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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이 많은 식당

캐서린2007-09-26 15:11조회 448추천 8

큰명절엔 항상 작은할머니댁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군대 제대하고 처음 두드리는 할머니댁 아파트 문 앞엔
벌써 5살을 맞는 사촌조카가 세발자전거의
뾱뾱이를 미친듯이 눌러대며 천역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세 분의 삼촌들과 아버지와 그리고
어떤 존칭을 사용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가깝지만 먼 친척 한 분
사이에 끼어서 나는 연신 막걸리만 홀짝였다.
역시 어른들의 이야기란,

목성의 가스층만큼이나 난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막걸리 안에 엉켜있는 수많은 포자덩어리가 되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른들의 입과 입이 그리는 궤적 안에서

추석의 교통상황의 악화와
천안의 상권 발전 전망,
밀양에 KTX가 서는가,
경기도 지역의 땅값과

병원과

간암이라는 병마에 걸려 입원하셨다는 어떤 친척의 이야기
가 소용돌이치며 나의 귓볼을 울려왔다.

이야기이야기이야기이야기
말말말말말말말말
소리소리소리소리소리


"창피하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지 말라고."
작은삼촌이 말했다. 내과의사인 먼친척의 이야기였다.
간암에 걸려서 당신의 아들의 간을 빌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입원중에 절대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말말.소리소리.

"허참, 자기가 무슨 이순신이야. 왜 알리지 말래, 그런 일을.."
헛헛헛 하고 존칭을 모르겠는 친척이 마른 소릴 내며 웃었다.
나는 유리컵 안에 담긴 막걸리의 색깔을 관찰하며 계속 듣기만 했다.

"하긴, 창피하긴 하겠다."

어둠 중에 커텐이 걷히듯, 큰삼촌이 잠깐의 침묵 속에서 말을 꺼냈다.
나마저, 고개를 돌려 삼촌의 얼굴 빤히 쳐다봤다.

"우린 친척입장이니 그렇겠지만, 자기가 의산데,
병원다니는 환자입장에선 좀.......그렇겠다"

"내과의산데 자기 병도 모르니까"

서양의 무법자. 나는 삼촌을 향해 바지춤에서 총을 뽑아들었다. 빵.
내가 벙어린줄만 알았던 존칭을 모르겠는 친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나긴 동굴처럼, 나의 말은 어둠이 되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아무도 '맞아맞아'라는 맞장구없이, 어린녀석이 그딴 말을 하고 자빠졌냐는 표정이었다.

괜히 미안해진 나는, 막걸리가 나를 취하게만들었음을 탓하며
자리를 피해 작은 할머니의 옆에 끼어 앉았다. 할머니는 조용하게 배를 깎고 계셨다.
왠지 그 모습이 푸근해 보여서 깎는 시늉을 옆에서 같이 했다.
계속 하고 있으면 왠지 간암이 걸릴것 같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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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moviehead2007-09-27 06:41
나도 어떤 자리에서 왠지 종이컵 무늬만 뚫어져라 몇 십분씩 쳐다보고 있었던 때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