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펭슈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주말의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어제는 영 볼만한 게 없더군요.
그래도 '펭 슈이'는 공포 영화였기에 기대를 하고 보았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죠.
본 영화의 소재는 상당히 진부한 소재입니다.
(혹 나중에 보실 분들을 위해서 스토리는 말 않하겠습니다)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면 감독의 역량과 탄탄한 스토리가 뒷받침 되어야 할텐데,
펭 슈이를 만든 감독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어 전혀 지루한 감 없이 봤답니다.
(필리핀이라는 지역적, 인종적 분위기도 한 몫한 듯)
진부한 소재인 덕분인지 영화 보는 내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떤 부분이
복선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쉽게 알아 차릴 수 있었지만, 영화 곳곳에 흐르는 그 스멀스멀하는
느낌이란..
필리핀이나 동남아 국가들 보면, 경제적으로는 좀 후진국일지라도
영화 한편 한편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 보면 확실히 그 정신만은 상업주의가 판치는
국내 영화계 보단 높게 쳐줄만 한 것 같아요.(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여기부터 스포일러)
한번 더 봐야 정확히 이해될 것 같지만
제가 펭 슈이에 나오는 팔괘 거울을 보고 느낀 점은 이것입니다.
`그 거울을 얻음으로써 자신에게 예정된 행운 또한 거울에 의한
행운으로 모조리 인식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저주다` 라는 것이죠.
사실 제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반전은 주인공이 거울의 저주를 깨는 법을
알고나서 후에 자신에게 오는 복을 거울이 가져다 주는 복으로 착각하고
거울을 깨뜨려 주인공이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었는데,
영화 다 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애초에 주인공이 거울을 갖게 된 이후부터
주인공에게 의당 왔어야 할 복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아닌가요^^;)
이러한 점에서 위에 제가 쓴 느낀 점은 정말 무섭게 다가옵니다.
평생을 그러한 행운과 저주의 틀 안에서 신경쓰며 살 바에야 차라리 일찍 죽은 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 거울의 저주를 푸는 법 또한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
실상은 무용지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예정된 행운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