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 결
레스페스트 영화제 중 '라디오헤드 특별전'의 상영장소인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 도착하니,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중에 외국인들이 적잖이 있는 것을 보았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이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것인가?
비록 국적과 인종과 언어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다 같은 지구인이며, 라디오헤드의 팬인 것인가?
상영된 프로그램 중, 라디오헤드 야외콘서트에서 20대 백인 여성이 National Anthem을 따라부르는 것을
롱테이크로 클로즈업한 필름이 있었다. 즉, 그 필름에는 흥에 겨워 노래를 따라부르는 그 여자의 얼굴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며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라디오헤드 콘서트에서, 톰 요크를 비롯한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 여성팬의 얼굴만 보인다. 그럼 그 필름을 관람하는 관객은 라디오헤드의 멤버들을 볼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 여성팬의 시선이 연주중인 멤버들에게 고정되어 있으므로, 관객은 그 여성팬의
눈을 보면 카메라 앵글 밖에 존재하는 라디오헤드의 멤버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주관과 객관의 일치'라고 지칭하면 너무 거창하겠지만(^^;), 어쨌든 그 여성팬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National Anthem을 같이 흥얼거리며 라디오헤드의 콘서트를 즐겼다.
2. 고 흐
이번 특별전에서 라디오헤드의 뮤직비디오들을 연달아 감상하면서 한 가지 인상깊은 점은, 톰 요크가 매우
자주 출연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냥 멋지고 세련된 스타로서의 출연이 아니라,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I might be wrong), 물 속에서 허우적대고(No surprises), 비열한 모습(There there)의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다. No Surprises에서는 시종일관 얼굴만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되기까지 한다.
마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자화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톰 요크는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계속
출연하면서 일종의 자화상을 그리는 게 아닐까 - 비록 뮤직비디오는 뮤지션이 제작하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감독이 연출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 하는 의문도 생겼다. 자기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보는 것
처럼, 톰 요크는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에 계속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 아닐까?
일그러지고 허우적대고 비열한 모습은 분명 부정적인 특성의 것이다. 하지만 톰 요크는 이렇게 나약한 자기
자신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과 애정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마치 Fitter Happier에 나오는 'The ability to laugh at weakness'처럼. 나약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에서도 나온다.)
고흐는 광기로 인해 자신의 귀를 자른 후, 귀에 붕대를 멘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다. 톰 요크는 우울하고 나약
한 모습으로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정직한 것이다.
3. 살아있다는 것
라디오헤드 특별전에서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나이값도 못하고--;)
극장에서 눈물을 흘린 게 얼마만인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을 본 2년 전이 마지막이군.
눈물을 흘린 것은 라디오헤드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영상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는 이유도 있었고, 몽환적
인 분위기에 도취되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나는 지금 살아있다(Here, I'm alive~)'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죽지 않고 여태껏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다.(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대략 이런 기분이었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것이다. 라디오헤드가 존재하는 한 나의 귀는 청각적 쾌락을 흡수할 수 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톰 요크가 커트 코베인처럼 요절한다면? 그래도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이번 특별전 같은 미리 촬영된 영상이 아니라,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라이브로 직접
감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 라디오헤드가 내한하든가, 아니면 내가 영국으로 날아가든가.
현재로는 둘 다 확률이 희박해 보인다. 첫번째는 불확실한 외재적 변수에 맡겨야하는 로또처럼 가망이 없어
보이고, 두번째는 경제적 압박을 극복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후훗, 어렵다.^^:
어쨌든, 오늘 라디오헤드 특별전을 보고 한가지 매듭을 짓는다면, 바로 '연결'이다. 톰 요크, 빈센트 반 고흐,
커트 코베인, 무라카미 하루키, 왕가위, 김윤아, 쇼펜하우어, 니체 혹은 키에르케고르. 각자 시대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활동분야도 다르지만 이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상처투성이
영혼의 소유자들이라는 것. 따라서 왠지 멜랑컬리하고 시니컬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것.
내가 그동안 이들에게 그토록 매료되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동질감에서였던 것이겠지.
4. 결론
영국으로 날아가서 공연을 보려면 돈 많이, 많이, 많이 벌어야겠다. 어흑--;
라디오헤드 특별전 관람기
Salvador2006-12-10 17:29조회 631추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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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나나2006-12-11 00:11
아아, 잘 읽었어요
생강빵과자2006-12-11 01:33
잘 읽었습니다 :D
시아2006-12-11 02:13
RADIOHEAD라는 글자를
재조합해서 만든
OH,DEAD AIR가 기억 나요!
표 정말 감사, 벅찬 감동이 ㅠㅠ
재조합해서 만든
OH,DEAD AIR가 기억 나요!
표 정말 감사, 벅찬 감동이 ㅠㅠ
wud2006-12-11 05:42
motion picture soundtrack을 양념으로만 써서 아쉬웠습니다^^
Rayna2006-12-11 08:40
왜 하필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을까. 잘 읽었어요_
라이리미엔2006-12-11 12:15
=ㅅ= 헉...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그곳을 못갔네....끼야야~~
리드2006-12-12 06:01
잼있었겠다.
철천야차2006-12-12 10:19
아 이런.. 저는 잘 못 읽겠네요. 왜 이렇게 글이 불편하지;;;
어쨋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식사도 좀 같이 하고 얘기 많이헀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기말고사 기간만 아니었어도 제대로 뒷풀이도 계획하고 그러는건데 ㅠㅠ
나중에 모임하면 꼭 나오세요~~
어쨋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식사도 좀 같이 하고 얘기 많이헀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기말고사 기간만 아니었어도 제대로 뒷풀이도 계획하고 그러는건데 ㅠㅠ
나중에 모임하면 꼭 나오세요~~
paper doll2006-12-13 03:12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그때의 감정이 잘 전해 오는것 같아요.
BLackStaRR2006-12-15 17:23
저도 혼자서 슬쩍 보고왔는데....좋았습니다. 재미도 있고...
Creep을 들으면서 미소를 짓기는 처음인듯 ㅎ
Creep을 들으면서 미소를 짓기는 처음인듯 ㅎ
수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고 고흐도 그 중의 한 명이고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나르시즘과 같이
자기애적인 행동이고
톰요크는 귀를 자른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본인의 대칭이 안되는 눈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울이나 그림 보다도 더 냉정한
절제된 조명에 고정된 카메라 앞에, 그것도 정면 샷으로 보여줬다는 건
꾸미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반영하려 했던 것 같고
그 점에서 솔직한 행위,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것과 공통점이 있는 행위인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왠지 그건 제가 생각엔 총천연색으로 마띠에르 덕지덕지한 고흐의 광기 보다는
절제된 조명에 주름진 얼굴의 늙은 램브란트의 자기통찰?에 가까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