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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Alien In The Headlights

현실1999-08-19 14:04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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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혹사당했음에도 아직도 불치의 사춘기 병을 앓는 여럿에게는 구구절절 자기 예기인 이 한 곡이 반짝 히트의 심술궂은 예감을 멋지게 따돌리고, 우리시대 대표밴드(중 하나)의 초기 명곡이라는 흐뭇한 지위를 얻어낸 것도 이미 여러 해. 그러나 여전히 당신이 전곡을 따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90년대 록 레퍼토리일 이 자기비하와 연민의 넋두리를 넘어 그간 통렬한 칼날을 벼려온 톰 요크의 그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도 되었다.
발매 직후부터 남발된 극찬 리뷰 속에서 당장 밀레니엄 불안증을 탐지 당했던 97년작 [OK Computer]세계는 막상 1999년도 채 반이 안 남은 지금 그 불길한 매력을 더해 가고있으니, '성간(星間) 충돌 속에서 부활하여 우주를 구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첫 곡 의 거창한 언사와 암울한 보컬의 충돌이 낳은 아이러니컬한 질감은 어떠하며, 비디오 클립으로도 충분히 어리둥절했던 첫 싱글 의 종잡을 수 없는 가사가 야심적인 변화무쌍 사운드와 조응함은 또 어떠한지. 외계인에게 납치 당하길 갈구하는 , 이국적인 단어 조합의 제목 까지 대기권 넘어 SF적 공간, 그 비인간적인 높이까지 상승했던 시야는 곧 에서 땅 바닥에 짓이겨진 벌레의 몸뚱이까지 어지러운 하강을 감행한다.
이 멀미 유발성 워프가 노리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기분 나쁜 소음과 기계음성의 막간극 에 귀 기울여 보자. 갈수록 기이하게 전개되는 이 생활상의 충고 목록은 바로 개인적인 생활 습관 하나 하나까지 과학과 당위의 이름으로 계도하고자 하는 현대, 그리고 그것에 사사건건 규율에 목졸리는 개인을 그려내는 것. 그러니, 이 '괜찮은 컴퓨터' 세상에 어울리는 비주얼은 '로미오+줄리엣'에서 사막 아지랑이 속에 긴 앞머리 날리며 등장하는 디카프리오의 아찔한 미모()가 아니라, 물이 머리꼭대기 까지 차 오르는 어항에 갇혀 더욱 창백해진 낯빛에 짝짝이 눈 껌뻑이는 톰 요크의 가슴 죄어오는 폐쇄공포()그것이다. 여기에 고속 질주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에 갇혀 놀란 눈으로 그 자리에 붙박힌 토끼의 운명(U.N.K.L.E.의 에 톰 요크가 제공한 . 비디오 클립까지 참혹함 그 자체다)까지 보태면 암담한 그림은 물 샐 틈 없이 완성되고 만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령이 완전히 죽어 사라지는 공포영화 없듯이 구원의 여지없는 묵시록도 없다. 톰 요크의 목소리에서 무력한 탄식, 그리고 래디오헤드 다섯 인자가 낳는 사운드에서 끝간데 없는 어지러움증 만을 읽는 다면 이보다 더 큰 손실이 어디 있으랴. 도처에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아름다움, 그리고 심장에 육박해 오는 앨범 전체의 강렬한 힘, 그 자체가 이미 해답이다. 깊숙한 절망은 곧 희망을 예비하고 있으니, 그 토끼는 결국, 산소부족을 미리 알고 둔한 인간에게 경고해주는 '잠수함의 토끼'*가 아니겠는가.


(*:게오르규-'25시' 인용)
[1999년 8월호 Sub]



(제가 요즘 서브를 사보지 않는데 어떤분이 주시는 바람에 엉겹결에 이 글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게 만드는, 아주 힘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먼 팬의 전제가 있긴 하겠지만 벌써 10번은 넘게 읽어본 기사입니다. 8월호 나온지도 오래 되었고, 보신분들도 많은 기사이겠지만, 좋아서 한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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