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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도인

Meditation2004-05-18 10:27조회 412추천 15

여느때처럼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어떤 후줄근하게, 구체적으로는 중년 일본 오타쿠같이 생긴 아저씨가

무슨 서류 같은 것과 삐라 같은 것을 함께 들고

사람들에 섞여서 버스를 탔다.

나는 역시 여느때처럼 볼륨 20 (맥스 40)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손잡이도 제대로 잡지 않고 휘청휘청거리면서

뭔가 들어 줄 사람도 없이 중얼중얼 말을 해대는 것 같았다.

으레 있는,

미튄;;

아저씨겠거니 하고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참이 지나고 그 아저씨의 독백 아닌 독백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모두들 의도적으로 무시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듣고 있는 그것은

로또 숫자 -0-;;

그 아저씨는 지칠 줄도 모르고

대략 30여분 가량의 여정동안 의미없이 숫자를 잔뜩 나열했다.

듣다 지친 사람, 웃다 지친 사람, 야리다 지친 사람.

지치지 않은 사람은 그 아저씨와 애초에 듣지 않던 나뿐인듯했다.

숫자의 나열이 끝났다.

사람들의 표정에 안도가 한 줄기 지나갔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이번에는 문장제의 독백을 선사했다.

바로 그 때.

어떤 다른 아저씨가 그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자 중얼거리던 그 아저씨 드디어 동지를 만났다는 듯 큰 소리로

마구 지껄여(이 부분에서는 정말 지껄였다는 말밖에는..;;)댔다.

내 보기에 말 건 그 아저씨도 어떻게든

저 아저씨의 아구창을 어떻게든 해보자 하는 취지였을테지만

역효과만 냈다.

그 아저씨, 자신이 로또 3등 350만원 당첨됐었다느니,

역학적으로 짚어봤을 때 대박 한 번 나오겠다느니 아주 버스가 떠나가라고 외쳤다.

생판 모르는 사람일텐데,

내리면서 '그럼, 다음에 한번 봅시다' 하고 내렸다.

역학을 하게 생긴 건 확실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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