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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네덜란드

담요2006-07-01 15:43조회 522추천 9
내가 그 남자, 그러니까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트로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그 때 나는 매형에게 초대를 받아 누나의 신혼집이 있는 제주도에서 2박 3일 동안의 일정으로 머물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란 것을 타게 되었지만, 제주도에 있던 3일 동안 멀미로 내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는 배멀미도 해본 적이 없고, 최고의 스릴을 제공한다는 놀이 기구를 타면서도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기에 그 때의 멀미는 지금도 받아 들이기 힘든 악몽으로 남아 있다. 뚜껑이 없는 비행기에 탔던 것도 아니고, 정작 비행기 안에서는 멀쩡하다가 다시 육지에 발을 내딛자 마자 멀미가 일었다는 것이 뭔가 석연치는 않지만, 의사는 내게 단호한 목소리로 멀미라고 알려주었다. 어쨌든 누나의 신혼집에 도착한 나는 바로 기진맥진 해서 자리에 누웠고, 애써 누나가 차려 놓은 제주도의 별미라는 것들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좋아질 거라고 의사가 말했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다음 날에도 멀미 기운은 전혀 가시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누나는 뜯어 말렸지만, 나는 억울한 마음에 오기를 부렸고, 결국 홀로 택시를 타고 근처의 해안으로 달려갔다. 왜 그 때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바다라면 굳이 제주도가 아니여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제주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이를테면 돌 하루방 따위를 보러 가야 했던게 아닐까. 게다가 제주도의 바다는 애써 달려온 보람도 없이 지극히 평범하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게, 당시는 11월 중순이었으니까. 비키니를 입은 해변의 여인은 물론이고, 해녀도, 정확히는 사람 하나 없는 초라한 바다. 해는 지고 있었고, 안개까지 자욱하게 깔려 있었으니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을 거다. 나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생각으로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미스터."

목소리는 어딘가 가깝고 낮은 곳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딘가 가깝고 낮은 곳, 다시 말해 내 발 밑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발 밑에서 한 뼘 정도 옆으로 비켜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그 것이 남자의 두상이라는 사실을 육안으로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는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모래 사장에 묻혀 있는 상태였다. 그는 나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느꼈는지 씨익 웃어보였다.

"나를 좀 헬프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프리즈, 제발 좀 도와주세요."

얼굴에 특별한 상처도 없고, 반듯하게 생긴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서 생매장을 당했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장난일 것이다. 이런 장난을 친 사람들도 한심하지만, 속아 넘어간 이 남자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 혼자서 맨 손으로 땅을 파낸다는 건 무리니까, 사람들을 불러 올께요."

"하하,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미스터의 두 손으로 나의 헤드를 잡고 들어 올리면 됩니다. 그거면 오케이."

뭐냐, 이 아저씨는. 되지도 않는 영어를 섞어 말하는 데다가 괴상한 억양. 술에 취한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바램을 들어주기로 했다. 두 손으로 양 쪽 귀를 잡고 살짝 들어올리면, 아프겠지. 아마 화를 내겠지. 만약 화를 낸다면 나는 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워주고 가던 길이나 계속 가는 거다. 내가 그의 양 쪽 귀을 잡자 그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힘을 주어 당겼다. 다행히 그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능청맞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지 않은 것은 그의 머리가 쉽게 들어올려졌다는 사실이다. 몸은 땅 속에 묻힌 채로. 아니, 그의 몸은 애초에 없었다. 당황한 나는 그의 머리가 있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파헤쳐져 있다던가 하는 흔적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뒷꿈치로 그 곳을 찍으며 땅을 조금 파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내 두 손 사이에 들려있는 남자의 머리를.

"놀랐나? 서프라이즈 해요? 뭐, 조금 지나면 익숙해 질 거요. 나도 지금은 나의 이런 상황에 익숙합니다. 하하---."

나는 그의 머리를 살짝 돌려서 목 부분을 바라보았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거나 뼈가 살짝 보인다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단면'은 아니라는 거다. 매끄러운 피부로 잘 덮혀 있었다. 망자의 '단두'도 아닌 것 같았다. 분명한 체온이 있었으니까.

"로봇이냐? 신이 되고 싶었던 머저리의 실패작인가? 어떻게 머리는 만들었는데 몸은 만들 자신이 없어서 그냥 때려치우고 버렸다거나 하는, 그런 스토리?"

남자의 머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서 나를 바라보게끔 만들었다. 사실 정말로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는 용사라고 믿었던 적은 있지만, 태권 브이가 지구를 구하는 용사라고 믿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와우, 그레이트 조크네요. 미스터가 놀라서 기절하는 일은 없을 거 같아 다행이지만."

(이하 미완)
















예전에 꾸었던 꿈을 모티브로 삼아서 끄적거리고 있어요;
참 할 일 없네요.
지금 당장 돈은 넘쳐나는데(조만간 다 써버릴게 분명하지만),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속이 다 울렁거리고,
허리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왼쪽 어금니도 아프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이상하게 덥기까지.
내일은 좀 나가서 놀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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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어흥2006-07-03 13:41
그 후에 남자의 머리에서는 촉수가 자라지 않았나요? 신에게 코풀 휴지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아무래도 제가 아는사람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