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다가
촉촉히 젖은 도서관 앞 화단,
푸른 풀잎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가던 갈색 달팽이를 발견하였다.
나는 호기심에 화단 안으로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달팽이를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어린시절 학대받거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경험은 없었기에
들고있는 담뱃불로 달팽이를 지진다거나 하는 (특히 등껍질이 아닌 속살 부분에) 잔인한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다가간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졸린듯한 동작으로 꾸준히 기어가던 달팽이는 정말 느렸다.
느리고도 너무 느려서 '혹시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찌나 느렸던지,
내가 만약 달팽이와 교감할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당장 달팽이에게 목적지를 물어보고,
내 스쿠터에 탠덤해서 데려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도 무상으로.
달팽이가 가는 방향으로 목적지를 유추해 보려던 시도도 실패했다.
그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달팽이는 일직선이 아닌 갈 짓자로 이리저리 그저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장담컨데,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썼던 피에를 쌍소도 그 모습을 봤다면 울화통이 터졌을 모습이었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달팽이에게 묻고야 말았다.
"달팽이야, 어디가는 길이니?"
"학교 가는 길이야"
"학교가 어디인데?"
"저~기 화단 끝"
달팽이와 내가 있던 곳에서 반대편 화단 끝까지는 불과 10 미터 정도.
"학교까지 기어가려면 얼마나 걸려?"
"한.. 보름 정도?"
"그럼 학교갔다가 오면 한달이 걸리는 셈이네?"
"응, 그렇지"
"그럼 일년에 학교를 12번 가는 셈이구나?"
"아니야. 난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 계절학기는 안들어. 방학동안 안가니깐 8번정도만 가면 돼"
"응..그렇구나"
"응, 그렇지"
"학교 가는길이 굉장히 힘들텐데 꼭 학교 다녀야 해?"
"응 그렇지! 게다가 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게 좋거든. 저번에는 학교에서 알파벳을 배웠다니깐!
알파벳 노래도 배웠어!! 잘 들어봐. 에이~비~씨~디~ 이~ 에프~ 지~"
고동색 바탕에 흰 선들이 가끔 섞여있어 카푸치노를 연상케하는 달팽이는
시키지도 않는 알파벳 노래를 힘껏, 그러나 가냘프게 부르기 시작했다.
등에 지고 있던 알파벳 소문자 'e' 모양의 집이 바르르 떨리는게 느껴졌다.
"잘 하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응,그렇지"
"집에 돌아갈때는 또 어떡하지? 밤에는 잘 안보이지 않아?"
"응,괜찮아. 밤에는 저기 하늘에 반짝반짝 하고 빛나는 작은 별을 따라 가면 돼. 쭉 따라가다 보면 우리집이야"
"좋은 곳에 사는 구나"
"응,그렇지"
"학교까지 가기 힘들면 내가 데려다 줄까? 내 손바닥에 올려서 말이야"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지금 도착해봐야 수업도 시작 안했을건데"
"아! 그렇겠구나"
"응, 그렇지"
"만나서 반가웠어. 앞으로 또 만나자"
"응, 그렇지. 나도 또 만났으면 좋겠어"
"아참, 너 이름이 뭐야?"
"응, 달팽이야"
"좋은 이름이구나"
"응, 그렇지"
'그럼 안녕~' 이라는 말과 함께
난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길을 떠나는 달팽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인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자세히 보자면 분명 그는 다시 학교를 향해 기어가는 중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도 곧 돌아서서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버리고, 다시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서관 앞 게이트에서 학생증 바코드를 찍고 들어서던 중.
아까 알파벳 노래를 부를때 바르르 떨리던 달팽이의 집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높은 학구열에 나 또한 고취되어
그를 추억하며 난 조용히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에이치, 아이, 제이, 케이, 엘, 엠, 엔, 오, 피~
서쪽하늘에서도~ 동쪽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별~ 어여쁘게 지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