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에 달아보려고 했으나 너무 길어 스크롤의 압박을 초래하기에, 부득이 답글로 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제목을 ‘마군님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쓴 것은 일련의 글과 덧글들을 토론의 과정으로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며, 반박을 기대한다고 이야기한 것 역시 그러한 맥락이었습니다. 토론이 뭐가 그리 즐겁겠습니까. 저 자신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일 뿐인 것을요. 다만, 아무리 이곳이 ‘인터넷 공간의 변방’이라고는 하지만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공적 사이트인 만큼,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안들에 한 목소리만을 남겨놓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주제넘게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마군님께서 당황하셨다 하니 제가 잘못 생각한 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토론에 대한 끈을 놓아버릴 수는 없기에 님이 쓰신 글에 답변을 해 보겠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마군님의 덧글을 읽고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에 대해 먼저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토론을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부분은 ‘명확한 출처’와 ‘적절한 논증’ 입니다.
- 중립은 (적어도 토론을 함에 있어서는)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어느 두 입장에 대한 비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덧글에 대해 답변을 하면서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1. 진보-보수에 관한 관점
- 정리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2. 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 일단 제 글의 어디에서도 제가 ‘이명박 OUT'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 또한 저는 이명박이 탄핵되든말든 별 상관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밝힙니다. 제가 남긴 글을 단지 ’이명박은 나쁜놈이니 촛불집회는 당연한거야‘라는 감정의 발로라고 해석하셨다면, 심각한 오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 단락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근원적 자유’는 어떤 것으로도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법률이, 혹은 법률의 적용이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는 점이었구요. 그래서 근대니 자연법과 실정법이니 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시덥잖은 개념까지 끌어들여서 이야기 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제가 이야기했던 촛불집회를 ‘2008년 5월 이후 서울 도심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명박에 대한 반대 집회’라는 한 단면으로서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주장들을 할 자유’, 더 나아가 ‘국가의 부당한 정책에 저항할 자유’라는 기본적인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판하면서 항상 나오는 논거가 바로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야기한다는 점인데, 이것을 기본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국민의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로서 주장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동권의 억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때입니다. 주거지 제한 등의 정책들이나 장애인들의 교통시설 이용에 대한 접근성 부족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정치적인 집회가 서울을 장벽을 쌓듯이 동서로 갈라놓고 강동구에서 영등포구로 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한 교통체증으로 인한 불편에 대한 운운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정치적 표현에 대한 자유는 굳이 그런 실정법 상에서 불법적인 형태로만 표출될 수밖에 없는가? 라는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도적인 모순점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현행법에서는 행정부가 구성이 되었을 때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들의 잘못에 제동을 걸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심사권 등의 제도가 실질적인 방식으로 대중들이 행정부의 실정을 막아낼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그렇다면 대중들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동에 동요된 대중들의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만, 과연 총선이나 대선 등 몇 년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선거과정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순간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4년 혹은 5년의 긴 시간동안 행정부나 입법부의 실책에 대해 국민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현재의 제도적 문제점이 더 큰 위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중에 대한 불신이 엘리트정치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지거나(님이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중들의 건강한 반성과 정치참여가 포퓰리즘으로 연결지어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의 이중잣대입니다. 왜 불법집회라는 낙인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방향에만 찍히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과연 보수단체들을 정부에서 문제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집회를 하지 않아서, 혹은 집회를 하더라도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정부의 대처와 진압이 완전하게 합법적이고 순수하며 가치중립적인 입장에 따라 진행되는지도 살펴보아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물대포 등 진압방식에 대한 규정은 모두 ‘법률’에 나와있는 것들입니다.) 님께서는 앞서의 덧글에서 “강경진압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분명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허나 그것보다 더 큰 공공복리에 반하는 현상을 놔두면 그건 국가가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더 큰 공공복리’를 위해서라면 정부는 법률에 어긋난 방식의 강경진압을 하여도 상관없는지, 또 기본적인 정치적인 의견표출의 자유를 뛰어넘는 ‘더 큰 공공복리’라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자연법과 법률에 대한 문제'에서 님의 어떤 부분이 모순이었나 하는 점에 대해서는 위에서 서술한 내용으로 대답이 되었다고 여겨지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법에 대한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법에 대한 논의는 토론 불가능한 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3. 조중동을 바라보는 관점
- 위에서 제기한 토론의 조건과 맞닿아있는 부분입니다.
앞서의 덧글에서 님께서는 “광고중단압력자체도 조선일보가 공공복리에 크게 반한다. 라는 것이 정되지 않는 이상 기업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 조선일보 등에 광고중단 압박을 하고 있거나 또는 그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주장입니다. 님께서 이전의 발언들을 토론의 일환이 아니었다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으며, 제 판단이 틀린 것일 테지만, 만약 앞의 그것들이 토론의 과정이었다면 당연히 조선일보가 공공복리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는 데 대한 논거가 제시되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광고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공공복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님은 그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님께서 그런 시각들에 대한 충분한 논거를 통한 비판을 하신 다음에, 다시 그에 대한 비판이 돌아오는 것이 순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제가 그런 논증을 해야한단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네요.” 라는 반응 자체가 토론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입니다. 님께서 저 주장을 하시고 그것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셨으면 상관없겠지만, 계속해서 반박덧글들을 쓰시고 계신 만큼, 그리고 이 사이트가 개인 홈페이지가 아닌 공적맥락을 가지고 있는 사이트인 만큼,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한 저는 “'조중동이 이러이러한 공공복리에 어긋났기 때문에 광고압력을 넣고있다.'”라는 부분에 대하여 제 글에서 이미 충분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못보셨을 수도 있을까 싶어 그 부분을 다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어떤 것이냐는 점입니다. 언론은 팩트를 기반으로 합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보도하며, 그들도 ‘프레임’이 있기에 논조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명확히 있는 팩트를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끼워맞추거나, 이전에 보도했던 것을 바꾸거나, 명확한 진실에 아예 눈을 감아버리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언론의 본질을 저버리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조중동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구체적인 사례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검색해보시면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님이 말씀하신 ‘공공복리’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조중동이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하고 그것이 민중의 삶을 억압한 구체적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조중동의 태도가 그러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언론은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공공복리에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충분치 않으시다면
http://www.realcjd.net/
이 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중동의 수많은 왜곡보도가 담겨있습니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소양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내용입니다. 마군님 역시 진실에서 멀어진, ‘선동’으로 가득찬 지금의 사회가 못마땅하실 것입니다. 그 선두에 바로 조중동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조중동이 공공복리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한 주장과 그 근거였습니다.
그래도 논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신다면 저도 토론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에 이 논의는 이쯤에서 접도록 하겠습니다.
4. 시위 내용에 대한 관점
- “집회 가봤어요? 안가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는 말씀을 또 드리게 되는군요.
“우와, 그 수많은 기사와 사람들의 인터뷰와 제가 본 폭력시위의 동영상과 폭력시위는 시위대가 먼저 이유도 없이 폭력진압해서 한거야. 라고 흥분하시며 말씀하셨던 저희집 동네 아저씨의 말이 조작되었다면 정말 놀랄만한 일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폭력시위의 동영상에서의, 폭력행위가 촉발된 과정이 전부 사상된 상태에서 한 단면만 보도하는 것 역시 명백한 조작, 왜곡보도라는 것이지요. (동네아저씨의 말씀은 명확한 출처를 통한 것이 아니므로 논의의 가치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전경에 대한 공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린대로 저는 이번 촛불집회의 성격이 절대 ‘비폭력’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반(反)폭력 집회라는 이야기를 하였죠. 폭력과 반폭력을 논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은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가 ‘법의 이름으로서의 폭력(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밝혔던 주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을 행사하였음은 둘째로 치더라도, 촛불집회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였는지 또한 자명합니다. 이것을 진보언론에서는 ‘경찰 먼저’라고 보도하고, 수구언론에서는 ‘시위대 먼저’라고 이야기 하지요. 진실은 하나일텐데, 누가 왜곡하는 것일까요. 그걸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그 집회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직접 가서 보고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부디 '말은 중립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이명박파'로 보지 마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셨는데요. 네. 맞습니다. 저는 결코 지금 님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의 머리에 적은 바와 같이 중립은 ‘어느 두 입장에 대한 비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립의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어느 한 편의 시각에 선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두 주장이 어떤 모순점을 가지며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그 둘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님의 본문과 덧글들에서는 대안은 물론이거니와 양쪽입장에 대한 진지한 비판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님의 주장들은 ‘현재의 촛불집회는 폭력집회의 성격을 띠고 있어 수많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으며, 대중들도 진지한 반성과 성찰 없이 감정적인 선동에 휩쓸려 몰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정리될 수 있을 듯 한데요. 이것이 과연 어떻게 중립적인 주장이 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이것은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정부 측의 입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그럽게 보아 이것이 집회를 지지하는 쪽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면 그 반대편에 서있는 관점에 대한 비판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비판 없이 “강경진압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분명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허나 그것보다 더 큰 공공복리에 반하는 현상을 놔두면 그건 국가가 아닙니다.”라는 주장으로 옹호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태의 전개과정을 바라보시는 시각("촛불이 모이기 시작함 ->언론 보도(시민이 화났다. 18살 학생 발의로 시작된 이명박 탄핵과 그 학생 인터뷰와 같은 기사) 순수한 사람들 외에 폭력 시위대 구성이 되기 시작함 (촛불시위측 내부에서 강경파/온건파가 나뉘었음) ->그에 따른 목적의 변질 -> 폭력 시위 -> 언론 문제제기-> 시민들의 불편과 봉변사례 ->날로 열기를 더해가고 강도가 더해가는 폭력/불법 시위("평화시위는 어제로 끝났다.") -> 강경진압하겠다. 라고 검찰발표.") 역시 수구언론의 그것이구요. 단지 “조선일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라는 이야기는 본인이 중립적이라고 주장하기에 너무 빈약한 근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중도라는 위치가 뭔가 옳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난 중립이야.’, ‘난 정치적으로 중도진보야’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고, 언론에서도 거리낌없이 그런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포장만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사안에 있어서는 보수적, 어느 사안에 있어서는 진보적이니까 나는 중도적이다 라는 이야기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 사태에 있어 명확한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보수든 진보든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중립주의자기 되기는 그보다 더 힘든 것이지요. ‘중용’을 지키기가 힘든 이유일지도 모르겠구요.
5. 법대에 대한 언급에 관하여
- 일단 그 언급이 님에게 불쾌감을 안겨드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법대에 다니는 제 친구들의 이야기와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법대 교수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법대에 관한 일종의 ‘프레임’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또 마군님의 언급 (“법이 강자를 위해 만들어졌다.. 라는 말은 왠지 동의하기가 좀 그렇네요. 입법취지 자체가 국민을 위한 거고, 법조문을 자세히 뜯어보고 판례 같은 걸 자세히 보면 정말 국민 개개인의 이익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부분이 많거든요. 정말 법이 강자를 위해 만들어졌다면 행정소송해서 승소하는 사람이 없을겁니다..”와 같은)들을 통해서 님의 법에 대한 인식이 법대의 교육환경과 연관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실제로 마군님께서 재학중이신 학교가 제가 한 이야기와 거리가 먼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구요. 저의 실수가 토론을 이끌어나가는데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법대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들 때문입니다. 법대에 다니는 한 친구가 바로 ‘법은 곧 선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저와 논쟁을 했던 경험이 있구요. 사법고시 면접문제, 유명 법대의 면접 문제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불쾌하셨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6. 그 밖에
- 어떤 언론이든지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겨레나 PD수첩의 왜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왜곡이 있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는 것이며 자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하지만 광우병에 관련한 PD수첩 내용에서 언급된 ‘왜곡’이라 함은 사태의 근본을 뒤바꿀만한 왜곡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저도 그 영상을 보긴 했습니다.) 편집상에서 말그대로 ‘감정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번역을 바꾼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 확실하고 사과방송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함이 명백하나, 이것이 광우병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는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앞서 덧글에 언급하신 “민영화하면 조금만 써도 수도요금이 몇백만원 나온다.”, “미국 알츠하이머 환자의 수십프로는 광우병 환자다. 미국이 이익을 위해 은폐하고 있다.” 라는 이야기는 과장이 섞여 있기는 하나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정책을 입안하는 자세가 ‘위험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실행해도 된다’는 것이어서는 안되고 ‘조금이라도 위험요소가 있다면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 원칙이어야 하는 만큼 저런 소문들에 대한 명백한 반박이 이루어지기 전에 ‘선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입니다.
각국의 수도민영화 사례
지식채널e - 블루 골드
http://blog.naver.com/rooppi?Redirect=Log&logNo=30033018203 볼리비아
http://blog.daum.net/nutmine/6841895 이탈리아
http://www.imbc.com/cms/CUCNT190/TV0000000074818.html 이탈리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98904 영국
광우병 관련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clickOrder=LEA&barcode=9788991264663 <얼굴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83711878&orderClick=LAH <죽음의 향연>
- 앞서 쓰신 글에 사실관계에 문제점이 있는 내용이 있었는데 미처 짚고 넘어가지 못해 여기에 씁니다.
“(ⅱ)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의 파업.
촛불집회에 편승해서 불법파업을 일삼는 단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합원들에게 파업 찬반 투표해서 부결까지 났는데도 국민의 건강권을 이유로 파업을 강행했죠. 단체의 이익이 아닌 건강권을 이유로 파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오바' 아닙니까?“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가 부결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6월 16일에 있었던 현대자동차 사업장에 한정된 파업에 대한 찬반투표였으며, 파업을 실행케 한 투표는 지난 6월 30일에 있었던 금속노조 전체의 찬반투표로, 현대자동차 노조도 67%의 찬성으로 가결시킨 바 있으며, 이에 따라 7월 2일의 부분파업이 시행된 것입니다. 마군님의 글은 조합원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파업을 밀어붙인 것이라는 뉘앙스이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팩트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