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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탄생을 보다'

코수비니2006-10-27 20:26조회 577추천 11
여느 때와 다름없이,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맞춰 3시에 일어났다.
짙은 안개가 낀 듯이 흐릿한 정신. 생각이라고는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억누르고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기의 물을 틀고 가장 따듯하게 온도 조절을 하고, 따듯한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따듯한 물이 나오고, 샤워를 했다. 머릿속의 안개가 가시고, 다시 말짱한 정신이 되었다. 오늘은 조금 더 졸린 듯해서, 물을 끓이고 페퍼민트차를 탔다. 박하향이 가볍게 코를 자극한다.

차를 손에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어둡고 습하지만 아름다운 빛이 깔려 있었다. 내 방 앞쪽이 공사장인데, 무슨 일 때문인지 요즘에는 24시간 저렇게 불을 켜 놓아서, 내 방으로 불빛이 들어온다. 빛은 하얀 가로등의 빛이다. 그 빛이, 내 방 창문을 통과해서, 저렇게 내 이불 위에 창문 모양으로 내려앉는다. 빛의 융단이라 할 정도로 아름답기에, 조금만 더 불을 꺼 놓고 보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차를 마시며 책을 읽다 보니, 벌써 시간이 5: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거실로 나와서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 준비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밥은 이미 다 되어서 전기밥솥에 저장되어 있다. 이 전기밥솥이라는 것이 편리해서, 쌀과 물만 넣어두고 버튼만 눌러주면 자동으로 밥을 해 주는데다가, 따듯하게 해서 보관까지 해 준다. 문명의 편리함에 탄복하며 밥을 먹고, 치우고, 세수와 양치질을 했다. 옷을 다 갈아입고, 가방까지 다 챙기고 보니, 나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다. 밖은 아직 어두침침했고, 추운 기운이 내 방에까지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직 잠긴 문 앞에서 추위에 떨어야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가고 싶어졌기에, 나가기로 했다.

우리 집은 평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올라가는데 조금 힘이 더 들지만, 내려갈 때는 건물들에 가리지 않고 넓은 하늘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고 대문이 눈앞에 들어왔다. 대문 틈새로 형광등의 주홍빛이 스며들어 왔다. 아직 가로등이 켜져 있을 때. 나는 역시 일찍 나왔다는 생각을 하며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만약 당신이 일출을 본 적이 있다면, 이 장면을 이해하는데 더 쉬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장대한 광경이었다. 어제 비가 오고 나서 아직 걷히지 않은 구름들이, 저 멀리서 떠오르고 있는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빨갛게 불타오르는 모습. 정말로, 하늘은 불타고 있었다. 끝에서 끝까지 셀 수도 없는 광대한 넓이의 하늘에 가득한 구름들이, 전부 불타오르고 있었고, 동쪽 끝에서는 그 근원이 구름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구름의 모양도 가지각색으로, 정말 불타오르는 듯 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마치, 신이 자신의 솜씨를 직접 발휘해 만들어 놓은 것처럼, 하늘은 완벽했고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인지 바다와 같은 장대한 감격은커녕, 강과 같은 큰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시내나 개울 같은 조그마한 기쁨만을 느끼는 것이었다. 내 입가에는 이 광경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미소만이 걸렸고, 어떤 감탄사도 내뱉지 않고 조용히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잔한 기쁨만이 나를 채웠다. 왠지 내가 괘씸한 짓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어딘가에서, 세계는 해가 질 때 멸망해서 해가 뜰 때 재탄생하는 것이고, 단순히 인간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 할 뿐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세계의 탄생을 목격하는 것일까. 그것에 비하면 내 행동이나 감정은 너무 작은데. 아니, 그보다, 말이 안 되잖아..

ㅡ진짜 멋진 하늘이네요.

아, 그러네요...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하늘에 고정시키고, 목소리와 대화했다.

ㅡ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봐 왔겠지요.

그렇군요..

ㅡ각종 신화라든지, 예술 작품이라든지, 발전된 문명이라든지..
   이런 것은, 이게 없었다면 나타나지 않았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뭐, 세계의 탄생이니까요..

ㅡ세계의 탄생... 풋

하하하하하하.

ㅡ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ㅡ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ㅡ하하하하.. 저기, 그런데, 이거 아세요?

뭐를요?

ㅡ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거, 정말로 세계의 탄생이에요.

아..

나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가로등은 꺼 져 있고, 붉은색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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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철천야차2006-10-28 00:51
그런 느낌 종종 느껴요.
이제 중간고사도 끝났으니;;;;; 또 어디선가 느낄 수 있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