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미
캐서린2004-12-04 13:23조회 427추천 8
다리미의 열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냄새가 기분 좋았다.
맑은 날씨의 호박잎처럼 따끔따끔 내 뺨을 스치고 이내 사라지는 냄새다.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하루종일 다림질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옷장에서 구겨진 옷들을 두께 순서대로 차례차례 꺼냈다.
베이지색 남방, 스포츠 티셔츠, 갈색 면바지, 윈드 점퍼.
의외로 옷이 적어서 실망했다. 하지만 뭐, 냄새만 맡으면 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옷을 다림대에 펼쳐놓았다.
옷의 재질에 맞게 다이얼을 돌린다. 다이얼의 돌아가는 소리마저 사랑스럽다.
징-하는 소리를 내면서 다리미의 표면에는 아지랑이가 꽃핀다.
다림질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길게 그어진 주름을 목표로 삼고 다리미를 갖다 놓고 밀면,
옆에 또 다른 굴곡들이 형성되기 일쑤다. 전의 그것보다 훨씬 굵다.
조심스럽게, 당구를 치듯 각을 재고 다리미를 밀어보지만,
주름은 불멸의 영혼처럼 내 눈 앞에 미소 지으며 춤을 추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삶과 비추어 볼 때,
다리미나 나 자신이나 없애고 없애야 할 게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중요한 한 문제를 해결하면 옆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힘들게 없애도 또 곁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끝없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무의식적으로나마 알게 된다.
냄새가 좋아서, 다이얼의 소리가 좋아서
시작한 작업은 끝을 볼 줄 몰랐다.
나의 인생은 지금쯤 어떤 옷을 다림질하고 있는 것일까.
두터운 옷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손수건은 바라지도 않고,
단순한 박음질의 긴팔남방정도만 되어도 행복하다.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
댓글 1개
D2004-12-06 05:56
저도 다림질할때 그 냄새가 좋아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