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동안 감상에 젖기
캐서린2004-08-03 13:57조회 392추천 8
얼마남지 않은 방학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자주 드는 생각은,
'방학 중에 내가 한 게 뭐지?' 이다. 없다. X. 끝장.
ㅡ끝장
그래.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방학이 내 삶의 마지막은 아니지만, 기어코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것은,
자살하러 낭떠러지 앞에 섰는데 '이건 아니야' 하고 돌아서는 회사원처럼,
소모적이거나 비생산적인 일에서도 결단력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친구와 종각역에서 술을 마실때, 그녀가 우물쭈물 말이 없는 나에게 물었다.
"너 방학동안에 한 게 뭐야?"
나는 놀았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무 생각없이 얼떨결에 내놓은 대답인데도,
왠지 최대한 정답 이라고 믿게 된다. 난 정말로, 논건가? 방학내내?
심심했어? 자문해본다.
그렇다면 난 뭘하고 놀았지, 하고 따져보기도한다.
10시간 이상 잠을 자고, 실컷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고, 고민하고, 하늘을 보고,
오랑우탄에게 실을 바늘구멍에 꿰어내라는 임무를 맡기는 것처럼
나는 할듯 말듯 아슬하게 감상과 이성의 경계를 외줄타기했고,
그런 행위는 곧 '놀았다' 라는 간단한 과거형으로 연결, 일축된 게 아닐까.
ㅡ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난,
번갈아가면서 감상과 이성에 젖어있었다.
방학동안 말이다.
지난날 세웠던 계획들이 막상 다가오니 흐지부지 되어버린,
가시덤불 사이에 갇혀버린 고슴도치처럼,
나는 방학의 하루하루를 애매한 생활로 버텨왔던 것이다.
억지로 이렇게 정당성을 부여하는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입속에서 고요하게 '십발'을 외치지만,
그런 날 감추기 위해선 이게 어쩔 수 없는 정의이고 명분이다.
그래. 이제부터 딱 7일만 감상에 젖어있자.
굳이 다짐할 필욘없겠지만말이다.
ㅡ그러고 나서
외계인이 가져다준 인생의 리셋버튼을 찾아가서 말해야지.
"누를께요 아저씨."
"세이브는 안되는거 알지?"
"물론이죠."
누를 때의 쾌감에 사로잡히지 말자.
나는 이제 내가 아니게 되는거니까.
누가 날 바라봐도 모른척하는거야.
다른사람이 날 말려도 누르고말아.
머릿속에 벌레가 들어다고해도 믿지말자.
나는 나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거니까.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을 버려야지.
노력해서 안되는건 없어.
잊으려고 노력하면 다 잊게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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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Utopian2004-08-03 14:10
외계인중매는 안되는가..
D2004-08-03 14:16
리셋하면 처음부터 다 사라지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