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야구중계의 요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요소는 크게 세가지 정도의 부분이다. 열정, 전문성, 그리고 편안함이다. 정말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중계에서 바로 티가 난다. 그리고 중계자가 투수가 던진 볼이 커브인지 슬라이더인지도 분간 못하는 것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보는 사람이 야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중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인 것일 테다.) 요즘 치밀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주로 메이저리그 중계방송의) 젊은 캐스터와 해설자들이 굉장히 많지만, 그래도 내가 아직도 임주완씨나 유수호씨, 정도영씨의 중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이분들의 중계에서 이따금씩 실수가 나오더라도 편하게 웃고 받아넘길 수 있는 것은, 젊은 중계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이들의 연륜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물론 나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이들의 중계를 80년대식 중계라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역시 있다.)
야구중계의 대세가 공중파에서 케이블로 넘어온 지금 야구를 중계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한명재 캐스터가 상당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씩 그가 들려주는 자뻑멘트와 결정적 순간에서의 강렬한 샤우팅은 많은 관중을 팬으로 만들었고, 가끔씩 방송국 카메라가 '완소 꽃미남 한명재 사랑해요'따위의 팻말을 직접 제작해 들고온 관중들의 모습을 잡아준다. 개인적으로도 그의 중계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공중파 시대의 해설은 지금과는 다른,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들로 남아있다.
공중파 시절 나에게 있어 일요일 오후 두시는 신성불가침의 영역과도 같았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일주일의 6경기 중에 단 한경기. 그 경기를 보기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TV앞에 앉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글스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주로 잠실경기를 중계했기 때문에) 일주일 중에 그 시간은 야구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케이블이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주로 KBS와 MBC에서 야구중계를 담당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두 방송국에서 중계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두 방송국의 해설콤비는 라이벌과도 같았다.
KBS에선 정도영-하일성(후에는 표영준-하일성), MBC에서는 송인득-허구연 콤비가 주로 중계를 했었는데, 나는 양쪽에서 한사람씩 바꿔보면 괜찮은 조합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매번 생각했었다. 캐스터는 송인득씨가, 해설은 하일성씨가 좀 나아보였다. 시종일관 낮은 톤으로 읊조리는 듯한 정도영씨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맥아리가 없어보였으며, 투수가 던지는 '베나구'마다 '브레킹 볼'을 외쳐대는 허구연씨의 모습은 신뢰감이 떨어져보였다. 그에 비해 넉살좋은 목소리에 말하는 작전마다 들어맞던 하일성씨는 듬직해보였으며(친구 하나는 그를 존경하여 장래희망을 야구해설가로 적어냈다가 선생에게 혼이 났었다. 그 선생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 궁금하다.), 송인득씨는 그야말로 결점이 없는, 완벽한, 명실공히 캐스터의 표본이었다.
앞서 적은 중계의 세가지 요소를 깨닫게 된 것은 모두 송인득 캐스터의 중계를 보면서였다. 일단 그의 목소리는 편안 그 자체였다. 그 편안한 목소리에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치밀한 데이터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중계의 톤이 달라짐에 따라 경기에는 박진감이 흘렀고, 때로는 아쉬움이 감돌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열정적인 중계는 야구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글스의 좌절과 감격적인 우승, 그리고 나의 우상 장종훈의 최고령 만루홈런을 나는 이렇게 그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
또 그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것이 그가 진행했던 '스포츠 하이라이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나는 부모님이 주무시는 틈을 타 조용히 거실로 나와 TV를 틀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송인득 캐스터는 그날 있었던 경기의 하이라이트들과 함께 '포토제닉'이라 불리는 그 날의 명장면들을 소개해주곤 했다. 흔히 볼 수 없는 진기한 장면들. 경기가 없는 날이면 한 주일의 경기들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것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야구의 흐름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일주일간의 포토제닉 중 주간포토제닉을 선정하는 시간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야구 중계가 공중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그의 목소리를 야구중계에서 듣는 일은 포스트시즌 이외에는 상상하기 힘들게 되었다. 대신에 올림픽, 월드컵 같은 다양한 종목들에서도 그의 중계는 빛을 발하였다. 올림픽 양궁중계에서 그가 외친 '골듭니다, 골드'라는 멘트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유명한 멘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송인득 캐스터이외에 다양한 스포츠 영역에서 놀라운 전문성을 갖추고 편안하게 중계를 한 캐스터는 대한민국에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야구중계를 보게 된 것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였다. 지난 해 이글스는 아쉽게 패배하고 삼성에 우승을 내주었다. 올해는 다르다. 내 예상과는 달리 올해 이글스는 최상의 전력으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어 그 어느때 보다 우승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99년의 감동을 송 캐스터와 함께할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야구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갑작스레 떠났다.
얼마 전에 생전에 그가 중계했던 모습들을 TV를 통해 시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를 통해 그가 중계를 위해 빼곡히 적어놓은 야구노트의 글씨들을 보자, 가슴이 메어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떠난 박동희 선수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의 소중한 기억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그의 편안한 목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이것은 야구팬으로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포츠 이벤트를 챙겨보았다고 자부하는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상일 것이리라.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며 잠깐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았다. 어린 시절에 무엇인가 하나에 열정적이었다면 나에게 그것은 야구였다. 그리고 송인득 캐스터는 그 시절을 풍요롭게 해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 소중한 사람 하나가 떠나갔다는 안타까움, 그것보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흥분한 그의 목소리. 아직도 들리는 듯 하다. 허구연씨가 추모사에서 적은 마지막 글귀 하나가 내 마음을 울리는 이유도 그 목소리,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야구팬 여러분,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송인득 이었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편히 쉬세요.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저도 좋아하는 캐스터분인데, 정말 아쉬움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김남일 선수와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매번 보곤했는데, 특히 예전에 많이 빰~ 빰~ 빠라라빠라밤 빰빰빰빰... 노래와 함께 나오던 오늘의 포토제닉은 정말 기억이 많이 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