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2nd
Rayna2006-03-21 18:35조회 451추천 5
지난 주말, 그간 별러왔었지만 이래저래 늦어지기만 했던 나들이를 큰 맘 먹고 다녀왔다(난 여행이란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내 주제에 그런 거창한 말을 입에 담기가 민망한 탓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좋았다. 산에 올라 내려다 보았던, 이제 막 만개하기 시작한 섬들의 봄치장하며 그네들을 한데 어우르는 남해 바다의 정취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앞뒤로 바닷물이 밀려드는 해변가에서 섬집 아저씨와 함께 낚싯대를 던지고, 그 자리에 앉아 일출과 일몰을 한데서 지켜봤던 경험들은 다른 곳에선 겪어보기 힘들 것이었다는 점에서 무척 특별했다. PMG의 Au Lait과 함께 테라스 너머로 달 비치는 밤바다를 구경했던 일은 생에 몇 안 되는 로맨틱한 순간들 중 하나로 앞으로도 종종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내가 여행 가이드 북에나 나올 법한 낯 간지러운 어구들을 다 쓰다니 쪽팔린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련다. 가슴 벅찬 경험들을 안고 황홀경에 빠져 감상에 젖다보면 누구라도 로맨스물 작가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주말 동안의 나들이를 통해 나는 왜 그 많은 산과 바다들을 제쳐두고 섬만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런 경험, 그런 기분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온전히 전할 수만 있다면야 아무래도 좋지 않겠나. 설령 그게 시계 태엽만도 못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을 잊겠다고 햇살 잘 드는 까페에 들러 스타벅스 커피를 소비하는 것 만큼이나 값싼 도회적 정서에 불과할 지라도.
그래서, 나들이 내내 찍어댔던 다섯 롤의 필름 중 대부분이 백짓장으로 나왔다는 현상소 아저씨의 한숨은 나를 더욱 허탈하게 한다. 그 경험들을 말로 다 하기엔 능력이 보잘 것 없는 탓에, 최소한 두 눈 뜨고 보았던 것들만이라도 무엇으로든 담아보고 싶었다. 기실 그들 중에 잘 나온 컷들이 몇 안되더라도 종종 들춰보며 자기위안도 해보고, 더러는 나 아는 이들에게도 슬쩍 보여주어 자랑도 해보고 싶었다. 이 글도 원래는 사진 몇 장에 “다녀왔어요” 인사 한 마디로 대신할 것이었는데 그게 안 되어서 조금 서운하다. 난 그간 내가 남겨왔던 ‘여행기’ 형식의 후기글들을 유치하다 하여 대체로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이것 말고는 달리 기록을 남길 길이 없으니 그저 난감할 따름. 얼마 뒤에 이거 보고선 또 기분 너덜너덜해져서 지우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휘유.
(사족+ 이런 연유로,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반전 집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elec아 미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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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서2006-03-22 03:41
못지우게 리플달기 +_+
악!!2006-03-22 05:13
올만
철천야차2006-03-23 02:12
뜨아...
elec2006-03-23 05:55
ㅎㅎ
나도 여행 보내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