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 이야기 -2-
이세용1999-05-03 03:39조회 0
- Radio Head 이야기 2 -
Radio Head의 본격적인 시작..
밴드명 Radio Head,
5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그룹,
본거지 Oxford,
매니저 Chris Hufford.
Parlophone이라는 대형 레이블과의 계약은 틀림없이
그들이 메이저 데뷔를 위한 큰 발판이 될수 있었지만
대형 메이저 레이블이 새내기 밴드에게 주는 압력과
음악적인 제약들은 Radiohead에게는 넘어거야할
고비이기도 했다.
첫번째 싱글 레코딩(실제로는 EP)을 하게 되었을때
Radiohead가 녹음을 한곡들중 일부분은 레이블의
강압에 의해서 다른곡으로 대체되기도 하는등 당시의
Radiohead가 자신들의 곡을 선택할만한 이유있는
항변도 그들의 생각처럼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곡들보다는 주로 Parlophone
에서 요구하는 곡들을 레코딩해야한 했다. 자신이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는 Thom의 경우에는 이러한
것들이 결코 맘에 들지 않는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Thom은 이후에도 수없이 스튜디오에서의 작업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 놓게 된다. 결국 Radiohead가
그들이 스튜디오에서 행한 녹음작업에 만족을
얻게되는때는 그들이 직접 자신의 녹음 작업에
많은 부분을 참여하기 되는 O.K. Computer 를
제작할때부터라고....
레이블과 아티스트간의 대립은 예전부터 오랬동안
계속되온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싸움일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고 레이블에서는 돈이 되는
음악을 원하고 있다. 이 둘사이의 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진다면 별 상관 없겠지만 서로간에 어긋난 견해의
차이로 차짓 아티스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줄
수도 있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말도 안되는
이름을 쓰고 있는 프린스 라던가. 소니와의 오랜
항쟁으로 인하여 음악적으로 왕성할 시기의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 버린 조지 마이클 웃기지도 않은
내용으로 레코드 회사에게서 고소당한 닐 영 등등.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형 아티스트들의 예이고
당시의 Radiohead 같은 신인 아티스트들의 경우
그들과 레이블의 계약등을 보면 상당한 음악적인
권리마저도 레이블이 선택이 우선시 되는등
아티스트들에 대한 제약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레이블에게 있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음반의 경우에는
레이블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였다.
당시 백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Radiohead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비록 데뷔도 했고 평론가의 평도 받았지만 Radiohead는
당시 거의 인지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였다.
그들의 대부분의 음악 활동에 대한 주도권은 역시
자본을 뒤에서 받쳐주는 Parlophone 에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1집 발매후, 2집에서는 그 주도권의
대부분을 Radio Head가 찾게 되었고. 3집에 와서는 이제
Parlophone은 Radiohead가 우리 레이블에 속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뿐이다. 라는 발언을....
(역시 출세를 해야.....)
Drill EP의 제작은 시작되었고. 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음악 산업에
뛰어들은 신인으로써의 Radiohead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음악적인 제약과 함께 그들은 녹음 작업의 스태프 들과의 관계도
별로 원만하지 않았다.
특히 Thom과 Hufford는 서로간의 음악적인 견해가 틀린 부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나 더 심했었다고.......
이러한 장애물을 그런대로 순조롭게 해처나가면서 Radio Head는
첫번째 EP를 발매하였다. (EP긴 하지만 싱글로 취급함)
1992년 5월 Radio Head는 EMI의 유통망을 통하여 전 영국에
Drill EP를 발매하였다. 전영 싱글 차트에서 101위 까지 오르게
된 이 EP는 우선 자신들의 레이블인 Parlophone에서는
' 가능성이 있지만 조금더 두고 봐야겠다.' 라는 정도의 반응을
얻게 되었고. 이와 함께 Radio Head는 좀더 명성이 있고 전문적인
프로듀서를 영입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2번째 싱글작업에는 과거 Buffalo Tom의 "Let me come over"
등을 프로듀싱한 경험이 있는 Paul Q, Kolderie 그리고 Sean Slade
등의 3명의 미국인 프로듀서가 싱글작업을 위한 단기 프로듀서로
영입되었고 그리 큰 무리 없이 Radio Head의 2번째 싱글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2번째 싱글에서도 Radio Head는 자신들의 싱글에 대해 그리큰
주도권을 질수가 없었다. 이번 싱글 역시 Parlophone 에서 골라주는
곡으로 레코딩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
그렇긴 하더래도 이번의 새로운 프로듀서들과 밴드하고는 그런대로
의견일치를 많이 보았었다고 한다. Jonny의 말에 의하면 서로 같이
Parlophone을 씹어댔다고.. (-_-;)
Parlophone에서 지정해준 싱글을 위한 2곡들은 Inside My Head와
Lurgee 몇번의 연습을 가진뒤 본격적인 트랙 레코딩을 시작하는 날..
레코딩 직전에 가진 리허설 (예비연습)에서 밴드는 레코딩을 해야할
Inside my Head 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머지 약 10여분간의 상의를
하고나서 예정에 없던 곡의 연주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그들을 지켜본 프로듀서중의 한명 Sean Slade는 이때 그들이
연주했던 곡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들은 예정에 없던 곡을 연주하였고, 아마도 방금 만들어낸 곡을
연주하는거 같았습니다. 그곡에 대한 느낌은 옜날부터 있었던 익숙한
느낌같은 노래였습니다. 평범한 느낌의 음악...하지만 내 생에 결코
놓칠 수 없는 그러한 느낌을 전달받은 음악이였죠..."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을 울렸다는 그리고 자살 충동질을 팍팍 느끼게
한다는 그리고 지금도 Radiohead를 꼭꼭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귀찮게
만드는, 또한 Thom의 말을 빌리자면 Fucking boring 한 곡,
밴드가 싫어하는 곡, 하지만 곡 자체는 좋기때문에 여전히 공연에서
끊이지 않는 레퍼토리로 연주하는, 근데 98년 Tour 도중 언제부턴가
더이상 연주하지 않는, 가라오케 머쉰에도 들어있는, 밴드 이름보다
더 유명한 곡
'Creep'은 영국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단지 10분만에 탄생하고 말았다.
"Creep"에 얽힌 이야기가 한두개 이겠느냐 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Jonny가 하는 기타의 파워 코드 부분, (다들 아시리라 생각함) 이것은
실제로 곡의 연주를 위해서 집어 넣은 효과음이 아니라 Jonny가 곡의
느낌이 너무나도 싫은 나머지 곡을 망쳐버리기 위해서 집어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정말일까? -_-;)
Creep이 처음 나온 당시 Radio Head가 Creep의 연주를 하고 나면 그
곡을 듣는 이들은 다들 약먹은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치명적인 반응을 일으킨 Creep은 그들의 첫번째 정규 앨범
Pablo Honey에 실리게 되었다.
- Pablo Honey -
Radiohead의 첫번째 앨범이라는 것보다는 Creep이 실려 있는
앨범으로 더 유명한 이 앨범은 약 3주만에 레코딩을 끝마친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이 앨범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Creep
이라는 곡 때문에 샀을것이다.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이미 적지않은 기간동안 밴드가 만들었던
곡들과 지난 몇번의 싱글 발매를 통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들을
모아서 만들은 앨범이였으며 이미 적지 않은 곡들을 전에 레코딩했던
경험이 그들이 빠른 시일내에 이 앨범의 레코딩을 끝마친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사실상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믹싱과정에서
잔향 처리도 하지 않은 그런 앨범인데 각종 효과음들이 삽입되고
1년여의 과정에 걸쳐서 수차례의 믹싱과정과 마스터링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3집 OK. Computer 와 비교해 보면 정말 큰 차이를 느낄수
있을 것이다.
또한 멤버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여러가지 주변 여건들은 수많은
아쉬움과 함께 이 앨범을 빨리 끝마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Colin의 말에 의하면 베스트 모음집 같았던 앨범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앨범은 사실 Creep이라는 곡하나가 눈에 띄고 (차라리 히든 트랙으로
넣어버리는것이 더 나을정도로) 다른곡들도 하나 하나씩은 무난한 곡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앨범의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 앨범이다. 하지만
역시 Creep은 컸다. Creep만으로도 이 앨범은 사야할 가치가 생겼으니...
그렇기 때문에 상업성은 높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높지도 않았지만.)
앨범의 완성도는 좀 떨어지는, 그런 앨범이 되어버렸다. Pablo Honey
는 3주 만에 앨범 녹음과 믹싱 작업이 끝난 것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상업성 짙은 날림 앨범 하나의 녹음 작업을 5주 이상으로
잡는것과 비교한다면 정말 엄청나게 짧은 기간내에 작업을 마쳤다.
이러한 것을 볼때 완성도 높은 앨범을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다.
여담이지만 Crying Nut과 Yellow Kitchen등이 작업한 Out Nation 1의
경우 이 앨범은 3일만에 작업을 끝마쳤다고 한다. 기네스북 협회에
등록해보면 어떨까나?
암튼 이렇게 제작된 Pableo Honey는 출시되자 마자 평론가들의 도마
위에서 적잖은 난도질을 당했다. 우선 당시 영국이 미국의 그런지
열풍에 휩싸였다가 소강의 국면으로 들어가던 상태였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Nirvana나 Pearl Jam과 흡사한 (왜 흡사한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Radio Head의 음악적 스타일을 놓고서 많은 비평을 하였다. 또한 이미
이시기의 영국은 한동안 있어왔던 슈퍼스타의 부재의 공백을, 1970년대의
싸이키델릭한 글램락의 이미지를 1990년대로 다시 가져온, Suede 가
몇번의 싱글 발매 만으로 영국에서 차세대 스타로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바람에 Radio Head는 차세대 스타로 부각될수 있었던 상업적인 희망도
바랄 수 없었다. 상업적으로 바라기 힘든점으로는 Thom의 외모도 한몫했다.
Radiohead의 중심 이라고 여겨지는 Thom은 그때당시엔 대낮에도 커다란
썬그라스를 끼고 다녔어야만 했다.....(Video kills the radio star.....)
밴드 멤버들 또한 그들은 1집 Pablo Honey를 제작하면서 여러가지 아쉬었던
점들이 많이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Parblo Honey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것에는 2집 3집이 너무 잘난탓이 컷다고 생각한다. (^^;)
개인적으로 써보는 의견이지만. 만약 Radio Head의 앨범을 구입안한 상태에서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3집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그 다음엔 2집을
권하고 싶다. 나중에 분석할 예정이지만 3집은 정말 각종 레코딩 작업의
묘미를 느낄수 있는 그런 앨범이라고 할수 있고 2집은 앨범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곡이라고 생각될만큼 전체적인 곡의 조화가 대단하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나 역시 Creep이라는 노래를 통해서 Radio Head가 누군지도
모르고 1집을 먼저 접해 봤으며 2집, 3집을 차례대로 사긴 했지만....
2집과 3집이 Radio Head만의 확실한 느낌을 찾을수있는 (Identify가 있는)
앨범이라고 할수 있는것에 반해서 1집은 별로 그렇지를 못하였다.
첫번째 발매당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긴 6,000 장 정도의 판매를
하였고 영국 차트에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78위를 기록 하였다.
(후에 가서 Pablo Honey는 다시금 인기를 얻으면서 결국 25위 까지
오르긴 한다.) 그리고 아직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아무런 Radio 나
TV등에서 방송되질 않았다. 앨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그저 미미할
정도 였고, 몇몇사람들만 Creep에 미쳐갈뿐이였다.
Pablo Honey와 시기를 같이하여 Anyone can play guitar도 3번째
싱글로 비슷한 시기에 발매 되었고 역시 앨범과 비슷하게 도마질을
당했다. (불쌍..)
1집의 제목은 Pablo Honey 인데 이러한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었일까?
그 확실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전에도 말했다 시피 그들은 제목에
대해서 그리 특별한점을 두려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이러한 이름을
얻게된 이유로는 1집의 수록곡중 "How do you"를 유심히 들으면 곡의
후반구에 가서 어느 남자의 목소리 같은것을 들을수가 있다. 이는
뉴욕 출신의 Jerky Boys 라는 2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밴드에서 만들은
곡중 들어있는 한 샘플이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나온 시디나 앨범은
없고 단시 부틀렉으로만 돌아다니는 이 앨범을 우연히 Jonny가 손에 얻게
되었고 이것이 앨범에 씌이게 된것이다. How do you에서 들을수 있는 내
용은 다음과 같다.
-Hello?
-Yeah?
-Pablo, honey?
-Yeah?
-Please,honey,come down to Florida.
-Huh?
-Come to Florida,honey,we need to...
-Yeah? Who's this?
-Pablo, honey, been washing your ass, Pablo?
-Who is this?
-Keep yourself clean, honey?
-Hello?
-Pablo?
-Yeah?
[1:40 onwards, How Do You, right speaker]
-Please come to Florida
-Who the hell is this?
-Oh you...you bastard,you.....
-Hello?
-Pablo..
-Yeah?
-You bastard.......Pablo?
그들의 싱글 발표뒤 EMI는 Radio Head의 미국의 진출 가능성의
탐색을 위해서 Creep의 싱글을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등 에
홍보용으로 나누어 주기 위한 발매를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
영국에서의 그저 그런 반응과는 별개로 Radio Head는 미국에서는
눈에 띄는 인기를 거두었다. 먼저 가장 눈에 띄게 Radio Head가
인기를 누린 곳은 San Fransisco였었다. San Fransisco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Live 105" 라는 프로그램은 Radio Head의 Creep을
'프로그램 선정 93년 최고의 곡' 으로 뽑게 되었다. 물론 이는 1993년
말의 이야기 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여파는 곧이어 근처 LA 등지의
미국 서부지역으로 퍼져나가 Radio Head는 본토인 영국보다 미국에서
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Creep은 주로 대학가를 등지로 퍼져나가며 결국 전미 싱글 차트에서
34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I'm a creep'을 흥얼거리고
다녔으며 여러 대학산하 방송국들에서는 93년 최고의 곡으로 Creep을
손꼽기도 하였다. 싱글이 큰 히트를 한거에 비해서 Pablo Honey는 그때
당시 10만장 미만의 판매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세월이 지나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기는 했지만.)
미국과 같은 시기에 이스라엘을 비롯 곧 동남 아시아와, 유럽, 일본,
호주 등지 에서 Creep은 대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정작 본거지인
영국에서는 별다른 흥행을 못한 곡이 외국에서는 성공을 거두게 된것이다.
미국에서의 Creep의 히트는 영국 언론에 좋은 뉴스거리가 되었다. 영국
국민들은 Creep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EMI에서는 이러한 인지도를
이용해서 Radio Head는 Creep 싱글의 재발매를 하게 되었다.
곧바로 발매를 시작한 이후 Creep은 전영 차트 7위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음악적으로는 비평을 받았지만 우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것이다.
드디어 Radio Head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수 있게 되었다.
이는 Creep의 첫 싱글 발매이후 약 1년뒤인 1993년 11월달이였다..
Creep이 해외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서 Radio Head는 몇차례의 소규모의
미국 공연과 유럽공연등을 하였고 틈틈히 영국에서도 공연을 가진적이
있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이후 본격적인 전영 투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의 공연에서 Radio Head는 처참함을 맛보아야만 했다. 연주용
레퍼토리의 부재 속에서,(더군다나 Radio Head는 다른 유명한곡의
커버연주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공적인 공연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공연장에 들른 사람들은 Creep의 연주가 끝나면 대부분 공연장을 떠버렸다. 덕분에 Creep이 연주 곡목의 가장 마지막 곡으로 연주될듯도 싶었지만 오히려 밴드는 일부러 Creep을 공연의 첫번째 곡으로 연주하는
객기도 부렸다고...(-_-;)
1993년이 Creep의 열풍으로 지나갈때 Radio Head의 멤버는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었다.
1994년초 겨울날 Radio Head는 외부와의 연락을 일절 끊은채 Oxford의
외각에 위치해 있는 과일 농장의 빈 창고에서 몇주동안 2집을 위한
연습에 들어가게 되었다.
1994년 Radio Head는 다른일도 하면서 서서히 2집의 제작준비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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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제가 나우누리 Radiohead 팬클럽의 정보 게시판에 올렸던
라디오 헤드 이야기 중의 2번째 글입니다. 현재 이 글들은 요즘에 와서
다시금 삭제와 추가등의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3편의 편집이 끝나는
대로 3편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