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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영씨의 암네시악 리뷰

탐스토커 2001-06-04 16:35조회 186추천 746
라디오헤드에 대한 인상과 라디오헤드 자신들의 위상이 지금처럼 비교적 단일하게 확립된 것은[OK Computer]때부터였다. 이전까지는 -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 반응이 엇갈리는 편이었다. '인디 출신의 젊은 기타 밴드'(이 얼마나 몰개성적인 표현이란 말인가)이자 우아한 청승을 떠는 아웃사이더들의 그룹. 지금은 명백한 고전이 된 93년도의 싱글 'Creep'을 기점으로 고국인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먼저 인기를 끈 것이 나중에 역반응을 일으켜 마치 억울하게 부당한 취급을 받다가 복권됐다는 것처럼 영국에서도 뒤늦은 반향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들은 몇 곡의 좋은 라디오 싱글을 가진 우량 밴드 이상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밴드. 리스트 속의 한 이름.

그랬던 상황이[OK Computer]로 거의 완전히 재편된 것이다. 1997년의 이 앨범은 가히 라디오헤드의[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서 등장하여 저간의 모든 낙차 다양한 주위 환경을 평정했다. 이 앨범을 만든 것은 라디오헤드지만 이 앨범 역시 라디오헤드를 만든 상황이 된 것이다 - 바야흐로 '90년대 최고의 밴드'중 하나로. 이로써 라디오헤드는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지만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밴드가 되었다. 그들은 '군림'하게 되었고 세상은 뻗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이후에 도래한 post-[OK Computer]의 세상은 자못 긴장을 더하게 되었다. 구미 각국의 유명 뮤지션들이 전에 없던 우호적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Korn의 조나단이 'f**king amazing'을 남발하면서 퍼부었던 칭찬이 인상적이었는데), 99년의 영국이 선택한 밴드 트래비스(Travis)의 2집[The Man Who]앨범을 위시로 콜드플레이(Coldplay)나 뮤즈(Muse) 등 이후에 등장한 영국의 그럴 듯한 신인 그룹들은 대개 라디오헤드와의 비교를 거의 절도 혐의의 수준으로 마치 수치처럼 거쳐야 했다. 라디오헤드란 이름이 이토록 거대한 등록상표가 된 탓에, 이들에게 우호적인 의사들마저 무슨 저작권 위반으로 몰릴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디오헤드 자신들이[OK Computer]에 규정될 위험이 가장 컸다.

그래서[Kid A]는 의미심장한 앨범이었다. 작년에 발매된 대망의(진정 이 표현을 써도 무방하리라) 신보[Kid A]는 기타 팝록이라는 테두리를 진작에 벗어났던[OK Computer] 이후 밟은 라디오헤드의 실질적인 '다음 스텝'이었고, 그것은 일단은 표면적으로는 전자 사운드의 전폭적인 수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밴드로서는 실험적이고 싶은 소망과 그러면서도 동시에 팝이어야 한다는 과제(그들은 확실히 '파퓰러한' 밴드가 아니던가) 사이에서의 늦출 수 없는 긴장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거의 딜레마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입으로는 꼭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속으론 은근히/당연히[OK Computer] 2부를 기대했을지도 모를 대중 심리를 밴드는 그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든) 공격하고 있었다. 앨범은 성공적이었지만 또한 확실히, 당혹스런 것이었다.

신보라고는 하지만[Amnesiac]은[Kid A]가 발매됐을 당시부터 이미 말이 있던 앨범이었다. 모두[Kid A] 때 함께 만들어지고 녹음되었던 트랙들로, 밴드 측에 따르면[Kid A]에 실리지 않은 나머지('leftovers')들을 담은 것이라는. 그러나 단순히 쓰고 남은 것들을 구제한 부수적인 앨범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밴드가[Kid A]에서 잡은 성격에 맞지 않은 곡들을[Kid A]와는 또 다른 맥락의 테마로 배치한, 엄밀하게 말해[Kid A]와 동격의 의미를 갖는 쌍둥이 같은 앨범이다. 애초 하나의 작품일 수 있었던 것을(혹은 그렇게 되어야 했던 것을) 왜 하필 몇 개월의 차이를 두고 대중을 향해 이렇게 시간차 공격을 한 것인지의 진의에 대해서는, 일부 저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Kid A]의 비상업적+실험적 성격에 대한 대중성의 보완'이라는 설이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밴드 측도[Kid A] 때와는 차이가 있는 싱글 커트-비디오 제작-대규모 투어 등 적극적인 홍보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있을 법한 추측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Amnesiac]이 과연 얼마만큼 대중적이길래. 다시 말해[Kid A]가 정말 그렇게까지 대중을 따돌리는 작품이었단 소린지. 여기에는 역시[Kid A]에 대한 일말의 의심(혹은 음모이론)이 묻어있다. 과연[Amnesiac]은[Kid A]가 (애초 기대되었던 만큼의) 주의의 동의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당황한 주최측의 뒤늦은 벌충 전략이어야만 할까. 그렇다면 놀랍게도[Amnesiac]은 별로 영리한 전략이 아니다. 이 앨범에는 '지난번에 우리는 오해되었기에 여기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한다'는 발분한 항변도, 혹은 '지난번 것은 우리가 듣는 음악이었고 이번에는 너희가 듣는 음악을 주마'는 오만한 계몽도 없다.[Kid A]에 비해 좀 더 많은 가사와 좀 더 적은 인스트루멘틀이 있을 뿐이다. 이 차이는 확실히 보다 익숙하다는 편안함을 주지만, 이를 굳이 대중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외관상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은 'Amnesiac/Morning Bell'로,[Kid A]의 'Morning Bell'과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반복 변주이다. 그리고 이 반복은 없다가 덧붙여진 'amnesiac'이 지시하는 만큼의 기억상실(amnesiac)의 모티브가 의미심장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금 이 모닝 벨은[Kid A]가 아니라[Amnesiac]의 '다른' 모닝 벨이며, 여기에는 '완전히 잊고 있다가' 5개월만에 불현듯 기억해낸 자신의 예전의 어떤 노래라는[Kid A] 당시의 톰 요크 개인의 작곡 일화, 그리고 가사는 잘라낸 반면 제목은 덧붙인 후자 버전의 형태가 긴밀하게 묘한 상관관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Kid A]와[Amnesiac]은 가사에서처럼 정말로 '반으로 잘려진 아이'의 양쪽 절반들 같다.

하지만[Kid A]의 카마(karma)로써만[Amnesiac]이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곡들은 (그렇게 하려고만 하면) 놀랄 만큼 독립적으로 들린다. 전반적으로 도전적인 심상과 서정적인 심상을 사운드상으로 갈마들도록 배치한 앨범의 단선적 곡 구성은 듣는 사람의 내부에 일정한 파도를 치게 하는데, 그 와중에서 특히 소위 '서정적'인 쪽으로 분류될 법한 짝수 번호 트랙들, 즉 'Pyramid Song'과 'You And Whose Army?'(후문에 의하면 토니 블레어를 향한 안티 메시지라는?) 그리고 'Knives Out' 등이 모두 싱글로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할 만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실제로 'Pyramid Song'은 이번 앨범의 첫 싱글로 이미 결정된 상태다.) 반면 가장 도전적인 트랙으로선 아마 'Life In A Glass House'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충격일 수도 있을 이 라디오헤드와 정통 뉴올리언즈 재즈의 만남(이 얼마나 기묘한 한 쌍인가 - 하지만 밴드는 어쨌든 베테랑 재즈 트럼페터인 험프리 라이틀튼을 직접 섭외하는 진지함을 보였다)은, 단순하게는 역시[Kid A]의 'National Anthem'과 연결되는 공통의 '재즈 테마'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멤버들의 말을 통해 밴드 내부에서 이 재즈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니라 이번[Kid A]와[Amnesiac]세션 시의 전반적인 '태도(attitude)'의 문제이기도 했던 것을 보면, 단순한 기분전환의 시도 이상의 그 무엇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덧붙여, 능란하고 불길하게 일렁이다가 마지막 일격으로 조용히 휘몰아치는 'Dollars & Cents'의 묵시록 또한 인상적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이 앨범은[Kid A]와 긴밀한 동시에 또한 홀로 독자적이다. 차이는 분명히 있다. 톰이 묘사하듯 "전작이 멀리서 난 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몸소 그 불 한가운데 있는 것"만큼의 차이가. 그리고 그 사이에 amnesiac, '기억상실'이 레테의 강처럼 흐른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장차 맞게 될 삶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그전까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의 기억이 모두 지워지게 된다"고 믿었던 그노시스파 학자들의 생각에 의탁한 이 앨범에 따르면, 그 '기억상실'이란 실제로 실존의 근거가 된다. 라디오헤드는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아는 듯하다. 그리고 잊지 않고 있다. (글: 성문영, 제공: EMI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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