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소리.
그 소리에 나는 살며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방의 변함없는 풍경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한번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일까 싶어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내 방의 풍경은 변함없이 희미했다.
문을 열자 방문 앞에 서있는 아빠가 보였고,
그 뒤로는 뿌연 안개로 가득찬 부엌이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아빠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채 속옷 바람으로 서계셨다.
입을 가린채 아빠는 내게 물었다.
너 어제 몇시에 들어왔어?
아무래도 내가 이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 오른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냄새가 상당히 지독하다.
나도 얼른 입을 틀어막고는 어제 저는 10시에 잤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내 방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형광등의 전원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잠깐만, 안돼, 위험해!
영화도 안본 거야?
지금 상황에서 전원을 켜면 가스는 폭발할 테고 우리는 순식간에 재가 될 거야.
나는 곱게 죽고 싶어, 이건 내가 바라던 게 아니야!
라는 절규와는 상관없이 아빠는 스위치를 눌렀고,
불은 들어왔으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좀 전의 독백이 민망하지도 않았다.
이 안개의 원인이 가스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일단은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야 된다.
원인을 찾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집안의 연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야 확보가 되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냄비였다.
새까맣게 타버린 냄비.
손잡이만 남은 플라스틱 국자.
아마도 안에 있던 수분은 모두 증발하고,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자 국자를 태웠던 모양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그 누군가에서 나는 제외된다.
냄비에 들어있던 내용물은 쑥국으로써 나는 일체 손을 댄 적이 없다.
엄마는 내게 이런 쑥국은 지금(봄)이 아니면 못 먹는다며 먹어보라 강요했지만,
나는 끝내 한번도 쑥국을 향해 입을 열어주지 아니했다.
아빠의 알리바이 또한 완벽해보였다.
이제 남은 용의자는 사고 현장에 없었던 나의 엄마.
전화로 확인 결과 엄마는 자신의 실수를 어느정도 인정하는 듯 했다.
글쎄, 끈 것 같기도 하고, 안끈 것 같기도 하고.
부디 이 진술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순전한 실수였기를 바란다.
네가 쑥국을 먹지 않아서 태워버린 것이다!
너는 나의 정성을, 대자연의 선물을 무시했다.
맛이 어떠냐? 연기로라도 실컷 먹어 본 소감이 어땠느냐 말이다!
사건의 내막에 이런 음모가 있었던 건 아니길 바란다.
(당연히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