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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쓰림

elec2004-08-30 14:15조회 396추천 17
그제부터, 이유없이 속이 쓰리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오랜만에 외박을 나가, 죽고 못 사는 친구와 함께 로미오 포인트를 보고, 공연 때 할 곡을 정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나는 몇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들을 따라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그러하더라. 허벅지에는 젖산이 한가득.

모르겠다. 나에게는 응당 있어야 할 걱정이나 번뇌가 하루아침에 이유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새 들어 웃는 횟수도 부쩍 늘었고, 친구들과 잘 논다. 얼마 전에는 올림픽도 같이 보고, 조추첨을 한 챔피언스리그에서 죽음의 조가 B조다 C조다 G조다 하면서 말다툼을 벌이기도 할 정도로 잘 논다. (G조가 확실하다.) 뭐든지 마음먹은 대로 되어가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그런데 속은 계속 쓰리다.

식사는 소화가 잘 된다. 원래 위가 상당히 좋지 않은 체질이긴 하지만,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때에 먹어도 별 탈 없이 그냥저냥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청양고추를 다섯 개나 연거푸 먹었더니 속이 막 아리고 견디기가 힘든 것이었다. 예전엔 이런 일이 없었지 싶어 병원을 간 거다. 의사는 누구나 겪는 별일 아닌거라고 하였다. 나는 예전에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고 나는 시시한 노동의 대가를 의사선생님께 전해주었다. 내가 한심할 뿐인 것이었다. 내 위는 튼튼할지도 모른다. 많이 먹는다. 그런데 키는 안 크고 살은 안 찐다. 위에서 흡수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긴 하다.

얼마 전에 먹은 배추 겉절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에 만성이 나서 무감각하다. 봄 같지도 않았던 봄을 여러 번 마주쳤지만 올해처럼 황토색인 봄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 겨울은 겨울같아야 한다. 항상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까 얻는 메리트다. 그런데 속은 계속 쓰려온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쓰리다. 한 번은 나는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나는 뉴욕이나 서울 등의 대도시에 살면 좋을 거란 생각을 하고 내가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사상을 생각해 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잘 알기에 거기에 동조하는 바이지만 조갑제식의 생각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좀 많이 이상하다. 또 가끔은 메신저에 들어오자마자 나가는 사람들은 날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런데도 나는 뻔질나게 메신저를 드나든다.

galntash nabazdan melhidu

담임선생님께서는 요새 스트레스가 많이 느셨는지 나에게 화를 자주 내신다. 실장인지라 대표로 혼도 나야한다. 니가 잘 못하니까 반이 이 모양이 아니냐고 하신다. 들을 때는 화도 팍 나지만 말대꾸할 생각은 없으며 당신의 말이 일면 당연하기도 하다. 솔직히 후보가 아무도 없이 떠맡다시피 해서 맡긴 하였지만 그래도 실장이랍시고 제대로 한 건 아무것도 없는 듯 싶다. 리더쉽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 따라주지 않는 거겠지. 그런데 앞으로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얼마간 더 잔소리 듣다보면 끝나리라. 더 잔소리 들으리라.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리라.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난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학년이라 입시에 대해 담임선생님께 여쭈는 일이 많은데 별로 알고 계시는 건 없는 것 같다.

오늘 아침운동 끝나고 들어와 요구르트를 두 컵이나 마셨는데 그게 원인인가?

내일 모레부터 중간고사 기간이다. 그런데 원서를 그 때까지 써야한다. 공부를 하긴 해야겠는데 원서 때문에 못하고 있다. 어차피 가능성도 희박한 원서를 붙잡고 있어야 뭐하느냐는 생각도 든다. 국사는 이번에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면서 풀라고 한다. 그래서 1학기 땐 점수 환타스틱하게 받았는데 이번엔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 중간고사 두 번밖에 안 남았다고 쓸데없이 의미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벌써 자습 세 시간째 컴퓨터 붙잡고 이러고 있다. 어제는 소화제도 먹었는데 상관없는 것 같다.

속쓰리다고 병원에는 안 갈거다. 병원가면 내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먹지 말라고 한다. 라면 피자 주스 매운 음식. 내가 라면이랑 주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들은 모른다.

Echoes가 두 번이면 47분이다.

나랑 친했고 내가 존경했기 때문에 저작권을 종종 침해하기도 했던 친구들은 벌써 다 빠져나가고 없다. 지금은 축구할 때 수 채우는 친구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뭔가 의미부여를 해보려 노력해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선천적으로 의미부여란 걸 잘 못한다. 왜냐하면 난 생일선물을 받아본 적이 두 번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뛴 축구경기에서 난 골을 넣지 못했다. 난 최전방 공격수다. 전 경기에선 한 골, 그 전 경기에선 세 골을 넣었었다. 이제 두 달 넘도록 축구를 접을 생각이다, 그리고 나서 헤딩연습을 할 테다.

어제는 선풍기를 틀고 잤었다. 배가 차가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졸업하기 전에 속쓰림으로 조퇴를 하고 병원에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러기는 힘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도 할 건 해야 한다. 신트림은 넘어오지 않고, 오심도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도 안 한다. 소화가 잘 되는 건 확실하다.

어렸을 때 신경성 위염과 장염을 앓았는데 잘게 간 홍합에 간장을 넣고 밥 비빈 것을 한 달 내내 먹었더니 다 나았었다. 하루는 그것만 먹다가 너무 질려 밥솥의 밥을 반찬도 없이 퍼먹었다가 어머니께 걸려 죽도록 맞았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정말 씻은 듯이 다 나았다. 그래서 난 잠깐 한의사가 되어 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서 한의사나 의사 얘기 꺼내면 싫어한다. 난 참 많이 변했다.

지금은 별다른 이상이 없다. 그냥 속만 좀 쓰릴 뿐이다. 내 마음은 편안하고, 이쯤 되면 거의 달관이다. 그런데 속은 쓰리다. 그저께 자고 일어났더니 이랬다. 조금은 달아올랐다. 반가운 손님인 양.

내가 열여덟살이기 때문에 속이 쓰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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