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오후 10시경.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대구 고모부께서 방금 돌아가셨으니 지금 집으로 돌아오라고.
포켓볼을 치고 있던 나는 "알았어"라고 대답한 뒤,
게임을 마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11시경.
누나와 매형이 집으로 왔고, 임신 중인 누나를 남겨 놓은채
아빠, 엄마, 매형, 나, 이렇게 넷이서 마티즈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대구는 정말로 먼 곳이었기 때문에 고속도로 위에서 매형은 힘껏 엑셀을 밟았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흔들림이 심해지는 경차 안에서 나는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사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포켓볼의 공들에 집중했고, 경차의 가벼움에 불안을 느꼈을 뿐이다.
고모부님의 사망 소식에 대해서는 그저 '안됐다'라는 일말의 감상이 전부였다.
상가집의 무거운 분위기를 경험한 바 있기에 '가기 싫다'는 감상만 계속 맴돌았을 뿐.
나중에 알고보니 고모부님은 돌아가셨던게 아니라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던 것이었고,
고모부는 하루를 30분 넘기고, 그러니까 12시 30분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