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소설을 구상중이었다.
변함없이 구상만.
나의 작업은 항상 그랬다.
워드프로세서의 하얀 바탕 맨 꼭대기에
제목만 적고 지우고 하다가,
돈없이 구경만 하고 나오는 손님처럼
어이없게 닫기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아래층에선 파티가 한창이었다.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내 방까지 들어와서
나는 베란다 창을 열고 아래쪽을 응시했다.
어두운 밤중에 유독 2층의 창문만 환했다.
고통스런 작업이 끝나면
나는 허무함을 달래려 포르노를 본다.
빠르게 돌리고 다시 뒤로 감고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여자의 표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가식적인 신음소리에 맥없이 끊기는 감정 속에서
나는 재빨리 자위를 벌이고, 휴지로 아무렇게나 처리한다.
담배가 떨어져서 나설채비를 했다.
반팔 면티에 두꺼운 잠바를 대충 걸치고 신발을 찌그려신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창 파티중에 나온 남녀가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있다.
밀애중인지 키스를 나누는 두사람 사이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아직 내 존재를 느끼지 못했는지 둘의 키스는 점점 격렬해졌고,
나는 민망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집앞 편의점에서 담배한갑과 크리넥스 휴지를 샀다.
그리고 무심코 옛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귓속에선 통화연결음만 지독하게 왱왱거렸다.
다시 올라가는데 예의 여자가 현관앞에서 자고 있다.
남자는 어딜 갔는지 그녀 혼자만 처량하게 앉았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릎에서 약간 위로 올라오는 원피스,
긴 생머리 사이로 조금 튀어나온 빨간 립스틱의 입술.
나는 조용히 다가가 그녀와 입을 맞췄다.
나를 그 남자로 착각했는지 그녀는 거부감이 없다.
키스를 마치고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관문이 열렸다. 그 남자였다.
나는 놀라서 그녀에게 몸을 떼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서 여자를 두팔로 감싸안았다.
들쳐업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여자가 말했다.
"응 나도 사랑해"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워드프로세스를 실행했다.
당당하게 제목을 적는다.
"Beautiful K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