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무리
잠을 청해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머리맡에 계란후라이처럼 퍼진
가로등 불빛을 뒤로 하고,
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K는 지금 한국에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인지
오스트리아인지에 2년째 유학중이었다.
"난 지금 잠이 오질 않아."
대기시간이 길어 수화기를 놓으려던 때에
K가 말했다. K는 이미 상대가 나란 걸 알고 있었다.
크게 하품을 내뿜으면서도 잘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잘 수 없어. 새벽인데 밖이 밝아.
세탁기에 연결하는 수도관이 잘못됐나봐.
자꾸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물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방문을 건너오고 있었다.
따로 음악이 필요없다.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상태로,
내가 만든 3,4평의 공간들은
파란 하늘에 몸을 맡긴 풍선처럼
어딘가로 멀리 멀리 떠다니고 있었다.
수화기에서 K가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밤늦게까지 TV보는 것을 싫어했었어.
나는 그런 아버지를 싫어했었고."
K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무거운 걸 끄집어내는듯
어렵게 숨을 넘겼다.
"꾸중듣기 싫어서 나는 TV를 내 방으로 가져왔어, 밤마다.
그리고 TV랑 같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늦게까지 채널을 돌려댔지"
"언젠가 아버지가 갑자기 쳐들어왔어. 나는 볼 수 없었지.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때렸어. 이불과 TV와 함께."
나는 히히히 웃었다.
그건 내 얘기였다. K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던 때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해준 이야기잖아, 몬티파이슨 시리즈를 보고 있었는데
웃음소리가 커서 아버지가 깨셨지, 라고 내가 말했다.
K도 따라 웃었다.
또 아버지가 깨어나시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다.
"이렇게까지 몽롱한데
왜 잠이 들지 않는걸까 나는.
마치 인간이 아닌 이상한 동물이 되어버린 느낌이야.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바닥이 양탄자처럼 보여."
"너는 알라딘이고, 나는 지니겠군."
그래서 나는 K에게 소원을 빌고 싶어졌다.
"잠 좀 자게 해줘. 영원히."
수화기에선 아무말이 없다.
아닌게 아니라, 수화기는 처음부터 말이 없었다.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이를테면 잠의 요정 같은 것이,
오스트리아인지 오스트레일리아인지에서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되어버린 나에게
이른바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비몽사몽한 가운데 그렇게 생각했다.
가로등불이 만들어놓은 계란후라이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나는 멍한 표정으로 나의 소원이 이뤄지길 기다렸다.
외로움의 단어로 점철된 수화기 속 나의 분신이 말했다.
"잘 자라, 우리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수화기에 귀를 대고
1시간 후의 나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달려가고 달려가서, 차라리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곳으로
꾸는 꿈 없이 다다르고 싶다.
사진이 현상되듯, 더디게
나의 하루는 완성된다.
덜 마른 사진을 손으로 문지르듯,
그래서 나의 하루는 끝에서 불완성이다.
사진사가 모델에게 강요하듯,
그래도 나는 늘 웃는다. 외친다.
Hello, Sunshine.
하루에 낮이 두 번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오늘 낮에는 자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