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 이야기 -1-
이세용1999-04-29 05:48조회 0
이글의 제목은 "Radio Head 이야기 1" 입니다.
Written By 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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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이야기 -1-
1960년도는 비틀즈를 대표주자로 하여 영국음악이 전세계를 강타하였던 시기이다.
이른바 영국의 침공 (British Invasion) 이라고 불리우는 이 시기의 영국엔 수많은
뮤지션들이 왕성한 활동을 해왔었다. 1960년도는 이 외에도 현대적 감각의 Britpop
선두주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 영국 출신의 뮤지션들이 태어난 시기 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영국에서 가장 많은 음악인이 탄생된 지역은
바로 Oxford 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꾸준히 조사해나갈 Radio Head의 5명의 멤버들은
바로 이 Oxford를 대표하는 밴드이다. 그리고 지금의 그들은 어느덧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어 버렸다.
Radio Head의 멤버들 그들중 멤버의 제일 나이가 어린 Jonny를 뺀 나머지 4명의
멤버들은 전부 1960년도 말에 Oxford나 Oxford 근교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라났다.
덕택에 Radio Head의 음악에서 Oxford에 대한 글이라든가 그밖의 Oxford의 느낌등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리드보컬이자 기타연주도 같이하는 Thom Yorke, 그의 Full Name은 Thomas Edward
Yorke 이며 그는 1968년 10월 7일 Oxford 근교의 Northamptonshire에서 태어났다.
밴드의 리드기타를 맞고 있는 Jonny Greenwood는 1972년 11월 5일생으로
밴드 멤버중 유일하게 70년생이며 가장 나이가 어리다. Full name은 Jonathan
Greenwood
Jonny의 형이자, Thom 과 학창시절부터 친한사이로 지내던 Colin Greenwood는
1969년 6월 26일 생이며 밴드에서는 베이스를 연주한다. Full Name은
Colin Charles Greenwood
Edward John O'Brien은 애칭으로 Ed 라고 불리우며 기타, 퍼큐션, 보컬등을
담당한다. 1968년 4월 15일생
밴드의 가장 연장자 이자 드럼을 맞고 있는 Phill Selway는 1967년 5월 23일
생이다. Full name은 Phillip James Selway
Jonny와 Colin은 같은 밴드내의 형제이다. Radiohead가 아주 오래전부터
Radio Head 결성의 근원지는 바로 Oxford외각에 위치한 Abingdon School이였다.
밴드의 모든 멤버는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모든 과정을 가르치는
이 남자 사립학교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10살때부터 Thom은 이미 예술적인 작품 활동에 관심을 보여왔었다. 당시 Thom은
학교 친구와 함께 Art-pop dut (예술과 Pop음악을 합한 듀오)를 결성하였다.
이 듀오에서 Thom은 기타를 연주하고 같은 멤버의 친구는 부서진 TV로 무언가를
제작하는 (예전의 백남준 선생님께서 하시던 일) 그러한 일을 했었다. 수업시간
이외의 자유시간에는 Thom은 주로 음악실에서 혼자서 노래부르는것을 즐겼다고
한다.
Radio Head의 절반은 Thom Yorke다. 라고 말한다면 반대의 의견이 주루룩 나오겠
지만, Thom Yorke라는 인물이 빠진 Radio Head는 흔히 말하는 팥 없는 찐빵, 뼈다귀
없는 감자탕, 티라노 사우르스 없는 쥬라기 공원 이라고 할수 있겠다..
(뼈없는 닭갈비, 씨없는 수박은 아니다..)
Thom이 처음 음악적 영감에 빠지던 계기가 된것은 그의 8살 생일때 부친이
사다준 스페인산 어쿠스틱 기타였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기타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등 하다가 그의 생일선물로 친구가 사다준 Queen의 앨범 The Great Hits 1
을 들은 이후 Thom은 Queen의 Brian May 처럼 되기로 맹세를 했다고 한다.
익히 다들 아는바처럼 Thom은 어렸을적부터 (태어날때부터) 왼쪽눈이 떠지지
않는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이 병은 "안검하수증" 이라고 불리우며 눈꺼풀의
근육이 마비되어서 눈을 뜰수가 없게 된것이라고 한다.
이후 Thom은 6살이 될때까지 5차례의 수술을 받아왔고 그리고 나서 약간이나마
왼쪽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그의 왼쪽눈은 아직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
인데 No Surprises 뮤직 비디오를 보면 확실하게 알수 있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눈은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화 되어버렸고 아마도 그는 더이상 수술을
할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salamander, 그가 어렸을때의 학창시절 그는 학교 급우들로 부터 왼쪽눈을 제대로
뜨지는 못하는 덕에 Salamander 라고 불리우며 놀림감이 되곤 하였다. 결국 학교
급우들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고 그당시의 Thom은 주로 음악실등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예전의 Thom은 요란한 복장? 과 상당히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며 염색도 수시로
하는등 치장을 많이 하는 편이였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눈에 컴플랙스를 가진
나머지 했었던 행동이 아닌가 싶다.
여담이지만 Thom의 자연스런 머리 색깔은 갈색이 아닐까 추측해본다..(-_-;)
Thom이 14살이 되던해, 그가 다니선 Abingdon School 의 교내밴드라 할수 있는
TNT 라는 펑크밴드 Thom에게 가입제의를 해왔고 그는 팀에서 보컬로써 가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Thom 은 Abingdon School의 TNT 라는 펑크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미 이 밴드의 베이시스트로는 Colin Greenwood
가 활약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Thom이나 Colin은 특정한 음악적 지향보다는 그저 악기를 연주할수 있고
밴드에서 음악을 할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아서 연주를 하게 된것이였다. 그들이
펑크밴드에서 활동을 하게된것은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이 펑크의
물결로 넘쳐났던 시기였기 때문이였다.
1982년의 어느날 TNT는 해산이 되었고 Thom은 절친하게 지내던 Colin Greenwood에게
새로운 밴드를 결성해볼것을 제의하였다.
Colin의 친구이자 기타를 다루던 Ed O'Brien역시 그들에게 자신도 밴드에
끼워줄것을 제의하였다.
상급생이였던, Phil Selway 도 밴드에 가입을 원하였고 그가 드럼을
가지고 있다는것만으로 그는 밴드에 합류할수 있게 되었다. (-_-;)
Phil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와 Thom이 처음 만났을때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무슨 곡을 연주하였고 이윽고 Thom이 그에게 건낸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였다...
"Hey? Can you beat more faster?"
"이봐? 좀더 빨리 칠순 없겠어?"
Colin의 동생이였던 Jonny역시 밴드에 들어가기를 원하였다.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천재라고도 부를수 있던) Jonny의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였다.
그때가지 그는 기타나 베이스 드럼 등을 전혀 다루지를 못했고. (사실 그나이
의 신체구조에 맞는 악기가 어디 흔함감?) 그때의 Jonny는 학교의 오케스트라
에서 비올라의 연주를 하고 있었으며 항상 호주머니에는 하모니카를 넣고
다니면서 틈날때마다 하모니가 연주를 했었다. 밴드는 나이어린 Jonny를
연주도 하다가 다른 부분의 필요한 것을 메꾸는 식의 비정규 회원 (?)정도의
위치로 받아들였다. 따지고보면 Jonny가 기타,드럼, 베이스 이외에도 각종
이펙터와 키보드를 능숙하게 다룰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서 부터
시작했을것이다.
이렇게 하여 Radio Head의 전신인 On A Friday는 4명 반 (?)의 멤버로 출발하게
되었다. Thom은 인터뷰 등에서 밝히길 당시 밴드의 이름인 On A Friday가 밴드가
만들수 있었던 이름중 가장 최악의 이름이였다곤 하는데...그들이 On A Friday
라는 이름을 정했던 이유는 그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서 연습을 했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학생의 신분이였던 이들은 학업과 밴드를 병행하면서 생활을 하였으며
전문가로써의 음악적 활동을 하는것이 아니라 취미생활 로써 하는것이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이 연주를 할수 있는 Pub 이나 Venue등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주로 리허설 스튜디오 등에서 음악을 연습하는 편이였으나. 점차 학년이
높아지면서 음악을 할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줄어들고 결국 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는 On A Friday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공식적인 On A Friday의 데뷔는 1987년, Oxford의 자그마한 술집이자
클럽이였던 Jericho's Tavern 에서 한 공연이였다. 이에 때맞춰 그들은
지역내에서 밴드의 이름을 정식으로 'On A Friday' 로 알리게 되었다.
Jonny는 당시 하모니카 를 연주했었다고 하는데 Jonny의 경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첫번째 공연에 형식적으로 등장한 이후에는 다른 공연에는
참석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멤버들이 각각 다른 대학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밴드는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이것은 다시 멤버가 뭉치게 되었으니 휴식기였을뿐 어찌보면
해체였다고도 볼 수 있을것이다. 각자 다른 대학등으로 흩어지게 된 멤버들은
그 대학내에서도 꾸준한 음악적인 활동을 하곤 했는데 Thom의 경우에는 DJ 등을
하는등 테크노적인 음악을 즐기면서 대학내에서 인기몰이를 했었다고 한다..
Thom은 당시 그가 전공했었던 미술에서 F 학점을 받고 졸업을 못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제대로 점수를 받고 졸업장도 받았다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각 멤버가 졸업을 하게될 무렵. Ed, Colin, Phil은 Oxford근교에 위치한 조용한
집을 얻어 그곳에 연습실용 스튜디오를 꾸미고 그곳에서 다시금 음악을 하게
되었는데 결국 자연스럽게 On a Friday 는 재결성? 되었다. 이맘때의 Jonny는
기타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로 변신하여 다시금 On A Friday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1991년도의 멤버들은 Jonny를 제외하고는 다들 대학 과정을 끝마치게 되었다.
Jonny는 다른 멤버들이 대학을 졸업하던해 Oxford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Jonny가 대학에서 F학점을 받은뒤 그는 학업에 별 관심을
붙이지 않았고 그리하여 On a Friday는 5명의 멤버를 제대로 갗춘 밴드가
되었다.
같은 년도초에 그들은 On A Friday 자작곡 데모테잎을 Thom과 Colin의 동급생
이였던 John Butcher에 의해서 Oxford 근교에 있었던 Courtyard Studio라는
작은 Record Studio의 뮤지션이자 스탭진인 Bryce Edge와 Chris Hufford에게
전달하였다.
Chris는 당시에 처음 접한 그들의 앨범에 대한 느낌을, 좋은 멜로디의
노래, 라고 했으나. 타 밴드의 음악 영향을 받은 느낌이 눈에 띄게 확연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Thom과 Collin의 연락책이였던 John을 통해서 이
데모테잎 이외의 또다른 곡들을 요구하였다.
John에서 Chris의 답변을 들은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해서
다시금 새로운 곡들의 창작에 심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Jonny는
밴드가 Chris 의 대답을 들은뒤 부터, 짧은 기간동안 수많은곡을 작곡,편곡
하고 연습하였다고 한다. Thom 은 거의모든 곡을 자신의 기타로 작곡하였고
이렇게 작곡된곡 들은 각각의 멤버들에 의해서 편곡을 함으로써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Thom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에서 특별히 음악 교육을 받아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도 음악과는 무관하였기 때문에 그가 어렸을적부터 음악적인
감흥을 전수받지는 못앴다고 한다.......그는 자신이 작곡할 때에는 느낌만으로
시작한다는데 타 뮤지션이나 작곡가들이 피아노를 많이 쓰는데 비해서 톰은
기타만으로 작곡을 한다고 한다.
Radiohead의 곡들을 듣다 보면 특이한 노이즈 등을 접할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Creep에서의 파열음 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Jonny만이 가지고 있는 테크닉
에서 비롯된다. Radiohead는 기타파트만 3개씩이나 되는 특이한 라인업인데
여기서 Jonny가 맡는 파트는 타 밴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파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타를 통해서 표현할수 있는 각종 특이한 소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부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도 할수 있다.
이런시기에 그들은 자신에게 걸맞는 스타일과 분위기에 맞는 음악의 창작을 위해
노력하고 적지 않은 곡들이 이시기에 기본의 틀이 잡혀 만들어지고
나중에 편곡등의 과정을 거쳐서 Radio Head의 라이브에서 연주되기도 하고 앨범
수록곡으로 나오게 되기도 한다.
Chris가 새로운 곡에 대한 요청을 한지 몇달뒤 그들은 제대로 갖추어진 데모
테잎을 들고서 다시금 Chris를 찾아갔다.
"멋진 곡들이다. (Great Songs!) 이제 그들만의 확립된 느낌을 들을수 있다."
크리스는 On A Friday의 데모 테잎을 이렇게 평가하였고 곧 이 데모테잎들은
믹싱을 거쳐서 소수의 사람들 앞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On A Friday Demo 로 알려져 있는 이 테잎은 1991년 4월 Oxford의 작은 레코드
점에서 Tape 등으로만 유통되었다. 4개의 수록곡이 들어있는데. Radio Head
1집 수록곡인 Stop Whispering을 포함해서 What is that you say, Give it up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곧이어 On A Friday는 2번째 데모작업에 들어가게 되었고 같은해 10월달
The Manic Hedgehog라는 이름의 2번째 데모작품을 만들었다.
[The Manic Hedgehog Demo] 라는 이름은 그들이 데모테잎을 Oxford의 한 Record
점을 통해서 판매할때 그 Oxford의 레코드 판매점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당시의 그들은 이름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하지는 않았었다.
The Manic Hedgehog Demo의 수록곡으로는
I can't, Nothing touches me, Thinking about you, Phillipa chieken
You 의 5곡이 실려 있고 이중 I can't, Thinking about you, You 등은
리마스터링 되어서 Radio Head의 1집인 Pablo Honey에 실려있으며.
각종 부틀렉 등으로도 어렵지 않게 구할수 있는 편이다.
아뭏든 이러한 것이 생성되고 On A Friday가 이제 본격적으로 Oxford에서
알려지게 될 즈음 그들은 그들의 데뷔무대였던 Jericho Tavern에서 메인
밴드로써 수차례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서히 주변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알리게 될 무렵 Oxford를 중점으로해서 유통되는 잡지인 "Curfew"에서 그들은
잡지의 표지모델로써 자신들을 알리게 되었다. 이른바 '뜰' 준비가 된것이였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게 되면서 On A Friday 는 수많은 클럽, Pub 등의
Minor Venue에서 수많은 초청을 받게 되었고 역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밴드의 인지도는 높아져 갔다.
제대로된 유통구조와, 저작권의 올바른 이용과 적절한 자금조달을 위해서
그들은 레이블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들이 첫번째 공식
공연을 끝마친이후 약 25개의 레이블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왔다.
그리고 당시, EMI 레코드에서 신인 뮤지션을 발굴해 내는 매니저 역활을
하는 (A&R Person) Keith Wozencroft 가 Our Price (일종의 슈퍼마켓)
Oxford 지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우연히 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던 Colin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Colin은 그에게 우리 밴드와 계약을
해보는것은 어떻겠느냐? 며 밴드의 데모 테잎을 넘겨 주었다. 데모테잎을
넘겨받은 Keith 는 어느날 Oxford에서 가졌던 On A Friday의 공연을 보았고
그는 당시 공연의 스텝에게 몇달만 기다려 보라는 메세지를 남겨주었다.
Keith는 그들의 데모 테잎을 EMI 본사의 매니저인 Nick Gatfield에게 들려주었고
머지않아 On A Friday는 EMI 산하 레이블이자 Beatles ,Queen, Beastie Boys 등이
소속되어 있는 대형 레이블인 Parlophone과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
계약이 성사된지 얼마 안되 On A Friday는 The Venue 에서 공연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첫번째 공식 평론을 가지게 되었다.
연주한 곡목은 Prove Yourself, Thinking About You 그리고 I Can't 였다.
평론가 John은 On A Friday의 음악중 일부분들은 예전부터 인기를 끌던 타밴드들의
음악과 흡사하다하는 점을 지적하였고 그들의 공연에서의 무대매너가 좋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였다 (의상등...).
그리고 비록 Radio Head의 멤버들은 아직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비단 John뿐만이 아니라 다른 평론가들도 그들의 음악이 다른 밴드의 음악들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로 인해 밴드는 On A Friday 시절부터 Radio Head의
1집을 발표하기 이전까지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Pixies의 아류",
"Mod Cons 시기에 휩쓸린 마지막 부류" 라는 비평을 받기도 하였다.
Radio Head가 정식으로 메이저 데뷔에 성공하고 Creep등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밴드가 된 이후에 가졌던 평론가 John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미
On A Friday라는 밴드를 그들의 공연을 보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On A Friday가 여러 클럽들을 전전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을 무렵 Ed는
John에게 자신들의 공연을 와서 봐달라는 편지를 John에게 여러번 보낸적이
있었다고 한다. John은 그 편지를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그는 그 편지를
전부다 무시했었다고 밝혔다. 당시의 John의 평론에따라서 밴드의 생명이
좌우될 정도로 John의 평론의 위력은 대단했었다.
그러한 이들의 평론은 밴드에게 영향을 주었다. 밴드들은 이러한 평론가들의
평론을 수렴하여서 음악적으로나 이미지 적으로도 밴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고 On A Friday라는 밴드명이 별로 나쁘진 않지만 세속적인 이름이라는 것에
동의하고는 그들의 새 이름을 Talking Heads의 True Story 앨범에 수록된 곡의
제목인 'Radio Head'에서 따와 그들은 명칭을 Radiohead로 바꾸어 버렸다.
Thom은 그들이 굳이 Radiohead 라는 이름을 골랐는가? 라는 질문에는
"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골랐다." 또는 " 그냥 그게 좋아서." 라는 답변을
한다. 그들에게 그 이름은 중요한 의미가 아닌듯 싶다.
이제 밴드는 Radiohead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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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글은 제가 나우누리 Radiohead 팬클럽에 올린글로써 총 6편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