시를했다.

노부부가 가고나서도 그는 계속 골목을 맴돌았다.
몸은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해서,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해가 노란빛을 띄자 골목끝에서 방역차가 들어왔다.
노부부 다음으로 나타난 골목 손님이었다.
사내는 방역기계에서 나는 소음때문에 소리쳐 말해야했다.

"아저씨! 여기가 어디죠!"

"여긴 영등포구예요. 지금 난 방역을 하고 있고."

아저씨가 속력을 줄이면서 대답했다. 사내가 다시 물었다.

"그건 알아요! 하지만 내가 말하는건 그게 아니에요.
바로 이곳이요 이곳! 여기가 어디냐구요"

그러자 평소 UFO나 외계인에 대해 일가견이 있던 아저씨가
대답할까말까하고 망설이다가 끝내 대답했다.

"여기? 허허허. 그래, 여긴 지구요! 지구!"

순간 사내가 흠칫놀라서 되물었다.

"그래. 지구지. 이 좁은 골목도 지구고, 저기 넓은 운동장도 지구요.
내가 앉아 있는 방역차도 지구고, 당신이 서있는바닥도 지구요.
그럼 난 계속 일해야되니까 이만."

해가 노란빛을 띄고 중천까지 걸렸을때,
사내는 아직도 골목에 서 있었다.
아까처럼 움직이진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인채 멍하니 바닥만 바라봤다.
사내는 생각했다.
이런 비좁은 공간 안에서 바둥거려도 나는 결국 지구에 있는거라고,
더 넓게는 우주에 있는거라고. 그리고 난 그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을 살고 있는거라고.

사내는 두팔을 쫙 펼친 채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마치, 우주에서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만끽하겠다는양.

그러고 나서 그는 바로 골목 뒤에 있는 동산으로 향했다.
중간에 길을 만들기위해 엮어놓은 줄을 몰래 풀어다가
꼭대기의 아무 나뭇가지에 그걸 걸었다.
그리고 잠시 뒤 거기에 목매 자살했다.

골목에서의 사내는 우주에서의 사내를 외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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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Pyramid;Karma2004-08-0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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