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영국의 4인조 록 그룹..'이라는 설명을 달고 영한 사전에도 올라 있는 이름이다. 비틀즈는 그야말로 서양 대중음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룹이며 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일종의 전설이 되어 버린 밴드이다. 1962년에서 1970년까지 그들이 창조한 음악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었고 한 세대를 앞서가는 것이었으며 언제 들어도 좋은 새로운 것들이었다. 비록 그룹은 해체되었지만 그들의 음악만은 시대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애청되며 사랑받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진정한 음악은 영원하리라고 ....
전설의 시작은 1957년이었다. 1942년 6월 18일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는 존 레넌 (John Lennon, 1940년 10월 9일 리버풀 태생)이 이끌던 'Quarry Men'이라는 그룹에 기타리스트로서 오디션을 통해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당시 15세이던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년 2월 25일 영국 리버풀 태생)과 존 레넌의 미술 학교 친구 스튜어트 섯클리프 (Stuart Sutcliffe, 1940년 6월 23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출생)가 있었다. 1960년 여름 그룹의 이름을 'Beatles'로 바꾸었는데 존 레넌의 말에 의하면 꿈에 한 남자가 불타는 파이 속에서 나와 말하기를 너는 'a'가 있는 Beetles (딱정벌레)가 되리라'라고 했다고 한다.
초기의 드러머는 피트 베스트 (Pete Best)였으며 그룹 비틀즈는 R&B와 로큰롤을 주 테마로 클럽에서의 연주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섯클리프가 미술가로서 독일에 남을 것을 결심하고 그룹을 떠나면서 그룹은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폴 매카트니가 베이스 기타를 담당하게 되면서 재정비에 들어간다 (섯클리프는 결국 61년에 죽게 되고 이런 일련의 내용들은 1994년 영화 'Backbeat'에도 잘 나타난다)
1962년은 비틀즈와 세계 음악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해였다. 여러 레코드 회사들과의 계약에 있어 좌절을 겪은 비틀즈는 조지 마틴 (George Martin)이라는 실력있는 프로듀서와 인연을 맺게 되고 'Parlophone'이라는 레코드사와의 계약도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Roy Storm and the Hurricanes 출신의 링고 스타 (Ringo Starr, 본명은 Richard Starkey, 1940년 7월 7일 영국 리버풀생)가 피트 베스트의 뒤를 이어 새로운 드러머로 영입되게 되면서 비틀즈의 완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962년말에 비틀즈의 첫 싱글 'Love me do'가 영국 차트에 등장했다. 전통적인 비트 콤보 사운드를 탈피한 이 노래는 존 레넌의 하모니카 연주에 힘입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두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는 TV출연을 통해 더욱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계속되는 'She loves you'와 'I want to hold your hand'의 히트로 비틀즈는 영국에서 정상의 자리에 등극했다.
정통 록 사운드와 참신한 멜로디를 담은 그들의 노래는 미국에서도 환영받기 시작했고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저명한 'Ed Sullivan Show'의 출연과 빌보드 차트의 진입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비틀매니아 (Beatlemania)들을 만들어 나갔다. 미국식 로큰롤이 아닌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록 리듬에 전세계가 흥분하기 시작했고 영국 특유의 전형적인 색깔을 지닌 록 비트와 철학적인 가사, 그리고 멤버들간의 완벽한 화음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설이 되어갔다...
'A hard day's night'이나 'Help!'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던 비틀즈는 1965년 크리스마스에 즈음하여 'Rubber Soul'을 내놓았다. 이 앨범은 기존의 작품과는 달랐다. 모든 수록곡들이 비틀즈만의 소리를 담고 있었으며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그야말로 비틀즈 사운드를 추구하고 있었다. 조지 해리슨은 라비 샹카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시타 연주자)에 영향을 받아 동양적인 소리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시도는 Byrds, Yardbirds, 그리고 Rolling Stones등의 그룹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일본과 마닐라등의 아시아 지역에서의 순회공연을 통해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동양의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 비틀즈는 보다 새로운 사운드의 창조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Rubber Soul'에서 시작된 이러한 시도는 마지막 앨범 'Let it be'까지 이어졌으며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hite album', 'Abbey Road'를 포함하는 후반기 6장의 앨범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앨범 10장안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운드는 신비주의 철학과 미래지향적인 전위 사운드, 로큰롤에서 발전된 보다 강한 록 사운드, 그리고 상식을 깨는 시적인 가사를 포함하고 있었다. 비틀즈는 하나의 시대 현상으로 간주되었으며 대중음악의 발전을 20년 이상 앞당긴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록, 펑크 등 거의 모든 70년대의 음악적 조류에 영향을 미쳤고 아직까지도 비틀즈를 능가하는 음악인은 나오지 않고 있는 걸로 봐서 그들의 위대함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Yesterday'나 'Let it be' 그리고 'Hey Jude'는 비틀즈의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대중적 히트곡들은 비틀즈를 제대로 평가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20세기 음악사를 통해 가장 훌륭한 앨범이라고 평가받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The Beatles (White album이라고도 함)'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쩌면 'Yesterday'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혹은 앨범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의도적인 음악이란 생각까지도 든다.
비틀즈의 음악이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어떻게 그 당시에 그런 응악을 만들수 있었을까? 비틀즈의 멤버는 전부 외계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의 역량은 놀랍기만 하다. 그들의 음악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전혀 진부하거나 촌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들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감동을 전해 준다....
50년대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세상이었다면 60년대는 비틀즈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70년대부터는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70년대는 그야말로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였으며 수 많은 군웅들이 활거하면서 대중음악은 비약적인 발전과 중흥을 이룩하게 되는 화려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