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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

캐서린2008-03-05 01:44조회 457추천 6
아버지와 함께 여행간 곳은 남해의 어느 작은 섬마을이었다.
칠월의, 이제 막 시작된 여름 무렵이었다.
구시렁거리는 매미 울음소리 끝엔 바짝 마른 오징어가 노끈에 줄줄 꿰매어져 있고
마당 앞에 펼쳐놓은 고추 몇움큼이 검붉은 빛을 발하는,
구수한 시골 기와집이 우리가 며칠간 머물 곳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나는 숲으로 들어가 매미를 잡거나
바닷가로 뛰어내려가 조개껍데기를 모으거나 했다.
아, 여행은 즐겁구나. 여름은 좋구나. 바다는 넓구나.
아직은 어렸던 내 몸 안이 일차원적인 감상들로 채워졌다.


회색빛 저녁이 되서야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담장 위에 올라가 손을 허리에 댄 채 몸을 세웠다.
온동네 집이 다 보였다.
나는 그곳 안에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 밤에 비치는 백열전등불 밑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나하게 술이 취해서였다.

"아들아, 밤에 해를 보려고 하지 말아라. 낮에는 별을 보려고 하지 말아라."

햇볕에 탄 피부 껍질을 벗기고 있던 나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암호문처럼 신비롭게만 들렸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깜깜했다.
별도 없고 해도 없는 공허한 어둠이었다.


만조가 되면 바다는 평소보다 거칠게 울었다.
이튿날 낮에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면서
나는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새빨간 햇빛이 눈꺼풀에 와닿아
형용할 수 없는 빛조각들을 만들어냈고, 물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뒤통수쪽에서 뿌옇게 달그림자가 드리워질 때까지
나는 모래사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앉아서, 여태까지의 인생에 관한 한숨을 하염없이 뿜어냈다.
어린 주제에. 내가 14살 때의 일이었다.


몸 깊숙한 곳 어디선가 만조가 되어버린 바다의 움직임을 느껴본다.
앞에 있는 바다를 볼 생각 않고 소리만 듣는 내가,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은 얼굴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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