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독히도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주제넘은 영역에 대한
갈망의 표현방식이
5밀리정도 벗어난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푸르다고 나또한 푸를리는
없겠지만서도, 나에겐
너를 향한 푸르름이 있고,
힘찬 절정의 감동이 있었다.
나에겐 벅찬 그리움이있었고,
거짓말같은 환상에 대한 의심도 있었고,
도취된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억제시킨
차라리 성스럽기조차한
의연함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진지함이란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오만번도 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산을 오르내리듯
쉽디 쉬운 일처럼 느껴져서,
황폐해진 가슴의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잡은것마냥,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게된다.
그것은 사실
스스로를 허무하다고
생각해버리는것이다.
그렇게된다면
나는 너무나도 편해져서,
진한 키스의 체온을
넘어서는 따듯한 사람이 된다.
오로지 내일만이 존재하는,
즐길수 없는 게임이라고 하는 편이
덜 우스우며, 더없이 편하다.
두세번정도 더 떠올려본다.
봄날을, 따스함을,
미로속에서 길을 찾듯이
추억해본다.
모든것들은 얽혀있어서,
내가 풀려고 하지않으면
절대 풀수가 없는것이다.
하물며 노력으로는 불가능
할지도 모를 그런 얽힘이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
라는 유치한 언어의 유희는
너무 상투적이다.
이젠 너무나도 멀어저버린건,
콩심은데 콩나듯,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근데 이걸 어쩌나..
깊은 바다속 동굴같이
공허해저버린
가슴속을,
지푸라기 마냥
재조차 남지
않을만큼 타버린
가슴을,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
나는 사랑이 좋다.
가슴시리도록
뼈아픈 고심끝에,
기약없는 괴씸한
결단을 짓는,
속이 비어있는
그런 깡통같은 사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