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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캐서린2004-09-30 06:44조회 397추천 12

날카로운 칼날에 눈을 맡겼다.
눈은 곧 시원스럽게 후벼진다.
어떠한 고통도 없다. 오히려 후련한 느낌이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조그만 벌새가 방금 나에게 생긴 눈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뽑아내 그곳에다 집을 짓는다.
곧 알도 낳겠지. 아기새들이 비행할즈음에는 한 쪽 눈을 마저 뽑자.
생각하는 사이에 칼 끝에 꽂힌 눈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수정체 조각들이 물인지 체인지 모를 상태로 칼자루에 묻어나갈 뿐이다.
흐르는 눈을 두손에 쥐어 들어, 햇빛에 비춰본다.
안에는 예의 눈물이 찰랑거리며 윤기를 내고 있다.
언젠가의 눈물일까, 생각했다. 기억이 없다.
얼마나 슬펐으면, 내 눈은 마지막 한방울의 물을 쏟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만 그것을 들여냈을까.
손을 꽉 움켜쥐어서 안에 든 눈물을 짜내었다. 그제서야 피를 내뿜는다.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팔에 붙어 내려온다.
피인지 눈물인지, 사랑도 그와 같은 것일까.
행복인지 슬픔인지 노여움인지 모를 것들이
아름다운 눈에 담겨 요동치고 있다.
눈을 뽑는다면, 나는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있는 걸까.
갑자기 아기새 한마리가 날개짓한다.
나는 한쪽 눈을 마저 뽑았다.
그것은 아기새와의 약속이었다.
이제 뭔가가 보이겠지.
사랑이, 그녀와 내가 속 안에 꼭꼭 숨겨놓았던 무언가가,
햇빛에 비춰보면 만화경처럼 영롱하게 빛을 내줄 무언가가,
눈이 없는 내 눈 앞에 보이겠지.

한줄기 빛이 내 얼굴 앞에 미끄러져 지나간다.
어쩌면 어둠 한줄기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깨끗해졌다고 생각했다.
방금 태어난 유리조각처럼 나는 온전하게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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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김세영2004-09-30 11:54
캐서린님의 글은, 소재가 너무.. 엽기적이라고 할까;;;
근데 글은 잘 쓰셔요