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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좋아하세요?

acid2003-08-15 04:56조회 1108추천 27
사전 빼다가 책장 하나가 무너져내려서;; 다시 정리하던 중에,

구수한 곰팡이 냄새를 잔뜩 머금고 있는 책을 한권 발견하야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네요.

혹시 시인 seamus heaney를 아시는지..;;

아일랜드의 시인인데요, 199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아일랜드의 민족적 정서를 리얼리즘 기법으로 표현한 시들로 상을 받으셨더랬죠)

비평가, 문학사가, 번역가, 교수 등으로도 활동하셨구요. (아마 영문학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할 듯)

저는 아직도 seamus heaney 할아버지;의 시집과 마주쳤던 첫 순간을 기억하는데요,

동네에 다 망해가는 한 서점에서 폐점세일을 한다길래 용돈 모아놓은 거(5만원쯤 되었던 거 같네요) 들고

수업 끝나자마자 달려갔어요. (학교에서 수업시간 내내 돈 잃어버릴까봐 수업도 제대로 못듣고 안절부절했던

기억이...ㅋㅋ 당시 초등 6학년이었던 제겐...음...큰돈이었죠-_-)

정말 책 몇천, 몇만(?)권이 해일처럼 눈 앞에서 쏟아지는데, 뭘 사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책에

깔릴까봐 저쪽 구석으로 갔는데, 거기가 하필이면 시집코너였어요. 이것저것 훑어보면서 아저씨가 책장

다 뒤집어 엎을 때까지 기다렸는데... 그 때 제 눈에 띈 것이 바로바로 학영사에서 나온 seamus heaney

할아버지의 '최초의 비행'이란 시집이었던 것이죠. 쪼그리고 앉아서 금세 절반을 다 읽고, '이거다' 싶어서

바로 이 책만 사들고 집으로 달려가서 읽고 또 읽고... 그 때 하도 많이 읽어서 지금도 그 책에 나온 시는 거의

외우고 있을 정도-_-;; 세일덕을 못본 게 좀 한스럽군요(당시 그 책 3천 5백원이라 세일 안했음)

나중에 중학생쯤 되어서부턴 영어로 된 히니 할아버지 시집을 사모았어요. 선집 하나랑 '자연주의자의 죽음'

이랑 예이츠/워즈워드 시 편집하신 거랑 이렇게 몇권 있는데... 아무래도 영어다 보니 손이 잘 가진 않네요.

-_-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한편과 허접한 번역; 올려드릴게요.

(국내엔 히니 할아버지 시집이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영어로 봐야 제맛이니 이참에 원어시집 한권

주문하시는 것도...;;)



mid-term break

I sat all morning in the college sick bay
Counting bells knelling classes to a close.
At two o'clock our neighbors drove me home.

In the porch I met my father crying-
He had always taken funerals in his stride-
And Big Jim Evans saying it was a hard blow.

The baby cooed and laughed and rocked the pram
When I came in, and I was embarrassed
By old men standing up to shake my hand

And tell me they were "sorry for my trouble,"
Whispers informed strangers I was the eldest,
Away at school, as my mother held my hand

In hers and coughed out angry tearless sighs.
At ten o'clock the ambulance arrived
With the corpse, stanched and bandaged by the nurses.

Next morning I went up into the room. Snowdrops
And candles soothed the bedside; I saw him
For the first time in six weeks. Paler now,

Wearing a poppy bruise on his left temple,
He lay in the four foot box as in his cot.
No gaudy scars, the bumper knocked him clear.

A four foot box, a foot for every year.


중간휴식

나는 아침내내 대학 의무실에 앉아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세고 있었다.
두시 정각에 이웃이 나를 집으로 태워다 주었다.

현관에서 울고 계신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장례식을 수월하게 넘기셨고-
빅 짐 에반스는 그것을 대단한 불행이라 말했다.

아기는 키득거리며 유모차를 흔들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나와 악수하려 서있던 노인 때문에
나는 당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유감이라고' 말했다
속삭이던 소리들은 낯선 이들에게 내가 장남임을 말해주었다
멀찍이 학교에서, 어머니가 내 손을 감싸쥐시며

사납고 메마른 한숨을 뱉어내셨기 때문에.
열시 정각에, 간호사들이 지혈시킨 시체를 실은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눈발과
촛불이 병자의 머리맡을 달래주었다, 나는 6주만에 처음으로
그를 보았다. 지금은 더 창백했다.

왼쪽 관자놀이에 오렌지빛 멍을 입고
어린이침대에서처럼 4피트 박스 안에 누워 있었다.
화려한 상처 하나 없이, 범퍼는 깨끗이 그를 쓰러뜨렸다.

4피트 박스 하나, 해마다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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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우유2003-08-15 05:25
우와 좋네요
해석이;

전 랭보 좋아해요 으하하
공포는 프랑스적인게 아니다..
김영욱2003-08-15 06:26
외국시는 번역을 해버리면 언제나 특유의 운율이 사라진다는 걸
스스로 알게된 후부터는 좀 꺼려왔고(외국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라),
보들레르나 랭보 같은 시인은 독자적인 뭐랄까... 깊이가 있잖아요...
그런 깊이를 나름대로 섭취하는 건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우리 입맛(?)엔 한국시인이 제격이 아닐지...
대학 1,2학년 때는 가방 안에 항상 기형도 시집이 들어있었지요...
genie2003-08-15 09:30
시는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한국시를 주로 읽어왔어요. 베를렌느의 하늘은 지붕 위로 같은 시를 읽으면, 마음에 확 와 닿을 정도로 좋았지만, 번역만으로는 온전하게 시를 느낄 수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었죠. (영어라면 읽기라도 해 볼 텐데요.^^;;;)
암튼, 시는 읽고 또 읽으면서 그 깊이를 알아가는 것이 참 매력인 것 같아요. 이전에 지나쳤던 구절이 어떤 의미를 갖고 다가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네요.
참, 저도 기형도 시인의 시 정말 좋아한답니다.
acid2003-08-15 11:26
우유/부끄;;
김영욱,genie/맞아요. 번역을 아무리 잘해도 운율이나 라임 망가지는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최초의 비행'에 나왔던 시들을 영어로 읽은 후에, 그 번역이 상당히 시의 맛을 깎아먹었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어찌나 실망을 많이 했었는지.
저도 기형도 아저씨 시 정말 좋아해요. 전에 박해일씨 나오는 연극 봤을 때 선물로 기형도 시집을 드렸더랬죠. 속표지에 정현종님 시 적어서...;;
갠적으론 이성복님 빠순이;;;예요- 요번에 나온 '아, 입이 없는 것들'을 읽고 제 이름을 '마라'로 바꾸고 싶었다는ㅋㅋ
acid2003-08-15 11:33
여담인데, 우유님은 제 친구 모모양과 너무 비슷한 거 같아요.
첨엔 제 친군줄 알고 회원정보 봤었는데...
로자룩셈부르크, 랭보 좋아하는 것은 물론 말투까지-
전 랭보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웠어요. 예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프랑스어 시낭송 대회도 나갔구요;; 초기에 빡시게 배워놓은 덕분에 지금도 프랑스시 어렵지 않은 건 읽을 수 있다는 게 어찌나 행복한지...+_+
grapevine2003-08-16 04:20
번역시는 출판사마다 또 느낌이 다르더군요. 그래서 재미있던데..
한국시는 이상씨의 것들이 재미있어요. 나른한데 치열한거.
박지휘2003-09-16 18:12
저도 이상 님을 좋아합니다..일단..어렵고 그렇다기보다는..와닿으니까요..거울과..오감도..또 건축무한육면각체..(이건한번맘먹고외웠었는데또까먹었네요..)하여튼 대단한시인이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