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님의 답글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 말씀 올려야 될거 같아서 그냥 두서없이
펜을 들께요.
라디오헤드..음 아마 94년으로 기억하네요. 처음 creep을 들은게요. 그때 저는 너바나나 펄잼같은 얼터너티브 음악에 완전히 맛이 가 있던 때였고 , 그 음악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어서 이판 저 판 막 사대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라디오헤드를 알았지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크립 노래 한 곡만으로도 Pablo Honey 앨범 한 장 사는건 그닥 모험이 아닐 정도로 그 노래의 영향력이 엄청났지요. 지금 들어도 새로운데 말이죠. 그래서 사서 들었죠. 그리고 그때는 creep 한 곡만 빼면 다른 노래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실망을 했었지요. 아, 얘네도 이 노래 딱 하나 뜨고 죽겠구나하는 엄청난 생각을 서슴없이 했구요. 주위의 음악듣는 친구들도 Pablo Honey 앨범을 산 저를 바보라고 했었지요.
그래서 2집 The bends가 나왔을 때 처음에 안 샀답니다. High and dry가 한참 브이티비에서 나올 때도 시큰둥했었지요.(이럴수가!) 그러다가 Just 비디오를 보고나서 샀는데 그때 정말로 놀랬어요. 한 곡도 빼놓을 것없이 엄청나게 매혹적이란걸 알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노선은 사실 고지식할 정도로 순진한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당시만해도 록 에너지=파괴적인 기타 디스토션 내지는 피드백이란 공식이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때에 어쿠스틱한 정서를 내세울 수 있었다는게 어떻게 보면 모험일 수도 있거든요. 펑크록의 에너지를 비틀즈적인 팝과 힘차게 뒤섞은 그런지의 열풍속에서 라디오헤드는 자칫하면 팝밴드로 불릴 위험이 있었고 사실 그 오해및 편견은 아직까지도 반(anti)라디오헤드파들의 주된 척도잖아요.
2집이 좋으니까 1집까지 뒤져내서 다시 듣게 되고 그제서야 이들이 나가려던 방향을 처음부터 내딛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죠.
그래도 약간은 조마조마 했었습니다. 2집을 들으면서 그게 라디오헤드가 갈 수 있는 좋은 방향의 끝이 아닐까 , 또 섣부른 판단을 제멋대로 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요, 로미오와 쥴리엣의 엔딩 타이틀이었던 exit music이나 먼저 다른 용도로 나온 싱글인 lucky 를 접했을 때도 그 정서나 음악적 쏘스가 2집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아니면 훨씬 더 음울해진 것으로 판단해 버렸지요.
그리고 OK Computer가 나왔지요?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반응은...흐흐흐.
제가 보기에 이 정도로 앨범마다 엄청난 도약과 성공적인 실험성을 갖출 수 있었던 밴드는 비틀즈나 레드 제플린, 최근에는 스매슁 펌킨스 정도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저번에 해석한 기사중의 하나가 '라디오헤드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들을 혹사해서 사실상 지금은 위험선상에 와 있다'라는 요지를 담고 있었지요.
평단에 그 정도의 우려를 낳을 정도로 비약적인 도약을 한다는게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답니다. 제일 먼저 귀에 들어왔던 노래는 paranoid android 그 다음에는 no surprises... 지금은 역시 어느 한 곡도, 심지어 fitter , happier조차도 빼 놓을 수 없는 곡이 되었구요.
no surprises의 가사를 읽으면서 뭐랄까요, 라디오헤드만의 방식으로 치유되는 느낌도 받았답니다. 울고 싶을 때 웃음을 강요한다면 환멸만을 느낄 뿐이지요.
울음은 눈물로 치유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라디오헤드를
'네카티브 카타르시스(negative catharsis)로 처방해 주는 치유자(healers)'라고 부르고 싶네요. 물론 거기에 톰 요크가 주장하는 일말의 유머를 찾아 보려는 노력을 빼 놓아서도 안되겠죠. 신랄하고 독설적이긴 하지만..
이제는 라디오헤드의 4집에 대한 우려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요.
말이 너무 길어 졌네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구요. 행복하세요.
루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