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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펌) 장미의 이름...(설명..)

박지휘2003-10-09 07:00조회 1112추천 22
<H4>영화 '장미의 이름' </H4>

The Name of the Rose 1986년 <BR>감독 / 장 자크 아노 <BR>출연 / 숀 코너리,<BR>크리스천 슬레이터 <BR><BR>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미의 이름은 흔히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아조의 아련한 회상을 통해 1327년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그의 스승 바스커빌의 윌리엄 수도사와 함께 겪었던 엄청난 사건을 들려준다. 음모, 타락, 부패, 폭력, 독선의 악취를 풍기는 이 수도원은 당대 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소우주이다. 아조의 입을 빌려 에코는 서구인들에게는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세계관과 문화를 빼어나게 그려낸다. <BR><BR>지적이고 영리하며 때론 자만심에 넘쳐 있는 것 같기도 한‘해결사’ 윌리엄은 마치 중세의 능란한 셜록 홈스 탐정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장미의 이름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수도사 몇 명이 잇따라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수도원에서 일어난다. 사건의 수사를 맡은 윌리엄은 이런저런 증거들을 통해 그들의 죽음이 모두 이곳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어떤 금서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즉 피살자들은 모두 금서에 담긴 금단의 지식을 알아내려다 화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에코에 따르면 미스터리 소설의 구조는 무수한 플롯 가운데 가장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는 미스터리 소설과 철학은 기실 ‘누가 범인인가?’하는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미스터리 소설의 최종 목적지가 범인을 가려내는 것이라면 철학은 존재나 세상의 어떤 원리를 추적하는 것이라는 데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미스터리 구조 위에 광신과 진리의 상대성 같은 문제들을 빼곡이 얹어 놓았기에 실제로 장미의 이름은 철학 소설이기도 하다. <BR><BR>그렇다면 영화판 장미의 이름이 원작의 이런 특성들을 어떻게 끌어들였을까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방대한 분량도 문제였거니와 대중 소설로서는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이었기에 소설 장미의 이름을 스크린에 제대로 옮겨 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 ‘무모한’ 프로젝트의 메가폰을 잡은 것이 프랑스 출신의 장 자크 아노 감독. 결과만 놓고 본다면 무모하다는 표현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역사물로서 영화 장미의 이름은 일단 시대를 재현하겠다는 노력의 꼼꼼함이 돋보인다(이건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장기이다). 수도원으로 제한된 공간은 그야말로 황폐함, 그로테스크, 불임의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많은 역사물들이 그것의 세트나 시대적 분위기 앞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불행하게도 이 영화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영화는 원작의 연대기적인 기본 뼈대를 얼추 따라가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종반부에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와 윌리엄의 대결 구도를 마련해 놓고 극적 흥분을 되살리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오히려 그렇지 않아도 철학적 통찰력이 증발된 마당에 선과 악의 진부한 이분법만을 주입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화형 직전에까지 갔다가 살아난 여인과 아조의 눈물어린 이별은 애상적이기는커녕 작위적이라는 느낌만을 안겨준다. 지극히 상업 영화적인 컨벤션이 애당초 힘겨운 프로젝트를 확인 사살한 셈이라고나 할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여유로우며 합리적인 선구적 근대인 윌리엄을 연기한 숀 코너리의 카리스마는 영화의 단점을 다소 가려주는 역할도 한다. 아조 역을 맡은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앳된 모습도 볼 수 있다. <BR><BR>프랑스 출신의 장 자크 아노 감독(1943∼)은 흔히 영화화하기 힘들 것이라고 여겨지는 진기한 소재나 이례적인 배경을 스크린에 성실하게 담아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어떨 땐 무모한 모험가처럼 비치기도 한다.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TV 광고물을 만들던 그는 컬러 속의 흑백(1977)을 데뷔작으로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든다. 서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일단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을 다룬 이 영화는 자국인 프랑스에서는 외면당했지만 미국에서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며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차기작 불을 찾아서(1981)는 장 자크 아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8만 년 전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불을 찾으려고 하는 원시인들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BR><BR>중세 스릴러영화 장미의 이름 이후 장 자크 아노가 제작에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떠돌이 어른 곰과 아기 곰이었다. 곰의 시점에서 사냥꾼과의 투쟁을 그린 베어(1989)는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 감독상과 편집상을 수상했다. 다음 작품인 <연인>(1991)은 노골적인 섹스 묘사로 인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20년대 프랑스 치하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16살 소녀와 검정색 리무진을 탄 부유한 중국 청년 사이의 성적인 욕망과 탐닉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장 자크 아노의 최근작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벳에서의 7년(1997).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영국군에 붙잡혔다가 탈출해 티베트에서 딜라이 라마를 만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로 오리엔탈리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BR><BR>* 홍성남/ 영화평론가의 글입니다 *<BR><BR>(춘천 영화모임 자료2)


<H4>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H4>

[자유 베를린 방송]과의 한 인터뷰에서 키쉴롭스키는 {십계}에서 위성도시란 "인간들이 욕구 불만에 차 있고 외롭게 느끼고 있는" 세상의 모든 곳을 대표한다고 설명했다. 집집의 하고많은 창문 뒤에는 마찬가지로 사람사람의 하고많은 운명이 숨어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 낯선 사이를 이겨내고 서로관심을 기울이게 되려는 것이 그 창문들 안의 사람들처럼 이 영화가 애쓰는 것이다. "창문으로 다가가면, 유리창의 경계를 뚫고 들어가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됩니다. ... 그저 창문을 통해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전부지요."<BR><BR>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창문을 통해 들어감"이 토멕의 변태 행위 안에 행동 동기가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연작 전체의 기분인 이 생각의 한 영상화다. 카메라는 관람자로 하여금 거듭 다시 토멕의 '말없는' 눈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하고, 그 자신을 변태 성욕자로 만들며, 그 자신의 보는 자세를 반성하도록 자극한다.<BR>주저하는 듯한, 흔히 담담하게 기록만 하는 듯한, 이 감독의 이전 기록 영화 작업과 닮은 듯한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해서 관람자들을 연루시키는 일이 결코 방해받지는 않는다. 수단을 거두어들이면서 동시에 "무자비한 관찰"이 이루어지게 하는 바로 그 점으로 해서 도리어 영화가 특별한 밀도를 얻는다.<BR>키쉴롭스키는 이야기의 간결성과 영상들의 엄밀성을 위하여 애를 쓰고 본질적인 것을 편집하면서 많은 것은 교체되는 조망의 리듬을 거쳐서만 전달되고 단락들의 "이음자리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하는데, 이 사실이 관람자들의 합작 활동을 자극하는 것이며, 인물들의 행동에서나 그들의 주위 여건에서나 우선은 눈에 띄지도 않는 세부사항들마저 말을 하기 시작하는 그런 파고드는 성격 연구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BR>이때 "미묘한 색채 연출", 이를테면 빨간색을 주동기도 사용하는 것 같은 일이 키쉴롭스키에게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심리학적 밀도에 창작 음악도 적잖이 중요한 한몫을 하는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또다시 아끼고 삼가서 끼워 넣기 때문에 중요한 역점을 매기고 해석을 특정한 궤도에서 조종할 수 있다.<BR><BR>- H. 하켄베르그, {크르지스토프 키쉴롭스키의 <10부작>연작 영화 길잡이}, 중에서 -<BR><BR>이 영화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음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관음증은 다른 사람을 은밀히 훔쳐보는 것을 즐기는 인간의 독특한 욕망의 발현이다. 관음증은 일반적으로 성적 도착증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욕구이다. 욕망이론을 통해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영화보기 그 자체가 관객의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크린 상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등장인물들과 달리 관객들은 자신이 어둠에 숨겨져 있다고 느낀다. TV에서 자주 등장하는 몰래카메라도 역시 시청자들의 관음적 욕망을 노리고 있다. 관음증의 원천에는 보이는 대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의지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즉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될 때, 우리 자신의 정체를 형성하는 도덕, 법, 관습, 예절 등등의 행동양식으로 무장한다. 우리는 바로 그런 행동양식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이웃에게 보여주며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이 숨겨져 있을 때, 훔쳐보는 자는 안도한다. 훔쳐보는 사람은 자신이 보는 대상이 무장해제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특히 보는 대상이 지극히 사적인 행위, 즉 공공장소에서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것을 보일 때 훔쳐보는 자는 가장 커다란 쾌락을 느낀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1956)은 관음증 묘사에 있어서 영화사상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주인공의 집 창문을 통해 맞은편 집 창문 너머의 대상을 응시하도록 되어있는 영화적 공간 자체가 동일하다. {이창}이 결핍과 충족의 타원궤도 안에 있는 욕망의 운동을 통해 관객의 영화 보는 재미를 훌륭하게 조율했다면,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욕망과 사랑의 변증법에 관해 질문한다.<BR><BR>- {케노시스 제3호} 중에서 -<BR><BR>춘천 영화모임 자료1 200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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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세눈박이2003-10-09 07:23
하긴...숀코네리 어울려...
noel2003-10-09 13:54
잘 읽었습니다.^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