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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13을 들으면서.

르저1999-04-11 11:45조회 0
드디어 블러의 13을 샀습니다. (사실은 지난 주 토요일)

이젠 블러도 라이센스로 나오지 않는군요.

"라이센스로 하지 않아도 블러는 워낙 잘 팔리잖아요" 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는 레코드 점원을 마주 보며 유쾌하게 웃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다들 몸서리치게(?) 겪으셨을테지만 어디 우리의 음반 시장이 잘 안팔릴듯한 것들까지도 라이센스화하는 데입니까? 오히려 이런 현 상황이 완전한 음반 직배로까지 연결되길 바랄 뿐입니다.

말이 길어졌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제가 느낀 이번 블러 앨범은 기대이상입니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애호의 단계에서 숭배내지는 경외감을 느낄 정도의 위치까지 격상하게 만는 앨범이라고 할까요? 저는 블러를 '아티스트 밴드'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는 제 기준의 아티스트 리스트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정규앨범 6집정도까지 간 밴드가, 그것도 한 시대의 한 보편적 쟝르의 대부격으로 불리우는 밴드(좋게 말해서 대부격이지만 대부의 자리에 올라감과 동시에 음악적 타도대상이 되어야하는 운명도 같이 갖고 있는)가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만큼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예는 흔치 않으니까요.

리얼오디오로 먼저 접해들은 Tender의 경우에 저도 현실님처럼 '블러도 드디어 약발이 다하기 시작했구나'하고 생각했었더랬는데 글쎄, 씨디 음질로 듣는 Tender는 매우 감동적이군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이상의 오리지널이 불가능할 정도로 바닥이 드러난 음악세계에서 기존의 음악 요소들을 끌어다가 다시금 세우는 새로운 음악영토로 들어서는 서곡이랄까요? 이런 '복고'야 말로 '퇴행'이 아닌 '구원'으로서의 복고겠지요.

오리지날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하자면 사실은 일전에 예전 음악모임의 선배와 술자리를 같이 하던 중에 "어떤 형태로든 완전한 오리지널리티란 불가능한 시대에 온 것같다"라는 말을 했다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한다고 지적을 들은 적이 있답니다. 하지만 현재의 밴드나 음악인들이 레드 제플린의 시대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불운한 음악적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남은 과제란 기존의 것들을 독창적으로 재 정열하고 배합해내는 것밖에는 없지않을까하는 생각.(가장 좋은 예로는 테크노가 되겠지만.) 그러나 독창적이기란 또 얼마나 힘든걸까요?

5집에서의 음악적 변화(블러가 미국음악으로 돌아섰다라고 떠들어댄,한결같은 바보들임을 알아서 증명해 주는 언론들!)가 블러 초기 음악과 함께 독창적으로 안배된 느낌도 즐겁구요. (이제쯤 미디어는 '소닉유스의 노이즈가 데이빗 보위와 함께 나란히 한다...'라고 쓸 준비를 하고 있는건 아닐지. 그런 식으로 말해보자면 슈게이져와 엠비언트, 심지어는 트립합도 언급되어야 할 것같은 느낌입니다.)

실험정신이 살아있는 다채로움이 음악적 즐거움을 잃지 않은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브릿팝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죽었다면 브릿팝은 이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질문1. 표지는 그레이엄 콕슨이 그린거 맞죠? 그리고 현실이 말대로 정말 알렉스 같군요. 맞나?

질문2. 도대체 13의 뜻은 뭘까요? 가사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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