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이
캐서린2006-07-10 03:41조회 468추천 11
바보같이 웃었다.
163Cm가 조금 못되는 그는 개들이 성교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것마냥 내 앞에서 히죽거리고 웃었다.
그런 얼굴을 보고 있자니 따라 웃지는 못하겠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있었다.
한 손에는 쇠로 된 봉을 들고 선 채였다.
직경이 갓난아기의 손 하나는 들어갈만큼의 쇠봉 끝에선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송충이라고 불리던 그가 말했다.
"저질렀네, 이제"
"응, 결국 됐어, 이렇게"
잘됐지 뭐. 자, 앞으로 계획은? 송충이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눈 양 끝에는 누런 눈꼽이 비지덩어리처럼 잔뜩 끼어있었다.
떼어주고 싶을 정도로 더럽다. 나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널부러진 누군가를 가리켰다.
물론, 먼저, 치워야지, 이거, 라고 말했다. 말을 듣더니 송충이가 두 팔을 쫙 펼친다.
"야, 이거 생각보다 크다구. 꽤 무겁고, 몰라? 너 몇Kg인데?"
갑자기 나의 몸무게가 생각나지 않는다. 키높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쇠봉을 지팡이처럼 잡아 땅에 맞대고 거기에 기대섰다. 몰라, 라고 내가 말했다.
그래, 차라리 모르는게 후련했다. 내가 저지는 행동은 산꼭대기에서 바람을 맞는 기분이었다.
한번 두번 칠 때마다 모든 잡념들이 바람에 걸러져 딸려나갔다.
송충이가 바닥에 떨궈진 인간을 옮길수단을 생각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헤헤헤. 이것봐 머리에 피가 나기 시작하는군"
아기손만한 구멍이 난 머리에서는 회색피가 정수리를 타고 흘렀다.
사후경직이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다. 시체에선 부들부들 떠는 진동이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한번 볼래? 얼굴말야"
나는 가뜩이나 커다래진 눈을 더 크게 뜨고 말았다.
뭘 보라는 거야? 얼굴을? 이라는 의미의 표정이었다.
송충이도 그걸 알았는지 큭, 하고 코웃음치면서 손을 입에 갖다댔다.
장난이 심하다는걸 자기도 알았을때 짓는 표정과 제스처였다.
아니야, 아니야 송충이가 손을 양쪽으로 저으며 그냥 할 걸 진행하자고 했다.
보고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건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하는 순간과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게 얼굴을 훑다가 뺨에 살짝 키스하고, '굿바이'라고 속삭이고, 뒤돌아서는 모습을 나는 상상했다.
얼굴을 보는 것은 무섭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많이 봐왔던 얼굴이고 익숙한걸.
그러니까 겁낼 필요따윈 없다. 죽어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진 않을테니까.
나는 손을 뻗어 시체의 머리에 난 구멍에 손을 반쯤 넣었다.
두개골을 손잡이처럼 잡아 바닥에 기대있는 시체의 얼굴을 위로 향하게 했다.
시체의 얼굴, 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나를 죽이고야 말았다.
송충이의 꾐에 넘어가서. 나는 나를 쳤다.
엊그제부터 나는 나에게 꾸지람했다.
듣기싫은 잡담으로 들릴뿐이었지만 한마디한마디가 나에게 비수를 꽂았다.
그런 류의 말들에는 항상 자책의 목소리가 많다.
너는 바보야, 맹추야, 같은 욕짓거리뭉치에 불과하긴했지만,
그것이 어떤 커다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 자신이 더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매일 나는 '나'를 죽이고 있지만 그것은 몇번이고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다.
그럴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숨을 쉴수가 없다.
차라리 나를 우주공간 밖으로 집어던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분명 지금도 나는 되살아날 궁리를 한다.
내가 어떤 잘못을, 실수를 하길 바라며 사방으로 꿈틀거리는 진동으로 내 앞에 경종을 울린다.
과연 나를 영원히 죽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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