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글 보기

une traquille soiree.

포르말린2007-03-12 14:23조회 729추천 22
내 방, 정 떨어지는 하얀 벽에 커다랗게 말구름표를 그리고, 그 안에 사랑스러운 말을 나를 향해 적어 주고 싶어졌다. 친구 말에 의하면 내 방 벽지엔 공단이 섞여서 포스터가 잘 안 붙는거란다. 그렇다면 혹시 수성싸인펜으로 쓰면 지우개로 지워질까(왜?), 싶어져서, 예에전에 책상 옆에 "우리 막내" 라고 썼던 글자를 찾아보았다. 지우개를 들고서. 이사 온 걸 깜박했네. 그 낙서는 없었다. 대신에 또 예에전에 사온 갱지를 벽에 붙였다. 내 초록색 PEACE 테잎을 아래위로 두르고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꾹꾹 눌러 주었다. 얼마 전부터 자꾸 내 얼굴이 삼각주먹김밥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무슨 맛일까를 혼자서 고민하곤 했었는데, 결론은 아마도 참치마요네즈. 어쨌든 그 갱지에는 그저께의 내 손바닥(Mongoo Sugar 라고 써 있었음)을 상상해서 그리고, 읽을 책들의 리스트를 적어 넣고, '밥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당부의 말씀을 적고, 윗줄엔 초록색 하트를 새기고, 아랫줄엔 노란색 하트를 그려 넣고, 마지막으로 주먹밥 은자방과 말구름표를 그렸다. 자, 이제 무슨 말을 나에게 해줄까?
지우개를 찾느라 엎어 본 연필통에는 생각치도 않았던 몽당연필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쓰던 연필, 예쁜 후배가 뉴욕 가서 사다준 고양이 연필, 연필로 그림 그리기 좋아했던 작년에 헤어진 애인이 두고 간 연필, 색연필까지. 종이를 펴서 하나하나 잘 나오나 써보고 도로 연필통에 담아두었다. 잘도 저녁 시간을 써보내는군. 혼자 중얼거린다.
낮 시간에 박물관에 앉아 있을 땐, 오늘은 그래도 밥값은 하는구나, 싶었다. 정신을 맑게 하는 단순노동. 봉투 안에 2007년도 상반기 박물관 프로그램 팜플렛을 넣고 봉투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70개쯤 완성한 것 같다. 한창 작업 중인데 조교가 들어오더니 그건 이제 할 필요 없어요, 하더라. 어쨌든 그 조교는 루시드폴 앨범을 벅스에서 찾아 틀어 놓았는데 덕분에 조용하지만 냉랭한 박물관 2층이 아늑해졌다. 조교는 다시 나가고 방에는 나 혼자 남았는데, 글쎄 물이 되는 꿈이었나? 루시드폴의 그 노래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좋아하던 애의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그 노래를 들으면서, 티 나지 않게 나를 어필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때였는데.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시 집에 돌아와 연필통을 정리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

댓글 4

아침2007-03-12 14:47
bonne nuit
배추2007-03-12 15:18
벽지엔 공단이 섞이다니!!! 대단한 벽지!! :) 히히
악!!2007-03-12 16:57
참치마요네즈가 젤 맛있어
포르말린2007-03-13 14:06
역시 말구름표가 아니었어. 어쩐지 아닌 것 같아서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말풍선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