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취방으로
어머니가 몇가지 반찬과 함께 장어를 가져오셨다.
그저 반으로 갈라진게 손질의 전부인
쌩 장어...
"몰라, 이거 뭐야 무서워.."
"그냥 후라이팬에 놓고 앞뒤로 구우면 돼. 양념도 가져왔다만, 느끼하니깐 그냥 소금 뿌려 먹으려무나"
라고 말씀하셨던게 벌서 한 달 전이다.
어젯밤.
너무도 밥 하기가 싫었으며, 먹고나서 해야하는 설거지는 더 하기 싫었으며,
돈은 다 떨어졌는데, 배는 너무도 고픈
비참한 4중고를 경험하며 집안을 뒹굴거렸다.
"그럼 쳐먹지 마! 새끼야!" 라고 분명히 호통을 치실 아버지도
자취방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귀찮음과 배고픔의 오묘한 교집합 속에서
나는 맥없이 담배만 피우며
처참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뒹굴거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아 맞다! 장어!"
들어있을게 없어서 열어보는 빈도가 평소 한달에 한번 꼴인 냉장실을 황급히 열어보니
과연 장어 4마리가 처량할 정도로 꽁꽁 얼어있었다.
'미안해 장어들아. 많이 추웠지?'
라고 생각했으나
글쎄, 죽은 장어 입장에서 보자면
지옥과 같이 뜨거운 후라이팬 위에서 뒹굴거리다 처참한 패배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것 보다
차라리 계속 꽁꽁 얼어있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막상 해동을 하고,
눈 앞에서 유심히 죽은 물고기의 적나라한 시체를 보고 있자니 다시 약간 겁이 났지만,
이내 가스레인지 위의 후라이팬에 한 마리를 올려 불을 켜고 나니
금방 그럴듯한 장어구이 냄새가 난다.
왕창 소금을 부리고
앞,뒤,앞,뒤 뒤집어 구워서 먹어보니
'어라? 생각보다 괜찮은데?'
'여자 꼬시기', '무언가에 노력하기', '계획적인 삶 살기' 이후에
저주받은 재능으로 구분되었던 '요리하기' 항목에 한 줄기의 서광이 비치는것을 느낀다.
이내 금방 건방져져서 두번째 장어를 굽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 시도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욱 그럴듯하게 구워낸 것이다.
맛 또한 진일보!
금새 한마리를 더 먹어치우고 젓가락을 놓는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멍청한 자식! 소주랑 먹었으면 딱 이었잖아!'
아직 배는 전혀 차지 않았으며, 소주를 살 돈은 백원짜리 긁어모으면 가능했다.
냉큼 소주 한병을 편의점에서 사와
3마리, 4마리, 소주와 함께 하루 저녁에 다 먹어치워 버린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오늘.
어제와 똑같은 상황에,
다시 한번 처참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집안을 뒹굴거리다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저주받은 재능' 항목에 몇가지를 더 추가하게 된다.
'절제하기', '후회 안하기'
장어구이.
Sartre2008-07-03 17:16조회 631추천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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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PermanentDaylight2008-07-04 08:56
장어철학..
nukie2008-07-04 09:00
위 글의 냉장실이 냉동실일 가능성이 있는 듯;;;
냉장실에선 생선이 얼지 않을 듯;;;;
냉장실에선 생선이 얼지 않을 듯;;;;
녀찬2008-07-04 09:01
이히히히 잼따 ㅎ
Sartre2008-07-04 10:50
nukie//제 방에 오신 적 있으신가요? 안 와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냉장실에서도 엄~청 꽁꽁 업니다. 은(는) 훼이크고.. 네.. 냉동실을 착각했네요. 죄송합니다.
Starlight2008-07-04 18:24
교훈이 있는 글이에요 ㅋㅋㅋ
nukie2008-07-05 03:38
sartre / 아핳핳 앞에 읽다가 정말 냉장실에서 어는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
Radiohead2008-07-05 05:00
'절제하기'는 빼주시죠. 장어를 냉장고에 한달간이나 넣어둔다는 건 내겐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