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혹은 노르웨이의 숲)에는 이러한 말이 나온다.
하루키는 고도 자본주의, 정보화 사회에서의 취향의 중요성을 예견할 것이 아닐까?
'옳고 그름'의 기준보다는 '좋고 싫음'의 기준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일 테니까.
'이데올로기의 해체' 또는 '사회의 양극화'같은 거대 담론보다는 카페라떼 한 잔이
나에게는 더욱 소중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에피쿠로스의 후예인 것이다. 나더러 어째서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소주보다 와인을, 양키스보다 매리너스를, 고갱보다 고흐를, 피카소보다 살바도르 달리를,
무라키미 류보다 하루키를, 유비보다 조조를, 헤겔보다 쇼펜하우어를, 고다르보다 트뤼포를,
코폴라보다 우디 앨런을, 마일즈 데이비스보다 쳇 베이커를, 뮤즈보다 래디오헤드를 더
선호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좋아!' 이 정도 답변 밖에는.
다만 '엄마 좋아, 아빠 좋아?'라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오이디푸스적 기질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구형 엠피쓰리 플레이어가 있다. 옛날 모델이기에 용량이 64메가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노래 10곡에서 15곡 정도 저장하면 끝이다. 많은 곡들을 저장할 수 없기에 주기적으로
파일 교체 작업이 이루어진다.
엠피쓰리에 시끄러운 음악을 넣고 듣다보면 왠지 조용한 음악이 무척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빌리 할러데이나 쳇 베이커같은 말랑말랑한 음악을 한동안 즐겨듣다가
이번에는 또 뮤즈나 너바나같은 까칠까칠한 음악이 몹시 듣고 싶어진다.
마치 오드리 헵번같은 프리티한 소녀를 품에 안고 있다가 마릴린 먼로같은 관능적인
글래머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과 비슷할라나? 양쪽에 두 미녀를 두고서 갈팡지팡하는 격이다.
(혹시 엠피쓰리 파일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얻은 것이 아니냐는 태클은 정중히 사양함--;)
만약 누군가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서 고개를 위아래로 까닥거리며 쿨한 멜로디를 흥얼거린다면
조용히 곁으로 다가가 이렇게 물어봐야겠다.
"래디오헤드를 삼 년 듣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타인의 취향
Salvador2006-12-21 04:50조회 339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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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Gogh2006-12-21 12:46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감칠맛 나는 글을 쓰십니다 살바도르님.
Radiohead2006-12-21 14:21
'옳고 그름' 보다 '좋고 싫음' 그러네요 정말,
한얼군2006-12-22 03:40
마지막이 좋군요-
이랑씨2006-12-22 05:05
엄마 좋아, 아빠 좋아? 에서 웃어버렸어요 :)
포르말린2006-12-22 16:08
하지만 '좋고 싫음'에 '옳고 그럼'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들어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것 같음
저는 그런 것 같음
녀찬2006-12-23 14:36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