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위에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갖다놓았다, 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자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올곧게 횡단보도의 정중앙에 떨어져 있었다.
차들은 무심하게 하나 둘 상자 곁을 지나가고 있는 반면,
나는 맹렬하게 상자만을 쳐다보며
그것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밟자, 찌그러뜨리자, 뭉개자, 차버리자.
꽉 참았다가 내뿜는 오뉴월의 방뇨, 같은 기분이
내 온몸을 감싼 핏줄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파란불이 되자, 나는 흥분한 나머지 걸음을 빨리했다.
어디선가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며 "경고" 를 외치는 듯했지만,
이미 나의 청각과 시각은 종이로 된 정육면체 상자만을 향하고 있었다.
흰줄의 레일이 상자 바로 앞까지 안내하기까지는 몇초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로 발 밑에 그것이 있었다.
정육면체, 찌그러질때의 소리와 쾌감과 발바닥사이에서 느껴질 질감 같은 것이
이미 내 머릿속에서 설계도를 그려대며 다음 순간을 재촉했다.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그것을 밟았다. 그리고,
원형경기장에서의 최후승리자가 나를 보고 고개를 숙일 정도로
나는 양손을 힘껏 든 채 밟혀진 상자를 더 꽉꽉 뭉갰다.
해냈다! 나는 정말 대단해! 속으로 외쳤다.
상자 안에는 똥이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