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head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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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헤드에 대한 인상과 라디오헤드 자신들의 위상이 지금처럼 비교적 단일하게 확립된 것은[OK Computer]때부터였다. 이전까지는 -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 반응이 엇갈리는 편이었다. '인디 출신의 젊은 기타 밴드'(이 얼마나 몰개성적인 표현이란 말인가)이자 우아한 청승을 떠는 아웃사이더들의 그룹. 지금은 명백한 고전이 된 93년도의 싱글 'Creep'을 기점으로 고국인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먼저 인기를 끈 것이 나중에 역반응을 일으켜 마치 억울하게 부당한 취급을 받다가 복권됐다는 것처럼 영국에서도 뒤늦은 반향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들은 몇 곡의 좋은 라디오 싱글을 가진 우량 밴드 이상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밴드. 리스트 속의 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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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던 상황이[OK Computer]로 거의 완전히 재편된 것이다. 1997년의 이 앨범은 가히 라디오헤드의[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서 등장하여 저간의 모든 낙차 다양한 주위 환경을 평정했다. 이 앨범을 만든 것은 라디오헤드지만 이 앨범 역시 라디오헤드를 만든 상황이 된 것이다 - 바야흐로 '90년대 최고의 밴드'중 하나로. 이로써 라디오헤드는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지만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밴드가 되었다. 그들은 '군림'하게 되었고 세상은 뻗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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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이후에 도래한 post-[OK Computer]의 세상은 자못 긴장을 더하게 되었다. 구미 각국의 유명 뮤지션들이 전에 없던 우호적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Korn의 조나단이 'f**king amazing'을 남발하면서 퍼부었던 칭찬이 인상적이었는데), 99년의 영국이 선택한 밴드 트래비스(Travis)의 2집[The Man Who]앨범을 위시로 콜드플레이(Coldplay)나 뮤즈(Muse) 등 이후에 등장한 영국의 그럴 듯한 신인 그룹들은 대개 라디오헤드와의 비교를 거의 절도 혐의의 수준으로 마치 수치처럼 거쳐야 했다. 라디오헤드란 이름이 이토록 거대한 등록상표가 된 탓에, 이들에게 우호적인 의사들마저 무슨 저작권 위반으로 몰릴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디오헤드 자신들이[OK Computer]에 규정될 위험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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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Kid A]는 의미심장한 앨범이었다. 작년에 발매된 대망의(진정 이 표현을 써도 무방하리라) 신보[Kid A]는 기타 팝록이라는 테두리를 진작에 벗어났던[OK Computer] 이후 밟은 라디오헤드의 실질적인 '다음 스텝'이었고, 그것은 일단은 표면적으로는 전자 사운드의 전폭적인 수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밴드로서는 실험적이고 싶은 소망과 그러면서도 동시에 팝이어야 한다는 과제(그들은 확실히 '파퓰러한' 밴드가 아니던가) 사이에서의 늦출 수 없는 긴장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거의 딜레마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입으로는 꼭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속으론 은근히/당연히[OK Computer] 2부를 기대했을지도 모를 대중 심리를 밴드는 그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든) 공격하고 있었다. 앨범은 성공적이었지만 또한 확실히, 당혹스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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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보라고는 하지만[Amnesiac]은[Kid A]가 발매됐을 당시부터 이미 말이 있던 앨범이었다. 모두[Kid A] 때 함께 만들어지고 녹음되었던 트랙들로, 밴드 측에 따르면[Kid A]에 실리지 않은 나머지('leftovers')들을 담은 것이라는. 그러나 단순히 쓰고 남은 것들을 구제한 부수적인 앨범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밴드가[Kid A]에서 잡은 성격에 맞지 않은 곡들을[Kid A]와는 또 다른 맥락의 테마로 배치한, 엄밀하게 말해[Kid A]와 동격의 의미를 갖는 쌍둥이 같은 앨범이다. 애초 하나의 작품일 수 있었던 것을(혹은 그렇게 되어야 했던 것을) 왜 하필 몇 개월의 차이를 두고 대중을 향해 이렇게 시간차 공격을 한 것인지의 진의에 대해서는, 일부 저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Kid A]의 비상업적+실험적 성격에 대한 대중성의 보완'이라는 설이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밴드 측도[Kid A] 때와는 차이가 있는 싱글 커트-비디오 제작-대규모 투어 등 적극적인 홍보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있을 법한 추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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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여기에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Amnesiac]이 과연 얼마만큼 대중적이길래. 다시 말해[Kid A]가 정말 그렇게까지 대중을 따돌리는 작품이었단 소린지. 여기에는 역시[Kid A]에 대한 일말의 의심(혹은 음모이론)이 묻어있다. 과연[Amnesiac]은[Kid A]가 (애초 기대되었던 만큼의) 주의의 동의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당황한 주최측의 뒤늦은 벌충 전략이어야만 할까. 그렇다면 놀랍게도[Amnesiac]은 별로 영리한 전략이 아니다. 이 앨범에는 '지난번에 우리는 오해되었기에 여기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한다'는 발분한 항변도, 혹은 '지난번 것은 우리가 듣는 음악이었고 이번에는 너희가 듣는 음악을 주마'는 오만한 계몽도 없다.[Kid A]에 비해 좀 더 많은 가사와 좀 더 적은 인스트루멘틀이 있을 뿐이다. 이 차이는 확실히 보다 익숙하다는 편안함을 주지만, 이를 굳이 대중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논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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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점에서 외관상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은 'Amnesiac/Morning Bell'로,[Kid A]의 'Morning Bell'과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반복 변주이다. 그리고 이 반복은 없다가 덧붙여진 'amnesiac'이 지시하는 만큼의 기억상실(amnesiac)의 모티브가 의미심장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금 이 모닝 벨은[Kid A]가 아니라[Amnesiac]의 '다른' 모닝 벨이며, 여기에는 '완전히 잊고 있다가' 5개월만에 불현듯 기억해낸 자신의 예전의 어떤 노래라는[Kid A] 당시의 톰 요크 개인의 작곡 일화, 그리고 가사는 잘라낸 반면 제목은 덧붙인 후자 버전의 형태가 긴밀하게 묘한 상관관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Kid A]와[Amnesiac]은 가사에서처럼 정말로 '반으로 잘려진 아이'의 양쪽 절반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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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Kid A]의 카마(karma)로써만[Amnesiac]이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곡들은 (그렇게 하려고만 하면) 놀랄 만큼 독립적으로 들린다. 전반적으로 도전적인 심상과 서정적인 심상을 사운드상으로 갈마들도록 배치한 앨범의 단선적 곡 구성은 듣는 사람의 내부에 일정한 파도를 치게 하는데, 그 와중에서 특히 소위 '서정적'인 쪽으로 분류될 법한 짝수 번호 트랙들, 즉 'Pyramid Song'과 'You And Whose Army?'(후문에 의하면 토니 블레어를 향한 안티 메시지라는?) 그리고 'Knives Out' 등이 모두 싱글로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할 만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실제로 'Pyramid Song'은 이번 앨범의 첫 싱글로 이미 결정된 상태다.) 반면 가장 도전적인 트랙으로선 아마 'Life In A Glass House'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충격일 수도 있을 이 라디오헤드와 정통 뉴올리언즈 재즈의 만남(이 얼마나 기묘한 한 쌍인가 - 하지만 밴드는 어쨌든 베테랑 재즈 트럼페터인 험프리 라이틀튼을 직접 섭외하는 진지함을 보였다)은, 단순하게는 역시[Kid A]의 'National Anthem'과 연결되는 공통의 '재즈 테마'로 해석될 > 수도 있겠지만, 멤버들의 말을 통해 밴드 내부에서 이 재즈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니라 이번[Kid A]와[Amnesiac]세션 시의 전반적인 '태도(attitude)'의 문제이기도 했던 것을 보면, 단순한 기분전환의 시도 이상의 그 무엇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덧붙여, 능란하고 불길하게 일렁이다가 마지막 일격으로 조용히 휘몰아치는 'Dollars & Cents'의 묵시록 또한 인상적이다.
> 이상한 말이지만 이 앨범은[Kid A]와 긴밀한 동시에 또한 홀로 독자적이다. 차이는 분명히 있다. 톰이 묘사하듯 "전작이 멀리서 난 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몸소 그 불 한가운데 있는 것"만큼의 차이가. 그리고 그 사이에 amnesiac, '기억상실'이 레테의 강처럼 흐른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장차 맞게 될 삶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그전까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의 기억이 모두 지워지게 된다"고 믿었던 그노시스파 학자들의 생각에 의탁한 이 앨범에 따르면, 그 '기억상실'이란 실제로 실존의 근거가 된다. 라디오헤드는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아는 듯하다. 그리고 잊지 않고 있다. (글: 성문영, 제공: EMI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