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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의 허구성 (스포일러성)

elec2004-07-10 15:12조회 33
(그냥 개인적인 의견이니, 보신 분들은 불만스러우시더라도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세간의 평판과는 달리,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찜찜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완성도가 매우 허술하게 느껴졌으며,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판타지적 요소가 불만스러웠다.

판타지 영화라고 광고하던 이 영화의 '판타지'는 사실 과연 '판타지'라고 불러야 할 지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반갑지 않았다.

영화의 기본적 틀은, 뉴질랜드로 연수를 떠나게 된 나영이라는 우체국 직원이 갑자기 과거로 회귀하여 자신이 증오했던(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현재의 어머니의 과거사를 들춰봄으로써, 자신과 어머니, 또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잃었던 끈끈한 애정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니, 그런 내용인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판타지로, 판타지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은 포스트 잇 떼고 붙이듯 너무나 무성의하게 이루어졌다. 시간적 배경의 교체 장면들사이에서는 어떠한 교집합도 찾아볼 수가 없어 멍하다. 뭐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일어나 보니 현실이었다 하는 호접몽식 천편일률 플롯보다는 차라리 나았겠지만,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면 그런 억지스런 전개로 주제전달에 성공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의 처음 시작에서, 나영은 고아 출신인 남자친구에게 세속에 찌든 어머니와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미움을 드러내며 떠나겠다고 외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녀의 심저에는 부모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남자친구의 "나 지금 니가 한 말 하나도 안 믿어"라는 대사는 그 증명이다.)여기서부터 판타지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과거의 나영이 목격하는 것은 현재와는 다른 어머니의 모습과 또 젊었을 적 아버지와의 순수한 로맨스이다. 그런데 이런 것만으로 그녀의 상처를 지우려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현재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남편 취급하지 않고 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히려 나영의 환상에서는 어머니의 순수하고 맑던 옛 모습과 어머니와 아버지의 순수하고, 그러면서도 잔잔히 따뜻한 사랑이야기들만을 보여준다. 그것에서마저도 사건중심적인 단순하고 산만한 장면들만이 툭툭 튀듯이 나타나서 혼란스럽다. (젊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전근 선언을 한 후, 어머니가 물질을 하다 까무러치는 장면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그래서는 안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랬던 어머니는 현실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버지를 무시하고 하대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인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하대하는 이유도, 다시 받아들이는 이유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물론, 영화의 초반에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 전재산을 날리는 이야기가 나오고, 아버지를 주제로 한 '착한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ex : "우리아버지는 너무 착해요. 그래서 힘들어요."등등)이 나오는 걸로 보아 매끄럽지 못한 전개를 풀칠하려는 노력은 보였으나, 내 생각엔 역부족이 아닌가 싶다. (젊은 어머니의 "사람이 일단 착하고 봐야지유"하는 대사는 그 안간힘의 방증이다.)

차라리 그저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아프고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 게 주제 전달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랬다가는 이 영화는 존재가치를 잃겠지만.)

요약하자면, 이 영화에서 현실과 판타지는 서로 융합되지 못하고 겉돈다. 그래서 판타지를 수단삼아 현실을 봉합하려는 시도는 억지스러웠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주얼은 굉장히 산뜻하였고, 아름다웠다. 고두심씨의 질퍽한 연기를 비롯하여, 전도연씨의 1인 2역 등, 출연자들의 연기도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한다.(박해일씨의 연기는 영화를 볼 땐 불만스러웠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성실한 연기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는 나영의 외삼촌 역을 맡은 이한위씨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던, 늙은 나영의 아버지역의 김봉근씨의 연기가 인상깊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말하고자 했던 것을 더듬거린 불운한 영화가 아닌가 한다. 그 더듬거림으로 관객의 고막을 자극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감독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잊고 살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는 계기로 삼게 된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는 변은 제대로 먹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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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박남훈2004-12-16 07:44
이 영화 못보게 되서 감사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